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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나 Aug 13. 2023

1. 스물아홉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정신과 간호사까지

원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 토익시험 무경험자 호주살이 시작

지금 현재 나는 호주 한적한 도시와 시골 그 중간 어디쯤에 속하는 어느 동네에서 거주하며 정신건강 및 마약 그리고 알코올부서 (Mental Health Drug and Alcohol Department)에서 정신과 간호사 (Registered Psychiatric Nurse)로 일을 하고 있다.


글을 쓰기로 결심을 하고 실제로 글을 쓰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건 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내 이야기의 출발선을 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거는 내가 유학하는 동안 에세이를 쓸 때도 늘 부딪혔던 문제인데, 에세이 인트로를 잘 쓰고 나면 글이 술술 참 잘 풀렸지만 인트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는 글을 더 써내려 가는 게 되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나의 첫 직장인 요양병원에 관련된 이야기부터 시작했는데 글을 쓰다 보니 나는 너무 하고 싶은 말이 사람이었다. 그렇다 보니 세상에 내보내고 싶었지만 내보낼 수 없었던 두서없이 방향을 잃은 글들은 메모장에서 여러 번 쓰고 지워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갈 곳을 잃은 이야기들은 결국 글로 태어나지 못하고 내 머릿속에서 엉켜 맴돌다 드디어 첫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내가 호주에 처음 도착해서 유학을 결심한 그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여정을 그때의 감정과 생각을 기억나는 만큼 최대한 끄집어내어 써보려고 한다.


나는 서른이 넘어 호주에서 유학을 시작한 만학도였는데 처음부터 유학을 결심하고 호주에 온 것은 아니었다. 29세 그 당시 나는 한국에서 일과 야간대학원을 병행하며 금요일에는 친구들을 만나는 평범한 K-직장인이었다. 유학을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경제적인 이유도 포함하여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생각하지 않았고 영어도 미드 덕분에 일상생활 회화는 가능했으나 학교를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레벨은 아니었다. 또한 나는 그 흔하다는 토익 시험 한 번 친 적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유학이란 내 인생에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한국에 있던 그 당시 나는 대학원 전공 과정 중 겪은 일들 때문에 학교를 다니는 것에 약간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고, 내가 일하던 직장의 교수님 또한 곧 해외로 연수를 가시게 되어 이래저래 나 또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많은 물음표가 찍혔다. 공부도 일도 그만두고 무엇을 할지는 몰랐지만 배운 것도 많고 깨달은 것도 많은 나의 첫 직장이라 떠날 생각을 하니 굉장히 아쉬워서 교수님이 연수 가시기 전까지 일 하면서 잘 마무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나의 학부 및 대학원 전공과는 전혀 다른 의료 계통의 일이었지만 나는 이 일을 참 좋아했었다. 대학원과 병행하려고 알바 정도로 생각하고 우연히 시작하게 된 일이었는데 예상보다 오랜 기간 일을 하게 되었고 덕분에 의료 쪽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의료 전공이 아니다 보니 지식적인 한계 및 직급의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러한 깨달음이 내 마음에 소용돌이치던 어느 날 나는 그 당시 정부에서 지원해 주던 K-move라는 프로그램을 발견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그 나라에서 필요한 자격증 취득 수업 및 필리핀 두 달 영어수업 과정 그리고 편도 비행기 티켓을 포함한 전체 비용 중 일부를 지원해 준다고 했는데 그 당시에 사기가 아닐까 살짝 의심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프로그램은 한국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잠깐 만들어진 워킹홀리데이프로그램이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워킹홀리데이가 비자 이름인지도 모르고 워킹홀리데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생각했고 이 프로그램은 최소 비용으로 영어권 국가에서 직접 부딪히며 영어를 연습하고 외국의 의료 시스템을 경험해 보고 오자는 나의 목적 달성을 위한 최적의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에 바로 지원 후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그 당시에 캐나다와 호주 두 나라 중 한 곳을 선택하여 차일드 케어 또는 에이지드 케어 둘 중 관심 있는 분야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었다. 일단 나는 추위를 정말 많이 타서 추운 나라 및 한국과 시차가 많이 나는 나라를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캐나다보다 덜 춥고 한국과 시차도 크게 나지 않으며 이전에 학회 때문에 방문한 적이 있고 지인도 살고 있는 호주로 선택했다. 국가를 선택하는데 단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K-move 프로그램 직원분들이 내 전공 및 자격증을 보시더니 차일드케어가 좋겠다고 조심스레 권유를 하셔서 아주 잠깐 고민을 했는데 그래도 나는 내 전공과 무관하지만 의료 쪽에 좀 더 관심이 있고 어르신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에이지드 케어를 선택하게 되었다. 호주의 에이지드 케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고 어떤 일인지 감도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의료계통을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살짝 들뜨기도 했다. 그러나 이 들뜸도 잠시 나는 내가 한 결정으로 인하여 호주에서 마주하게 될 현실을 알지 못한 채 짐을 싸서 한국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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