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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스쿨, 보드 활동

첸나이에 있는 아메리칸 스쿨은 한국인의 비율이 상당히 많은 국제 학교이다. 외국인들의 유입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에도, 그 정도의 규모나 체계를 갖추고 있는 국제 학교가 한 군데밖에 없다 보니 일어나는 현상이다. 참 부끄럽게도, 영어 번역을 업으로 삼았고 외국어를 전공했다는 이유로 첸나이에 도착한 순간부터 나는 '영어를 잘하는 엄마'로 낙인이 찍혔었다. 그리고 세 번째 해가 되던 2017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메리칸 스쿨 이사회 모임인 보드(Board of directors)에 입후보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한국 부모들과 소통을 원했고, 더불어 동양인 한국이라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문화를 조금 더 이해하면서 학교를 이끌어가고 싶어 했다. 그래서 보드 멤버에 한국 어머니를 영입하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그렇게 선택된 것이 바로 나였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처럼 좌절을 느끼고, 나의 능력 밖의 일이라는 걸 확실히 깨달은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메리칸 스쿨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의 거대한 미국 기업과도 같았고, 보드라는 것은 알다시피 말 그대로 그 기업, 그러니까 아메리큰 스쿨의 재정, 교육, 미래, 경영 모든 것을 다루는 이사회였던 것이다. 회사 경력은 고작 3년, 프리랜서로 나의 생을 채워왔던 나에게 이 모든 과제들은 한국어로 진행한다 해도 가히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


문학이라던지, 예술이라던지, 이런 주제의 회의였다면 훨씬 더 나았을까. 배경지식이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닫는 나날이었다. 학교의 헤드였던 앤드류는 나의 고충을 듣고 이런 저런 도움을 주기 위해 좋은 서적들도 추천해 주는 등의 많은 지지를 해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단기간에 그 내용을 섭렵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후회 없이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마지막 날에는, 학교에 큰 기여를 해준 나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했지만, 내가 진짜 그들에게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한국인들을 대표해서 그 자리를 지켰던 점, 한국 학부모와 학교 사이의 교량 역할을 조금이나마 해냈다는 점 등의 성과들은 있었겠지만 말이다. 오히려 그 시간을 통해 성장한 것은 나였다. 생전 처음 다루어보는 주제들과 오고 가는 수많은 대화들도 신선한 경험이었지만,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교육에 대한, 학교에 대한,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마음가짐과 가치관은 한국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의 교육 방침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의 하나는 '사회' 과목이었다. 미국 학교에서는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Social Studies'라는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 환경에 대한 이해와 배움이라는 점은 우리나라와 같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공동체와 더불어 살면서, 내가 어떻게 기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것이 이 교육의 핵심이라는 사실이다.


1년 반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거대한 체구의(체구만큼이나 자부심과 자긍심이 뛰어났던)미국인 9명 사이에서 느끼고, 깨닫고, 배웠던 이 경험은 내 삶에 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언젠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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