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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오라 Apr 09. 2023

미련과 망설임 사이 그 어딘가.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이 사이즈도 맞을 것 같은데요?
아니요, 골반이 커서 한 치수 큰 걸로 주세요       


옷을 사러 매장에 갈 때마다 말하게 되는 단골 멘트다. 허리 사이즈보다 골반 사이즈에 맞추니 골반엔 맞는데 허리는 남아돌아 붕 뜨게 되니 옷맵시가 살지 않았다. 남들은 흔한 말로 핏이 사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내 모습에 내 골반은 왜 이러냐며 툴툴거릴 때가 많았다. 그러다 역전이 되는 때가 있었으니 바로 출산하고 나서다. 남들은 출산하고 모유수유를 하면 살이 쭉쭉 빠진다던대 예전 몸무게로 돌아가지 못했다. 나왔던 배도 그대로였고 원래부터 내 모습인양 편안한 상태로 볼록 나와있었다. 뱃살이 많으니 예전의 옷들을 입을 수가 없었다. 옷을 사러 가면 큰 치수를 입는다고 말하는 게 싫었다. 머뭇거리는 내게 점원이 찾아와 물어보곤 했는데 그럴때마다 좋은 핑곗거리가 돼주었다. 뱃살이 많아 큰 치수 입는 게 아니라 골반이 크니 큰 치수를 입는 거라며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골반이 커서 그런데 이것보다 한 치수 큰 거 없나요?



상의도 마찬가지다. 짧은 상의를 입으면 볼록 나온 배가 보여서 싫었다. 길이가 긴 상의들을 주로 사서 입었다. 골반이 크니 엉덩이도 큰 편인데 긴 옷이 엉덩이도 가려주니 일석이조였다. 출산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옷을 사러 갔을 때 사이즈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디자인이나 색상이 맘에 들면 바로 구매를 했다. 하지만 살이 찐 후로는 그 모습을 적당히 가려주는 옷들을 선호했다. 첫 아이 출산하고 나서는 그나마 나았다. 둘째를 출산하자 또다시 임신으로 인해 늘어난 몸무게가 줄지 않고 처음부터 그 몸무게인 것처럼 숫자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첫 아이 낳고 사이즈가 안 맞으니 옷을 새로 살 수밖에 없었는데 둘째 때도 마찬가지였다. 첫 아이 낳고 샀던 옷들 마저 입을 수가 없었다. 옷들은 점점 늘어나 장롱 안이 가득 재워졌다.           



© priscilladupreez, 출처 Unsplash



예전 옷들과 새로 산 옷들이 뒤엉켜 옷을 빼거나 넣기도 힘들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만나고 실천하면서 숨쉬기 힘들던 옷장이 변화할 수 있었다. 셋째 낳고 세돌이 안될 무렵 몸무게의 숫자가 내 인생 최고 숫자를 가리키자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운동과 식이를 조절하는 다이어트를 했다. 체력도 키우고 살도 빼니 금상첨화였다. 이쯤 옷장 안은 새로운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던 초반. 제일 먼저 정리하고 비워냈던 공간이 바로 내 옷들이 있는 옷장이었다. 안 입고 전시만 해둔 옷들이 태반이었는데 기부로 나눔으로 많이 비워냈다. 물론 멀쩡하고 깔끔한 옷들에 한해서다. 그러나 나눔에 동참하지 못하고 버려진 옷들도 많았다. 본전 생각이 나서 차마 처분하지 못한 옷도 있다. 추억이 가득 담긴 사연 있는 옷들도 꽤 있어 비울 수 없었다. 부끄럽지만 택도 제거하지 못한 새 옷들도 몇 개 존재했다. 그런 옷들을 비워내면서 아까웠다. 여태 돈 낭비하며 살았구나 싶은 생각에 구매에 대해 신중한 마음이 생겼다.           


옷들을 비워내자 답답했던 옷장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 옷을 고르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틈이 생기니 고르고 꺼내는 일이 수월해졌다. 여유로운 공간을 보자 내 마음도 여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는 예전 옷장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지금의 옷장에는 내가 잘 입고 좋아하는 옷들이 주로 있다. 여전히 사연 있는 옷들과 본전 생각나는 옷도 몇 개 존재하지만 말이다. 한참 비우던 그 시절엔 나에게 필요 없는 옷들이라 생각이 들면 아까운 마음보단 이쁘게 입어줄 수 있는 주인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에 새 옷이고 멀쩡한 옷들이지만 나눔을 택했다. 설령 기부나 나눔을 할 수 없는 상태인 옷일지라도 남아 있는 옷들이 숨 쉴 수 있는 옷장을 생각하니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옷들에게조차 이별을 선택해야 한다면 1분의 망설임도 없이 이별을 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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