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남인도 여행 - 진지포트, 티루반나말라이

인도에는 성스러운 여행지가 참으로 많다. 긴 역사 때문일까, 수많은 신들이 존재하는 힌두교이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이유가 될는지도 모르겠다. 첸나이에서 차로 네 시간 정도 떨어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로 안나말라이 힐, 혹은 아루나찰라 마운틴이라고 불리는 성스러운 산이 있는 티루반나말라이가 자리잡고 있다.


티루반나말라이로의 짧은 여행을 계획했던 나는, 그곳으로 가는 길에 진지포트에 들렀다 가는 일정을 잡았다. 진지포트는 타밀나두에 남아 있는 요새 중의 하나로, 인도에서 가장 완벽한 요새이자, 동방의 트로이라고도 불렸다는 곳이다. 9~13세기에 지어진 만큼 정말 오래된 유적지 중의 하나이고, 1921년 인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크리슈나기리, 라자기리, 찬드라얀두르그 세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 가장 오를 만하다는 크리슈나기리를 선택해, 원숭이들의 공격을 지혜롭게 피해가며 고지에 올랐다. 고작 30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아슬아슬한 돌바위를 딛고 올라가며 땀방울을 뚝뚝 흘리고, 중간 중간 쉼터와도 같은 그늘에서 숨을 돌리기도 했다. 마침내 다다른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전경도 물론 아름다웠지만, 세월의 흐름과 그 시절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요새의 모양새가 너무나 아름답고 정교해 감탄이 절로 나왔다. 경건한 마음마저 들었던 이곳의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파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을 충분히 느낀 후 내려가는 길은 한층 더 어려웠다는 후문이.


진지포트에서 가졌던 경건한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며 티루반나말라이로 향했다. 붉은 산이라는 뜻을 가진 아루나찰라 마운틴은 브라흐마와 비쉬누의 논쟁을 종결시키기 위해 시바신이 아루나찰라 정상에 내려왔다는 전설과 더불어 ,성자 라마나 마하르시가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알려져 있는 더없이 성스러운 장소이다. 그래서 매년 타밀 달력으로 까띠게이(Karthigai), 그러니까 11월이나 12월즈음이 되면, 까띠게이 디팜이라는 빛의 축제가 열려 티루반나말라이 꼭대기에 있는 시바신의 템플에서 불을 지핀다.


이번 여행 역시 아이들의 방학에 맞춘 터라, 인도 안에서는 제법 저명한 호텔인 스파르사 리조트를 예약했다. 친환경을 추구하는 티루반나말라이의 스파르사 리조트는 제법 넓은 수영장도 갖추고 있고, 녹음으로 둘러싸인데다 아이들과 함께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은, 마음에 쏙 드는 호텔이었다. 4시가 되면 그늘이 드리운 야외 테이블에 앉아 짜이 한 잔에 무르끄라는 스낵을 즐길 수 있고, 무료 도자기 체험과 소 젖짜기 체험, 메헨디와 앵무새 점보기 체험도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호텔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자연과 어우러져 신기한 꽃과 나무와 열매를 따 모으며 즐거워했다.


티루반나말라이는 깨달음을 추구하기 위한 요가와 명상의 도시로, 많은 배낭 여행객들이 세계 곳곳에서 이곳의 아쉬람을 찾는다. 그래서 '인도' 라고 하면 떠오르는 갖가지 바지와 스카프, 가방 같은 인도 스타일의 아이템을 길거리에 즐비한 가게에서 구경하는 것도 티루반나말라이의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도시'인 첸나이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인도 물건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다들 진리 탐구를 위하여,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정신 수양을 위하여,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나는 아쉬람을 수박 겉핥기로만 구경하고 나와 아쉬움이 남았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우리만의 방식으로 이곳에서 여유와 평화를 찾고 무언가를 깨닫고 돌아왔다고 믿는다. 


인도 배낭 여행을 꿈꾸던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인도 여행에서 늘 아쉬움이 남지만, 또 그만큼의 

즐거움과 깨달음이 더해졌다고 생각한다. 세상사 그 어떤 것에도, 일장일단이 있을 뿐. 어떤 방식으로든 여행은 옳다. 티루반나말라이에서 함박웃음을 짓고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얼굴을, 지금 난 추억한다. 인생의 진리와 깨달음은 그 순간에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와 12월의 태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