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 하기 귀찮고 힘든 날이었다.
학교 끝나고서부터 놀이터에서 오후 내내 노는 누나 옆에서 막내도 신나게 놀았더터라 그 시간에 집에 들어가 막내 씻기고 밥을 해서 아이들 먹이기엔 시간도 부족했다.
어둠이 내려앉자 하나둘 집에 들어가는 모습에 나도 애들한테 집에 들어가자고 하니 '배고파'를 먼저 외치는 딸아이. 그렇게 신나게 놀았으니 배가 안 고픈 게 이상한 거다. 먼저 집에 들어가 있었던 큰 아이한테 전화하니 받자마자 대뜸 '엄마 언제 와요. 배고파요'
그럼 그렇지 한창 먹성 좋은 아들은 뒤돌아서면 배고플 때라 간식을 먹었어도 밥때가 됐으니 엄마의 소식이 궁금했나 보다. 나도 놀이터에서 막내랑 잡기 놀이하며 그네 밀어주고 쫒아다니느라 힘들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얘들아 그럼 우리 밖에서 저녁 먹자!
신랑은 늘 저녁까지 먹고 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이렇게 가끔씩 아이들과 밖에서 밥을 먹을 때가 있었다.
주로 이번처럼 늦게까지 놀이터에서 놀다가 밥 할 시간이 없다거나 나도 지쳐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그런 날이었다. 이럴 때 아이들과 주로 식사를 해결하러 가는 곳은 국수와 밥 종류를 파는 집 근처 국숫집이었다.
프랜차이즈 국숫집인데 면 종류 외에 밥 종류도 많아 아이들이 잘 먹는 메뉴들이 많은 곳이었다. 식성이 다른 부분이 많아 메뉴 통일하기가 힘든 아이들인데 거기에 가자고 하면 싫다고는 하지 않기에 종종 이용하는 곳이다.
늘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기다리는 일도 다반사인인데 그날도 애들을 데리고 가니 빈 테이블 없이 꽉 차있었다. 그래도 대기인원이 없고 세아이를 데리고 딱히 갈 때도 마땅치 않아 우린 기다리기로 했다.
배고프다는 아이들의 소리에 머 먹을지 메뉴부터 골라보자 했다.
엄마 나는 제육덮밥. 그럼 난 국수
메뉴판을 보지 않아도 아이들은 올 때마다 비슷한 음식을 먹기에 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답을 한다.
제육덮밥, 국수? 그럼 난 뭐 먹지? 또 돈가스 먹어야 하나? 돈가스 싫은데
막내도 입맛이 까탈스러운지라 먹는 것만 먹는데 이곳에 오면 늘 돈가스를 먹었었다.
메뉴 하나를 다 먹을 나이는 되지 않았기에 나랑 같이 먹는 편이었는데 큰 아이들 둘 중에 누군가가 돈가스를 선택해주면 나는 다른 메뉴를 골라 아이들과 같이 먹었었는데 아이들은 언젠가부터 돈가스를 시키지 않아 돈가스를 시키는 건 나의 메뉴가 돼버렸다.
그럴 때마다 돈가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늘 고민에 빠졌었다.
돈가스랑 내가 먹고 싶은 메뉴까지 4개를 시키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남길게 뻔했다.
아무리 먹성 좋은 아이들이라지만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4개를 시켜먹기엔 돈이 더 들어가기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문을 열고 점원이 테이블 정리했으니 들어오라며 안내를 해준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이들은
엄마 메뉴 골랐어요? 빨리 시켜요. 배고파! 배고파!
잠깐 기다려봐 메뉴판 한 번만 보고
그리고 메뉴판을 하나씩 넘겨본다. 메뉴판을 넘겨서 봐봤자 어차피 답정너였다.
하지만 돈가스를 먹기 싫었던 나는 메뉴판을 보는척하며 머릿속으로 끊임없는 고민을 한다.
돈이 조금 들어도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시킬까?
4개 시켜도 애들이 같이 먹어주면 그렇게 많이 남길 것 같진 않은데?
배고프다잖아. 아니야, 4개 시키면 돈이 얼마야.
양이 안차면 집에 가서 다른 거 먹어도 되는데 굳이 여기서 돈을 더 써야 하나?
허기진 배만 채우면 되잖아.'
그렇게 잠깐의 시간 동안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러다 아이들의 눈빛에 결국 주문을 하고 만다.
저희여, 국수랑, 제육덮밥이랑 돈가스 하나 주세요
아이들은 맛있겠다며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고 주방 쪽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돈가스를 먹을 생각에 짜증이 밀려왔다.
아니, 엄마라고 먹고 싶은 거 먹으면 안 되라는 법 있나.
그깟 7,000원이 머라고 나중에 외식 두 번 할 거 한번 하면 되는 거 아냐.
그리고 왜 더 시켜먹었냐고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나는 왜 매번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거지?
야! 먹고 싶은 거 못 먹으면 좀 어때, 넌 엄마자나. 엄마는 참을 수 있지.
멀 그런 거 가지고 짜증이야. 신랑은 밖에서 힘들게 돈 버는데 말이야!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내 안의 목소리들이 싸우기 시작한다.
어차피 매번 비슷한 패턴.
그냥 나하나 포기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고민해서 기분이 나쁜 상황을 만들까?
하지만 그 이면엔 엄마가 아닌 나란 존재 자체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마음이 깔려있어서이다.
먹는 것조차 나의 선택권이 없다고 생각하니 내가 없는 느낌마저 들었다.
엄마이기에 그런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치사하게 먹는 것 가지고'라는 말이 있다.
먹는 행복만큼 본능적이며 확실한 행복이 또 있을까?
그런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산다 생각하니 좌절감이 밀려오는 것이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아이들은 배가 고픈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생의 돈가스도 맛있어 보였는지 '엄마 나 돈가스 하나 먹어도 돼요' 물어본다.
' 어? 그래 먹어' 막내 먹이느라 바빴던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이미 아이들은 다 먹은 상태. 그런데 돈가스도 거의 바닥난 상태! 큰아이들도 하나씩 먹으니 나까지 먹을 돈가스가 없었던 것이다.
'아, 그냥 하나 더 시킬걸' 뭐하러 감정 소비했나 싶었다.
계산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 내가 좋아하는 샌드위치 하나를 사서 들어갔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시는 메뉴 하나 때문에 그깟 7.8,000원 때문에 고민하지 않으리라!
시켜서 남기면 또 어떤가? 내가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닌가? 먹는 내내 안 좋은 마음으로 먹다가 아이들에게 짜증 섞인 말투와 행동을 하는 것보단 돈을 더 써서 내 행복감을 충족시켜 그 에너지로 아이들을 더 품어주면 되는 것을. 그렇다고 흥청망청 먹고 싶고 사고 싶은 거 다 사란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감당할만한 수준에서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 보자는 거다.
그리고 실제로 그 뒤로 몇 번 똑같은 상황에서 나의 행복을 선택했더니 어느 순간엔 굳이 하나 더 시켜 먹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메뉴 안 골라도 기분이 예전처럼 좌절감이나 짜증이 밀려오지 않았다.
한 번 나의 욕구를 충족시킨 경험이 쭈욱 이어지는 것이었다.
예전엔 그 한 번을 충족시켜 주지 않아 미련이 남아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거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난 좀 쿨한 척 알뜰한 엄마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