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도 머수리, 리쉬케시

드디어 갠지스 강에!

by 티마스터 바유

인도에 머무는 동안 요가를 배우고 요가 생활에 빠지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도시 중의 하나는 리쉬케시였다. 요가의 고향이자, 고행의 도시로 알려진 리쉬케시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의 하나인 갠지스 강가에 자리잡은 곳이다.


남인도 첸나이에서 뉴델리를 지난 북인도의 거의 끝까지 가야 있는 유타란찰 주의 리쉬케시까지 가는 김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머수리를 여정에 넣기로 했다. 멋진 자연 환경을 자랑하는 머수리는 소공녀 세라의 배경이 되고, 그녀가 다니던 기숙학교 우드스탁이 자리를 잡은 곳이기도 하다.


첸나이에서 델리로 2시간 반을 날아간 후, 델리에서 데라둔 공항까지 45분, 그리고 데라둔 공항에서 자동차로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고 또 올라 2시간 반을 달린 후에야 숙소에 도착했다. 멀미 직전까지 간 아이들과 함께 한 제법 힘겨운 여정이었지만, 깜깜한 밤에 도착한 그곳의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빛들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별빛만큼이나 찬란히 빛나던 밤이었다.


자연환경이 수려한 인도의 여느 지역들처럼, 이곳도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의 휴양지가 되었던 곳이다. 그래서 고풍스럽고 멋진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보니, 호텔로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머물렀던 숙소도 그런 곳 중의 하나였다. 머물기에는 너무나 편하고 멋스러운 곳이었지만, 그 높은 산골짜기에 이 많은 건물들을 짓느라 갖은 고초를 당했을 인도인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살짝 불편해졌다.


이른 아침, 첸나이에서는 한 번도 필요가 없던 털모자까지 중무장을 한 아이들과 산책을 나섰다. 파란 하늘과 찬 공기가 머리를 맑게 깨워주었다. 해가 채 다 뜨지도 않은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산을 바라보고 아침 기도를 올리는 여인이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고 기도에 몰입하고 있던 그 여인의 모습은, 이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믿음이란 것에 대해, 짧은 단상을 갖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과 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산의 전경은 그야말로 힐링 그 자체였다.


하루 이틀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리쉬케시로 향했다. 두 시간 반을 달려야 했던 산길은 어마어마하게 웅장했고 또 길 아래 절벽은 아찔했다. 콩알만해진 가슴이 작아져 없어지려 하기 직전에 리쉬케시에 도착했다. 마침내, 생전 처음으로 갠지스 강을 만난 것이다.


어찌 보면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강가, 갠지스 강 앞에 서는 순간, 울컥, 감격이 밀려들어오는 나를 발견하며 깜짝 놀랐다. 리퍼블릭 데이라고, 둘째가 손에 인도 국기를 들고 내 옆에 서서 갠지스 강을 바라보며 인도 국기를 흔들어댔다. 리쉬케시의 갠지스 강은 상류이다 보니, 익히 들었던 바라나시와는 사뭇 다른 무척이나 깨끗하고 맑은 모습이었다. 그 신성하다는 갠지스 강에서 환호성을 지르며 리프팅을 즐기는 인도 사람들을 보며, 신과 종교, 현세와 내세, 일상 모든 것이 혼재되어 있는 인도에 대해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요가의 본 고장인 리쉬케시는 두 개의 다리가 있다. 바로 람 줄라와 락스만 줄라. 람과 락스만은 앞어 말했던 인도의 대 서사시인 라마야나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다. 주인공인 형이 람(라마), 그 동생이 락슈만인데, (이런 이유로 람 줄라가 락스만 줄라보다 길이가 길다.) 람이 세속의 모든 일을 잊고 고행을 떠났던 장소가 바로 이곳 리쉬케시라고 한다. 라메스와람에 이어, 라마야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리쉬케시로의 여행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안개 자욱했던 다음 날, 템플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와 기도문 소리가 어우러져 신비로움 가득한 갠지스 강에서의 성스런 아침을 맞이했다. 아이들과 함께 몰려다니며 배낭 여행객 마냥 시장 구경에 빠져들기도 하고, 참새 방앗간처럼 들락거리던 카페 드 고아에 앉아 맞은편 템플 사진을 그리며 그림 대회도 열었다. 성스런 갠지스 강에서 스피드 보트를 타며 마음껏 환호성도 지르고, 비틀즈의 그림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비틀즈가 이곳 리쉬케시에서 요가를 배워간 후에 미국에 요가가 열풍이 되었다고 한다.


11살, 8살이 된 딸과 아들은, 처음 인도에 왔을 때와는 달리 함께 인도 여행을 하기도 수월했고, 나만큼이나 여행을 즐기게 되었다. 함께 가는 친구들도 중요했지만, 우리끼리 떠나는 여행에서도 오롯이 그 시간에 집중할 줄 알았다. 리쉬케시의 람 줄라를 함께 건너고, 건넌 강가에서 요가 포즈를 취하며 열심히 기념 사진을 찍고 찍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새삼 고마움과 대견함을 느꼈다.


정말이지 돌아오기 싫은 여행이었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몇 달이고 이곳에서 살고 싶었다. 이런 방랑자의 영혼이 고개를 들 때마다, 신랑은 캄다운하라며 나의 영혼의 고개를 꾹꾹 눌러주곤 한다. 아이들을 다 키운 후에 갠지스 강이나 히말라야 산맥 어드매로 출가를 해볼까, 하는 나의 말이 진짜 실현되기라도 할 듯 '나도 꼭 데려가'라고 말한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아내를 만나 매번 불안해하는 신랑 생각이 나서, 아쉬움을 한 가득 안고, 리쉬케시를 떠나 예정대로 첸나이로 돌아왔다. 그 후에도 한동안 갠지스강과 리쉬케시의 전경이 눈앞에 아른거렸고, 나의 명상의 주제로 종종 갠지스 강이 등장하곤 했던 걸로 보면, 갠지스 강과의 만남은 조만간 다시 실현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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