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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오라 Apr 01. 2022

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다는 건.

처음 내 이야기를 쓰고 싶을 땐 앞뒤 따지지 않고 노트북에 손가락을 올려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들겼다.

오타가 나건 말건 문맥이 맞건 틀리건 그냥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손가락이 이리저리 움직여 글자를 만들어 문장을 완성해나갔다. 그렇게 한글파일 한 장을 쉼 없이 완성한 날이면 후련했고 시원했다. 맨밥만 꾸역꾸역 먹고 있었는데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사발채 들고 꿀꺽꿀꺽 들이키는 느낌이랄까.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내 살아온 인생을 글로 쓰면 책이 몇 권인 줄 아나'

 

 '그래, 나도 쓰다 보면 책 한 권은 거뜬히 나오고도 남겠다' 뭔지 모를 자신감이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내 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 훨훨 날아가게 했어야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살고 싶어 내 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고 꺼내고 또 꺼냈다.


그 중심엔 가족이 있었다. 가족을 빼고는 내가 살아온 삶을 그려낼 수 없었다. 내 이야기이자 가족의 이야기였다. 문득문득 이렇게 써도 되나 싶은 생각이 스쳤지만 그러면 끝까지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단 쓰고 볼 일이었다. 무작정 써낸 글은 다시 보지 않았었다. 처음 느낌 그대로 글을 간직하고 싶기도 했고, 새로운 글을 계속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몇십 장의 초고가 쌓이면서 마음은 점차 평온해지는 것 같았다. 거칠었던 문장들이 온순해져 말랑말랑해져 있었다.


시간이 흘러 책을 내야겠다는 마음을 굳힌 뒤 초고를 다시 꺼내보았다. 그리고 하나씩 읽어가며 퇴고를 했다. 퇴고를 하며 이 글이 과연 세상에 나와도 되는 글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시간이 갈수록 걱정의 마음도 커져만 갔다. 내가 좋아서 쓰는 글이었고, 쓰고 싶은 내용이었으며, 분명 나의 이야기인데 속이 상했다.  누군가가 작고 가는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가족의 이야기라 조심스러웠고 불편한 감정도 들었다.


 '나로 인해 소중한 내 가족들이 상처를 받으면 어쩌지'


'내가 살겠다고 가족들에게 크고 깊은 상처를 주는 건가. 상처를 주려고 쓴 글은 아닌데.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들을 지금이라도 알리고 싶었고,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마음을 오해하면 어떡하지.'


쓸 때부터 사전에 이야기하고 동의를 구했어야 했나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왔고 그러면 솔직한 이야기를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단 마무리를 하고 내 진심을 전하자 싶은 생각으로 결론 냈었다.


시간은 흘렀고 출판사 투고에 성공해 계약을 하게 됐다. 사실 출간 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면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올 일도 없는 글이었다. 그랬기에 성공했을 때 결론을 이야기하며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해할 수도 있는 글이겠다. 상처받는 글이겠다 싶은 글들은 초고에서 빼낸 뒤 전체 원고를 보냈다.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들을 끄집어내 직관을 해보니 별 것 없는 감정들이었다. 그 당시엔 아프고 아파 죽을 것 같았던 마음이 정면으로 응시하자 연기가 되어 흩날리듯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빼버렸다. 책이라는 결과물은 찢는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가린다고 가려지는 것이 아니기에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이 평온해졌으니 그걸로 되었다.


그럼에도 들어가야 할 이야기들은 들어가야 하니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출간 계약을 맺은 후 좋은 날, 좋은 시간, 적절한 타이밍에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나 이렇게 극복하고 이겨내서 잘 살고 있노라 말하고 싶었다. 아픈 사람이라고 가슴 아파하며 속상해하지도 말고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으니 걱정은 그만하고 앞으로도 잘 살아보자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너무 타이밍만 따졌던 걸까. 어쩌면 포장을 잘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을지도 모른다. 몇 번의 기회는 있었지만 그땐 용기가 없었고, 용기가 생긴 후로는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들이 연이어 터졌다. 친정 부모님 건강에 적신호가 커졌고 엄마는 수술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거기에 시아버님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람세이헌트 증후군에 걸린 나, 시댁 식구들의 건강 이상까지. 좋지 않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니 용기가 생겼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현실의 아픔부터 돌봐야 했다. 지금은 연이은 코로나 확진으로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다 건강을 묻는 안부 전화에 불쑥 참고 참아왔던 말이 튀어나왔다.


"엄마,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아빠를 이해하게 됐네, 아빠도 가엽더라고. 갑자기 살가운 딸처럼 행동할 순 없지만 난 아빠가 전처럼 밉지 않아. 그리고 엄마 키워줘서 고마워. 너무나 너무나 잘 키워줬어"


옛날이야기 꺼내니깐 마음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엄마가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정적의 순간을 깨고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


"그런데 어떻게 책을 쓸 생각을 했어"


그 뒤로 한참이나 이어진 통화에서 엄마나 나나 울컥해지며 떨리는 목소리가 순간순간 느껴졌다.

옆에 있던 막내가 보채는 탓에 '상황 좋아지면 책 가지고 갈게' 말을 전한 뒤 급하게 통화는 마무리됐다.


© evertonvila, 출처 Unsplash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적절한 타이밍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왔어도 모른 척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대하고 기대하던 내 책이 세상에 나왔다. 행복했고 축하받아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마음속에 묵직한 돌덩이 하나를 품고 있어 한편으론 무거웠고 숨이 막혔다. 이제 그 돌덩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조만간 잘게 부서져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내 삶도, 내가 쓰는 글도 좀 더 가벼워지겠지.


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다못해 블로그나 브런치에 공개된 글을 쓰는 일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인쇄되어 나오는 책이라니. 가늠하지 못했기에 글을 쓸 수 있었고 책이 되어 나올 수 있었다. 무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내 성격이 반영됐다거나 내 안에 검열관에게 무수히 지는 상황이 발생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할 글들이었다. 하지만 만약 또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그땐 그 용기를 나에게만 쓰는 게 아니라 가족들이나 타인에게 먼저 발현시켰으면 좋겠다. 그러면 좀 더 가볍고 홀가분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엄마! 나 지금도 글을 쓰고 있어, 두 번째 책도 낼 거야"


"어쩌다 그런 재주가 생겼을까, 엄마는 일기 하나도 못쓰고 살았는데"


"엄마, 나 사실 진단받고 엄청 힘들었었어. 그때 책을 읽으며 위로받았고 힘낼 수 있었어. 나도 다른 사람들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 힘내라고 말이야."


엄마와의 통화로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다시금 장착됐다.


"엄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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