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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오라 Feb 23. 2022

게으른 주부가 되고 싶다

거실 밖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져 내려 거실을 뒤덮고 있다.

전기포트에 물을 끓여 드립 커피를 내렸다.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거실을 바라보니 멍해지는 기분이다.

그러다 불현듯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 미니멀 라이프라고 인스타나 유튜브에서 보이는 집들은 햇살마저 인테리어처럼 느껴지던데. 같은 햇살인데도 참 다르구나.'


누가 머래도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한다고 당당하게 얘기했었다.

올렸던 유튜브 영상에 '이게 무슨 미니멀이냐' '물건이 우리 집보다 더 많다'등등 좋지 않은 댓글이 달렸어도 처음엔 속상했지만 각자의 기준은 다른 거라며 나는 내 방식대로 미니멀을 추구하고 있다며 마음을 다잡았었다. 나에게 미니멀 라이프는 마침표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고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조차도 '이런 모습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책 쓰기를 하면서부터일 것이다. 글을 조금씩 쓰다 보니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었다. 그래서 매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쓴다지만 글을 쓴다는 건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한다. 새벽에 다 쓰지 못한 날도 많았다. 소모임을 운영했고 다른 모임에 참여도 했다. 거기에 독서도 꾸준히 해야 하니 시간이 여유롭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꾸준하게 실천했던 비우기와 정리가 후순위로 밀려버렸다. 처음엔 어질러진 모습을 못 견뎌해서 주말에 몰아서 정리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주말에 가족들에게 집중하다 보니 점점 손을 놓아버렸다. 어차피 당장 손대지 못할 거 눈 질끈 감고 급한일부터 하자 싶었다. 그 당시 우선순위는 글쓰기였기에 거기에 집중하며 살았다.


그렇게 살아오기를 몇 달. 아니 이제 1년이 되어간다. 그사이 집은 엉망이 돼 버렸다. 작년 말 람세이 헌트 진단을 받은 후에는 더 엉망진창이 되었다. 내 몸 하나도 건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살림은 어림없는 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픈 눈 안으로 들어오는 것들은 폭격 맞은듯한 집이었다. 특별히 큰 물건들을 들인 것도 아닌데 기존의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하고 아슬아슬 쌓기 놀이 중이었다.


아이들의 책상엔 온갖 물건들이 넘쳐났다. 아이들은 소중한 물건이니 건드리지 말라는데 내 눈엔 그저 잡동사니일 뿐이었다. 하지만 대꾸하지 못했다. 나조차도 집안을 정리하지 못하는데 애들한테 무슨 말을 할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비우기에 집중할 땐 다 갖다 버리고 싶더니만 지금은 무뎌진 건지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하지만 예전의 맥시멀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집안은 엉망일지 몰라도 마음은 아니다.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여전히 미니멀 라이프다. 단지 지금은 나 자신이 즐거워하는 일에 더 집중할 뿐이다.


며칠 후면 3월이 시작된다. 생명체들이 새롭게 기지개를 켜고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 나도 묵은 에너지를 정리해야겠다.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이야기도 꾸준히 써보려 한다. 몇 년째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고는 있지만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 채 발만 담그고 있다. 하지만 발은 빼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 글은 나 자신을 다독이는 글일 수도 있다. 그와 더불어 나 같은 분들이 계실 거라는 생각에 함께 포기하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에만 둘러싸여 사는 기쁨을 조금은 느껴보았기에 그 행복감을 다시 찾고 싶다. 매일 정리 정돈하지 않아도 언제나 깔끔해 보이는 집. 살림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고 싶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빠릿빠릿해지고 다른 일엔 게으르고 싶다. 글쓰기, 자기 계발하는 건 즐겁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살림은 쏘쏘다. 한 때 살림도 똑 부러지게 해보자 싶어 욕심을 냈었다. 하지만 정말 욕심이었다. 내려놓을 건 내려놓아야 한다. 주부라고 꼭 살림을 잘해야 하나. 부지런해야 하나. 나는 게으른 주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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