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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오라 Apr 04. 2023

신데렐라 구두

첫아이의 초등학교 취학 통지서를 받았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기분이 묘했다. 설렘, 기대심과 함께 걱정도 들었다.      


‘엄마 없이도 잘할 수 있겠지. 먼 거리도 아니고 가까우니깐 무슨 일 있으면 와보면 되겠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면 일을 다니다가도 관두는 경우가 많은데 그 반대의 일을 저질렀다. 돈이 필요했던 시기 우연히 함께 일을 해보자며 제안이 들어왔다.           


들어온 제안을 수락하면서 일을 시작하기까지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첫째는 초등학교 입학, 둘째는 유치원 종일반까지 해야 하는 새로운 환경에 대해 충분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느 날 외출하려고 현관문을 열려다 거울을 보게 됐다. 두꺼운 점퍼에 목도리를 칭칭 감아 흡사 곰이 아닐까 싶은 모습의 여자가 서 있었다. 이제 곧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나는 새로운 직장에 다닌다. 직장도 직장이지만 엄마들 모임도 있을 것이고 학교 행사들도 있으니 깔끔한 복장이 필요했다. 그동안 집에만 있으니 쇼핑을 하게 되더라도 편한 옷, 편한 신발만을 사 왔다. 면티에 운동화가 최고라 생각했다.           


신랑과 쇼핑몰에 들러 재킷과 신발을 구매했다. 몇 년을 운동화만 신고 다녔었는데 굽 있는 구두를 신으니 어색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키가 작은 탓에 어려서는 굽이 높은 구두만 선호했었다. 어쩌다 운동화를 사더라도 굽이 어느 정도 있는 신발을 구매했다. 구두를 신으면 키가 훌쩍 올라가 공기마저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엄마라는 명함이 생기니 구두는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 곁에 구두는 기동성을 떨어트렸다. 굽이 낮은 구두를 사게 되더니 어느 순간엔 구두 자체를 사지 않았고 단화나 운동화만 신게 되었다. 몇 년 만에 굽 있는 구두를 신은 것인지. 앞쪽에 달린 크리스털 장식들이 내 마음을 대변하듯 반짝반짝 눈이 부셨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신발장에 고이 모셔둔 새로 산 구두를 꺼냈다. 박스채 보관했었는데 신선한 공기로 샤워하는 순간이었다. 불쑥 올라간 키만큼 자신감도 함께 상승했다. 재킷까지 갖춰 입으니 영락없는 커리어우먼의 모습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또각또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끔씩 밖에서 들리던 이 소리가 시끄럽다고 느낄 때가 있었는데 오늘만큼은 일부러라도 더 걷고 싶었다. ‘또각또각’ 얼마 만에 내는 소리 었나. 학교까지 가는 그 거리가 오늘따라 더 짧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학교 안 강당에 들어서자 기대와 우려의 마음들이 공존하며 저마다의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학부모들은 내 아이들이 있는 반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눈으로 서로의 모습을 스캔하고 있는 듯했다. 기억하듯 못하듯 첫인상은 중요한 법이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신경 쓰고 왔다고 느껴질 만큼 겉모습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구두를 사기 잘했다 싶었다. 오랜만에 신어서인지 새 구두라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서인지 발은 아팠지만 견딜만했다.           


입학식 이후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구두를 꺼내 신었다. 구두를 신으려 하니 옷차림도 자연스럽게 신경 쓰게 됐다. 그 전에는 편안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어차피 멀리 가지도 않고 동네에서 왔다 갔다. 누구에게 잘 보일 일도 없고 아이를 키우고 살림하는데 불편하지만 않으면 되었다. 여름엔 운동화는 더우니 슬리퍼 형태의 편안한 신발만을 고수했다. 그러다 가끔 크리스털의 반짝이는 구두에게 세상 빛을 보여주는 날이면 내 마음속의 그 무엇도 반짝이는 기분이었다. 또각또각 소리는 집순이에서 사회인이 되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 anadventure, 출처 Unsplash



물건 비우기를 시작하고 신발장 한쪽에 장기 거주했던 여름 샌들이나 구두들은 상태에 따라 처분되었다. 오래된 아이들은 헌 옷 수거함에, 그나마 깨끗하고 멀쩡한 아이들은 기부로 새 주인을 찾아주었다. 그런데 이 구두만큼은 그래도 외부 행사가 있을 때 신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처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굽 있는 구두라 꺼려지는 일이 많았다. 외부 행사라도 스니커즈나 단화들도 있기에 거기에 맞춘 깔끔한 복장으로 대체되었다. 가끔 쇼핑몰에 들릴 때 신발 코너를 지나가게 되면 굽이 낮은 구두를 눈으로 찾고 있었다. 그래도 번듯한 구두는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크리스털의 그 구두는 굽으로 인해 불편함이 먼저 떠올라 지금은 뒷방 신세가 되었다. 그럼에도 가끔씩 꺼내 상태를 확인할 때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현관 앞에서 신어보고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보기도 한다. 문을 열고 나가면 지금과는 다른 또 다른 세상이 있을 것만 같다. 신데렐라의 구두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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