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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오라 Mar 22. 2022

82년생 김지영, 공감 그리고 현타


82년생 김지영.

16년도에 첫 출간이 되고 선풍적인 인기와 함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책이다. 엄청난 공감대와 찐 팬들을 형성하며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읽어볼 법도 한데 주위에서 많이 듣기도 했고,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어떤 부분에 공감했고, 사랑을 주었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했었다.

영화도 마찬가지. 실감 나는 연기와 탄탄한 스토리로 몰입도는 최고였지만 영화 속 김지영의 삶과 비슷하게 치열하게 육아 전쟁 중이었던 때다. 영화관 나들이는 솔로족, 연인들이나 다니는 곳이라 여겼다.


장편소설이라지만 아담한 책 사이즈, 술술 읽히는 글에 빠져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무엇보다 스토리가 뻔했지만 뻔할 수 없는 이야기. 비슷한 연령대의 독자라면 모두 다 내 얘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져들게 만드는 마성의 흡입력과 공감대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김지영이 되고 김지영이 내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김지영이 겪는 부당함과 억울함에, 슬픔과 기쁨에 빙의되어 책을 읽는 내내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대부분 공감 가는 이야기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으로 갈수록 몰입은 절정에 이르렀다. 또한 생각하게 되는 부분들도 많았다.




전업주부가 된 후, 김지영 씨는 '살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이중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때로는 '집에서 논다'라고 난이도를 후려 깎고, 때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떠받들면서 좀처럼 비용으로 환산하려 하지 않는다. 값이 매겨지는 순간,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82년생 김지영



맞벌이하다 전업주부가 됐다. 육아보다 일하는 게 더 낫겠다며 하루하루 살림에 치이고 아이 돌보느라 진이 빠졌다.


 '옛날엔 손빨래에 도시락 싸주고 손걸레질하며 살림했다. 거기에 일까지 다니면서 니들 셋 다 키웠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고 바빠서 그래~'


바쁘고 정신없다며 전화 한 통 하지 못했다. 안부 전화 나눌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런 딸자식에게 서운함을 토로하셨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엄마는 더 안 좋은 환경에서도 악착까지 삼 남매를 키워내셨다. 하지만 환경은 좋아졌을지 몰라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그때는 먹고사는 게 힘들던 시대였지 아이들 키우는데 힘들던 시대는 아니었다. 오히려 저절로 크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가르쳐야 할 것도, 챙겨줘야 할 것들도 많다. 세상도 위험천만하다. 하지만 이런 시대의 변화를 잘 모르는 어른들은 우리 엄마와 같은 소리를 하신다. 책에서는 직설적인 표현들과 비유로 변화를 풀어놓았다. 퍽퍽한 밤고구마를 한번 베어 물고 속이 콱 막힌 상태였는데 그야말로 사이다를 숨도 안 쉬고 벌컥벌컥 들이켜는 느낌이었다.


육아에만 올인하다 아이가 시설에 가면서 김지영은 고민한다. 대출금과 함께 팍팍한 살림살이에 돈을 벌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일자리를 찾아본다. 하지만 만만치 않음을 깨닫는다.


김지영 씨는 10년 만에 다시 진로를 고민했다.
10년 전에는 적성과 흥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훨씬 더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했다.
최우선 조건은 지원이를 최대한 자신이 돌볼 수 있을 것.
도우미를 따로 고용하지 않고 어린이집에만 보내고도 일할 수 있을 것.

82년생 김지영



한때 아이들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 대체교사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고 싶은 베이킹을 배우고 싶어 4시간여의 식당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다. 김지영은 아이스크림가게 아르바이트를 두고 고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하고 싶은 일 관두게 했는데 하기 싫은 일  하는 것은 반대하고 싶다는 신랑의 말에 고심하다 결국 그 자리마저 놓치게 된다.


신랑이 그렇게 얘기해주면 든든할 것이다. 나의 어려움과 고충을 이해한다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누구는 하고 싶어 하는 줄 아나? 현실이 그렇잖아. 내 일도 하고 싶고 돈은 벌고 싶은데, 몇 년 동안 아이만 키우던 사람을 받아주는 곳이 어디 있나요? 아이 키우면서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장이 있긴 한가요?'  반문하고 싶었다.


아이 키우면서 일을 하려니, 하다못해 아르바이트라도 구할 수 있는 곳이 식당일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이 제한이 제일 큰 산이었고, 그다음은 시간의 문제였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 나이의 제약이 덜 한 온라인에서의 일을 하고 싶었다. 여기도 분명 여러 제약들과 어려움은 존재하겠지만 '내가 하기 나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야기가 끝나버렸는데 '뭐지?' 드라마에서 절정으로 치닫는 이야기가 끝맺지 못하고 다음 예고편으로 넘어갔을 때의 황당함이었다. 오디션 결과를 보려는 찰나 광고로 넘어가버리는 짜증이 섞여있었다. 뒤이어 작가의 말이 나오고 여성학자가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던지는 질문들과 해석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읽고 나서야 '아하! 그렇구나.'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 사유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 단상들이 떠올랐다.


김지영은 회복될 수 있을까? 마지막 장은 불안한 여운을 남긴다. 중략

이런 세상에서 김지영의 회복을 바라야 할까?
김지영의 회복은 곧 김지영을 위해 대신 말해 주는 방식의 여성 연대의 중단을 의미한다.
지금의 김지영이 더 행복하고 더 자유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지영의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 다른 사람이 대신 말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지영은 어떻게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을 수 있을까?

82년생 김지영


그 시대의 여성으로 대변되는 82년생 김지영. 과거의 비해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세상도 변했다지만 출산과 육아의 행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다만 아빠들의 육아 참여도가 높아진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은 때마다 고민에 휩싸인다. 아이 키우며 자기 일을 해나가는 여성들 중 당당한 엄마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존재 하기는 하지만 평균은 아닐 것이다. 육아맘들도 그 나름의 고민들과 힘듬이 존재한다. 누가 더 낫냐? 괜찮을까?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이제 그만 때려치우자.

각자의 자리에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환경이나 인식이 변화되지 않는 한 세월이 흐른다 해도 제2의 김지영, 제3의 김지영은 존재할 것이다.





책을 다 읽고 여운이 남아 한참을 생각하다 문득 표지 뒷장 출판사 소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첫 부분을 보자마자 여운의 몽글몽글함은 공기 중에 흩어져버렸다.

환상적인 별빛 쇼를 보다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랄까.


1판 1쇄 펴냄 2016년 1월 14일
1판 82쇄 펴냄 2019년 10월 15일


얼마 전 중고사이트에서 구입한 책이었다. 19년도에 82쇄면 지금 나오는 책은 몇 쇄 일까?

심봉사가 눈 뜬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점에 가서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술술 읽히는 공감되는 이야기. 사람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가는 서사에 가슴이 뛰었다.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는데 82쇄라니 후덜덜~

오랫동안 사랑받는 책, 인쇄로만 먹고살아도 되겠다 싶은 책은 이런 책인가.

쭈글거리는 마음을 잘 접어두고 글을 쓰기 위해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손가락을 자판 위에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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