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 비록 사실은 그러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힘들고 어렵고 지칠 때마다 내가 떠올리는 문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나만의 확언과 같은 문장이다.
큰 아이들 어려서는 육아서를 끼고 살았었는데 아이들이 커감과 동시에 육아서를 읽는 양도 줄었었고 그러다 어느 순간 잘 들여다보지 않는 분야가 되어버렸다.
물론 그 연령대에 맞는 육아서를 가끔씩 보기는 했었다.
큰 아이들이 사춘기 시기가 되면서 그 시기에 필요한 책들을 볼 때도 있었지만 예전처럼 끼고 사는 수준은 아니었던 거다.
그러다 막내가 6살 후반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는 반응을 보이고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 같아 육아서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육아서를 보기 시작한 이유는 세상 모든 엄마의 바람이겠지만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서이다.
나름 이른 나이에 결혼해 아이가 생겼고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몰라 육아서를 찾기 시작했다.
육아서에도 다양한 책들이 있지만 처음에는 아이를 키우는 기술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을 봤었다.
한마디로 발달 과정이 궁금했기에 그런 내용을 담은 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정작 아이가 태어나고 키우기 시작하자 혼란스러운 과정을 겪게 되었다.
분명 책에서는 우유를 먹이면 트림을 꼭 시켜야 하고 몇 시간 간격으로 수유를 해야 하며 몇 개월 정도에 옹알이를 하고 몇 개월에 기저귀를 떼야한다 등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런 평균적인 이야기들이 내 아이에게는 안 통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 유명한 푸름이 아빠 최희수 소장님의 책들을 읽으면서 육아서가 마치 교과서나 백과사전 같은 정답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육아서가 도움이 되는 부분도 상당수 있지만 그것을 정답인 거처럼 내 아이를 그 틀에 맞추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마다 발달 단계가 다르고 감성이 다르고 표현하는 게 다 다르다.
그러니 참고는 하되 내 아이 상황에 맞게 버릴 건 버리고 도움이 될 것들은 적용시키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육아서를 읽는 기준도 달라지니 책이 더 재밌어지고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됐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었다
이 정도면 육아서 하나
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을
잘 키웠다고 스스로가
판단이 됐을 때 한 번 도전해보자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이 없어졌다. 사춘기가 다가오는 아이들을 대하는 게 힘들었고 나 스스로도 상황적으로 지쳐가는 것들이 있기에 소위 말해 잘 키우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았던 거다.
그러던 와중에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듣고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듯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이야기는 이랬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건 어떤 기준에서 일까요?
나도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육아서까지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니
아이를 잘 키워서 부모인 내가 칭찬받고 싶었던 거예요
참 부끄럽죠. 아이는 엄마를 위한 칭찬의 도구가 아닌데 말이죠
그분은 실제로 책을 출간한 작가님이셨다. 육아서라곤 할 수 없지만 그 분야에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그랬기에 이 말이 더욱 내 마음에 콕콕 박혀왔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누군가가 내 아이 칭찬을 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본인이 칭찬받은 거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그랬으니 말이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아이를 잘 키우고 책을 한번 써볼까? 하는 마음 이면에 사람들한테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숨어있었던 거다.
그게 나쁜다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부끄러웠다. 창피했다. 아이들한테 떳떳하지 못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긴 했지만 육아에 대한 이야기는 잘 쓰지 않았었다.
내가 그럴 자격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근에 육아서 한 권을 읽게 되었다
그럼에도 웃는 엄마
내가 생각했고 내가 쓰고 싶었던 육아서 이야기와 너무 닮아 있었다.
삼형제 엄마였고 아이가 아팠고 그 과정들을 통한 성장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힘들었고 두려웠고 고됐던 시간들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는 건 그럼에도 웃는 엄마가 되자는 것이다.
'좋은 엄마' 보다 '웃는 엄마'가 되자!
두려움의 늪에서 웃음을 끌어올린 삼형제 엄마 이야기
나도 세 아이 엄마, 아이가 아픈 것이 아닌 엄마가 아픈 사람.
그럼에도 웃는 엄마가 돼보자고 하는 작가님의 말처럼 나는 어떤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진단을 받고 나서 한 가지 다짐한 게 있다.
아이들한테 아픈 모습보다 웃는 모습, 씩씩한 모습, 밝은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자고 말이다.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나의 인생을 살았고 아이들한테도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니 너희들도 어떤 순간에도 좌절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각자의 인생을 살라고 말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최선을 다해 나의 인생을 살고 있는 중이다.
이런 엄마의 모습을 지금 아이들은 어떤 엄마로 기억하고 있을까?
문득 물어보고 싶어 진다.
그럼에도 나는 어떤 엄마였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