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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더스 스쿨, 졸업식

만으로 아직 5살이었던 2017년 5월. 한국 나이로 7세였던 둘째가 유치원을 졸업하는 순간이 왔다. 그것도 한국도 아닌 타지에서. '엄마, 나 영어가 무서워'라며 한국말도 어설프던 그 꼬마가 의젓하게 인도 첸나이에서, 인더스 스쿨을 졸업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누나가 다니던 아메리칸 스쿨과 환경이 달랐던 인더스 스쿨은, 인터내셔널 교육을 주창하고는 있지만 인도식의 교육 방침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던 학교였다. FM이었던 우리 아들과는 의외로 잘 맞는 부분이 있었고, 힘든 부분과 불만인 점도 물론 있었지만 인도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학교였다. 나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고, 인도 선생님들이나 같은 반 인도 친구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기에 인도 문화를 조금 더 다양하고 깊이 있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2년 연속 아들의 담임 선생님을 맡았던 비디야는 케랄라 주 출신이었는데, 집에 한 번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었는데 요리 솜씨가 정말 훌륭했다. 비디야는 내가 인도 민화를 그릴 줄 안다는 걸 알고, 수업 시간에 나를 초빙해 아이들에게 인도 민화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인으로서 인도 민화를 가르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조그만 손으로 민화를 배운 7살배기 아이들은 연말에 인도 민화로 만든 캘린더를 판매해서, 그 수익금을 전부 기부하는 훌륭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한국 학생들이 많았던 터라,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던 비디야는, 나에게 다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안했다. 한복을 입고 한국 전래동화를 들고 가서 책을 읽어주고 한국 문화를 전해줄 수 있는 시간도 있었다. 한복을 신기해하며 살며시 만져보던 동그란 눈의 인도 친구들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렇게 내가 학교를 찾아갈 때마다 특히 한국 아이들은 나를 무척이나 반겨주었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문화와 색다른 경험을 접해주려고 노력하던 비디야의 시도를 나는 늘 응원했다.


아들은 이곳에서 짜빠띠와 파로타의 참맛을 알았고, 각종 신들의 축제가 될 때마다 짧은 만트라를 배워 흥얼거렸고, 타밀어를 몇 마디 할 줄 알게 되었으며, 손으로 밥을 먹는 방법도 마스터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딸보다 오히려 더욱 풍요로운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참으로 영광스럽게도, 졸업식 두 달 전에 있었던 마지막 인더스 스쿨 발표회에서, 선생님들과 부모님들, 그리고 이사장님을 포함한 청중들 앞에서 감사 인사를 낭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내가 아끼던 금빛 사리를 입고, 그 앞에 섰을 때의 감격은 아직도 생생히 느껴진다. 그때 썼던 낭독문을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인더스 스쿨에서 함께 했던 그 모든 시간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첸나이에서 가장 더운 날씨인 5월에, 조그만 머리에 학사모를 쓰고 가운을 걸쳐 땀범벅이 된 아이들은 각자 맡은 낭독과 노래를 멋지게 선보이며 부모들에게 눈물나게 감격스러운 순간을 선사해주었다.


한여름의 졸업식, 2년 반이라는 시간을 낯선 공간, 낯선 언어, 낯선 사람들과 보내면서 이렇게 성장해준 꼬마도련님이 그저 대견했던 날이었다. 온 마음을 다해 이방인들을 품어준 인더스 스쿨의 원장 선생님 비나와 담임 선생님 비디야에게도 다시 한 번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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