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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오라 Mar 11. 2021

엄마의 아픔 VS 아이의 아픔


아침에 눈을 뜨고 호흡을 하며 내 두 팔과 다리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런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상생활이 당연하지 않게 돼버릴 때 우리는 혼란스러워한다. 마치 지금의 코로나 팬더믹을 겪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만큼 행복한 삶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도 중요한 사실을 인지하고 살지 못할 때가 많다. 

가족 중에 어느 누구 한 명만 아프더라도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대로 그걸 지켜보는 가족들은 가족들대로 저마다의 힘듬을 겪는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아플 때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한다. 

그만큼 자식의 아픔과 고통을 지켜보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내가 아프기 전까지는 말이다.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희귀 난치병 진단을 받은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나는 여러 차례의 재발과 치료과정을 겪느라 입퇴원을 반복했었고 어린아이들은 지금은 중학생, 초등 고학년으로 훌쩍 커버렸다. 그사이 막내의 출산과정도 기적적으로 겪었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아! 만약,
가족 중에 누군가 아파야 한다면
부모 말고 자식이 아픈 게 낫겠다



이게 먼 어이없고 황당한 소리냐고 욕을 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만약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누구 하나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최고라고 온 마음을 다해 주변에 얘기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왜? 내가 건강하지 못하니깐 말이다.


근데 한번 생각은 해보자는 것이다.

정말 정말 누군가가 아파야 한다면 그래서 삶이 주는 고통을 겪어야 살 수 있다면 과연 어느 쪽이 그나마 나은 것일까?






내가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혼자서는 거동도 힘든 상태였고 손을 사용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때 큰아이는 4살이었고 둘째는 돌도 안 지난 상태였다.

한창 엄마 손이 필요할 시기였다. 그러나 나는 내 한 몸 추스리기도 힘들어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고 중간중간 시댁과 친정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신랑은 신랑대로 일 끝나고 와서는 아이들을 챙겨야 했고 나는 나대로 돌봐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러 병원을 다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진단을 받을 수 있었는데 정확한 진단을 위해 온갖 검사를 받아야 했고 치료는 치료대로 받아야 했기에 입원을 꽤 길게 했었다. 신랑은 보호자로 병원에서 나를 돌봐줬었고 아이들은 시댁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차후에 재발을 하게 되어 입원 치료를 받았을 때는 신랑은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주었고 나 혼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을 하곤 했었다.


치료를 받더라도 정상적인 몸상태로 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뿐더러 재발을 했다는 것 자체가 몸이 아프다는 얘기였기에 일상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었다. 한마디로 엄마가 아프니 집안꼴이 말이 아니라는 거다. 아이들은 한창 엄마 손이 많이 가는 시기였음에도 아픈 엄마는 해줄 수 있는 게 제한적이었고 어떤 일에는 할 수조차 없는 것도 있었다.





막내를 출산한 지 100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재발 판정을 받아 입원 치료를 받고 오게 되었다. 

그동안 100일도 안된 갓난쟁이는 언니가 와서 돌봐주고 있었는데 퇴원하고 집에 오니 언니를 엄마라고 생각했는지 힘없는 손이지만 안아보려 손을 뻗어 보이자 울음부터 터트리는 아이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은가? 아이가 아파서 병원 응급실에 가게 되었는데 몸이 회복되지 않아 아이를 안아줄 수도 우유를 먹여줄 수도 없는 상황. 언니가 보호자로 아이를 돌봐줘야 했고 난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던 상황. 그야말로 무능력한 엄마의 모습이었다.



사촌 중에 어려서 나보다 더한 희귀 난치병 진단을 받은 친구가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희귀 난치병. 병명도 길어서 어떤 병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도 딱 3명뿐이라고 들었었다. 뇌세포가 점점 죽는 병이었는데 어린아이의 인지능력과 수족을 제대로 못쓰니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태. 엄마는 그런 아이를 20년 가까이 돌봐주었는데 결국에는 몇 년 전 하늘나라의 별이 되었다.


그 흔한 요양시설에 보내지 않고 장사를 하시면서 그 아이의 수족이 되어 20년을 살아낸 엄마를 보니 대단하다는 말 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 힘들 땐 주변에서 다들 요양시설에 보내라고 그러다 엄마가 먼저 죽겠생겼다고 걱정의 마음들을 전했었지만 초췌해지고 힘없는 모습임에도 엄마는 자식인데 어떻게 그런데를 보내냐며 그 아이의 마지막 순간에도 꼭 끌어안고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사랑을 전해 주었었다.






아이가 아프면 속상함에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다.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있다. 잘 돌봐주어서 낫게 해 줄 수 있을 것이고 돈을 벌어 치료비를 감당할 수도 있다. 나을 수없는 병을 얻었더라도 아이의 수족이 되어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가 아프면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더 속상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똑같이 마음이 아픈 상태라면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보단 뭐라도 할 수 있는 상황이 더 나은 거 아닐까? 멀리까지 보자면 먼 훗날 자식에게 짐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아이가 부모의 짐이 되는 게 낫지 부모가 자식의 짐이 되는 건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더 열심히, 건강하게 살고 싶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게 최고다.


부모이건, 아이이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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