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이 이런 곳이라면
요양원 실습은 아침 일곱 시부터 오후 세 시 반까지 총 3주간 진행되었다. 실습 첫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전날 저녁에 준비해 둔 도시락을 챙겨 룸메이트 동생과 해가 채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 기차역에서 같은 곳으로 실습을 나가게 된 동생들을 만나 다 같이 어둠을 뚫고 실습지로 향했다.
실습을 했던 요양원은 그 당시 살던 곳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기차역에서 내려서 약 20분 정도 걸어 들어가야 했다. 처음 가보는 동네 그리고 사람 한 명 없던 어두운 길, 어떤 일을 마주할지 모르다는 긴장감이 가득 찬 상태였으나 다행히 같이 그 길을 걸어가던 동기들이 있어 참 다행인 첫날이었다.
실습을 했던 요양원은 필리핀 가톨릭 계열에 자그마한 주택을 개조하여 만든 곳이었다. 밖에서 언뜻 보면 외관상으로 요양원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호주에 와서 처음 본 요양원이었기에 호주 요양원 모두가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몇 십 군데가 넘는 요양원을 경험하고 보니 실습했던 곳이 굉장히 열악한 상태의 요양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가 스멀스멀 올라올 무렵 요양원 문 앞에 도착했다. 밖에 설치된 벨을 누르자 삐이익 하는 귀를 찌르는 소리가 났다.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자 어두컴컴한 복도가 보였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자주 갔던 소아과에서 보던 짙은 나무로 된 바닥과 벽면이 있던 복도와 비슷해 보였다. 들어가자마자 내 인생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났는데 뭔가 설명할 수 없지만 오래된 장소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 같으면서도 쾌쾌하고 지금은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꽤 한편으로 불쾌하면서도 불편하기도 했던 대소변이 섞인 냄새가 났다. 나는 원래가 몸이 좀 예민한 편인데 특히나 후각은 더 예민해서 어렸을 때 엄마아빠가 우리 집에 개코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 처음 맡았던 그 특유의 냄새는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다. 여러 냄새가 섞여 뒤덮인 복도를 지나 리셉션에서 방문객 목록에 이름과 시간 및 날짜를 적은 후 누군가 우리를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다. 어두운 곳에서 여러 가지 섞인 냄새를 맡고 있자니 조금 더 긴장되는 기분이라 눈알을 요리조리 굴러가며 잘 보이지도 않던 어두컴컴한 그 공간을 훑어봤다. 그리고 어떤 누군가가 다가와 우리를 2층 직원휴게실로 데려갔다.
의례 개강 첫날은 수업이 빡빡하지 않아 학생들이 조금 느슨한 마음을 가지고 학교로 가듯 나 또한 오늘은 실습 첫날이니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날일 거라고 당연하게 기대를 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기대와는 달리 2층에 짐을 내려두자마자 우리는 바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이곳 요양원은 신체적으로 거동이 불편한 분들과 치매 환자분들이 많이 계셨고 정신이 온전하신 분은 오직 한 분 계셨다. 간호의 강도에 따라 하이케어와 로우케어로 병동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어디로 갈지 결정하기 위해 동기들과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지는 바람에 하이케어 병동에 배정되었다.
요양원의 아침 루틴에 대해서 설명을 듣지도 못하고 바로 투입된 상태라 굉장히 정신이 없고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의 버디로 배정된 태국인 요양보호사가 다가와 우리는 지금 샤워를 시켜야 할 사람이 10명 넘게 있으며 샤워 후 아침 식사도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제대로 하고는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제대로 된 오리엔테이션을 받지도 않아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처음 해보는 일이 나를 더욱 긴장하게 했다. 그래도 일머리가 있는 편이라 눈치껏 행동을 잘하는 편인데 실습에서의 첫날은 정말이지 괴로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지금은 요양원의 패턴을 훤히 꿰고 있어 괜찮지만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노동의 강도와 시간의 압박이 정말 크다.
요양원의 아침은 굉장히 바쁘게 돌아가는데 각 요양보호사마다 환자의 수가 배정이 되면 시간을 분배하며 할당된 환자의 절반 정도를 샤워를 시킨 후 옷을 갈아입히고 아침 식사를 할 수 있게 방안을 세팅을 해야 한다. 그리고 여덟 시부터는 배식을 시작하고 다이닝에서 식사 보조(feeding)가 필요하신 분들을 도와드린 후 식사 시간이 끝나면 식판을 회수하여 조리실에 다시 가져다준다. 아침 식사 정리가 끝난 후 나머지 남아있던 환자들을 샤워를 시킨 후 옷을 갈아입히고 환자들의 선호도에 따라 액티비티에 참가하거나 방에 머물거나 할 수 있다. 샤워가 끝나면 아침 식사 후이기 때문에 기저귀를 확인 후 토일렛팅(Toileting)을 시킨다. 또한 열 시에서 열 시 반 정도 모닝티 (Morning tea, 간식시간) 시간에는 비스킷 그리고 커피와 함께 간식을 나눠드린다. 모닝티 시간이 끝나면 다시 접시 및 컵을 회수하여 조리실에 갖다 드린다. 그러고 나면 점심시간이 되는데 그때 또 환자들이 식사를 할 수 있게 준비를 하고 배식 후 다시 식판을 걷어와 조리실에 가져다주고 정리를 한다. 점심 식사 후이기 때문에 또다시 한 분 한 분 토일렛팅(Toileting) 및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하다 보면 어느새 오전 근무 시간이 끝나있다. 이러한 패턴을 첫 실습날에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물밀듯이 밀려오는 일과 노동의 강도가 굉장히 버거웠다. 그런데 이것보다 나를 더욱 버겁게 한 것은 내 인생 처음 보는 광경들을 마주한 충격이었다.
첫 날 만났던 나의 첫 할머니 환자분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 할머니께서는 굉장히 노쇠하셔서 거동이 거의 불가능하셨으며 정신적으로도 온전하지 못하셨다. 할머니를 샤워시키기 위해 호이스트(Hoist)를 사용하여 할머니 방에서 공용 샤워실로 할머니를 이동시켰는데 체구가 작고 거의 뼈만 남으신 할머님이라 호이스트에 매달려 이동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불편해 보였다. 이동하는 동안 할머니께서는 노우(No)라며 계속 소리를 지르셨고 샤워를 하는 내내도 소리 지르는 것을 멈추지 않으셨다. 누군가를 이렇게 기계에 매달아 이동하는 광경을 처음 보았기에 너무나도 조심스럽고 내가 다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샤워실에서 인간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샤워실에는 샤워실의 온도를 높여줄 따뜻한 열이 나오는 기계가 벽면에 붙어있었고 아주 옛날식 작은 정사각형 파란 네모난 타일들이 붙어있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샤워실이었다. 할머니를 호이스트(Hoist)에서 샤워 체어(Shower chair)로 옮겨서 앉힌 후 물의 온도를 따뜻하게 맞추어 샤워를 할 준비를 마쳤다. 할머니의 몸을 구석구석 씻겨드리는데 어디선가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밑을 내려다보니 이미 내 신발 주변으로 갈색의 묽은 대변들이 줄줄 흘러나와있었고 샤워 체어 밑으로 머리를 살짝 밀어 넣어 보니 할머니께서 이미 대변을 보시는 중이셨다. 직장이 살짝 탈출되어 있는 상태에서 대변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고 샤워실은 따뜻한 김으로 인해 대변냄새로 가득 찼다. 따뜻한 물은 대변을 더욱 분쇄시켜 퍼뜨리기 때문에 씻어 내리기 힘들어 차가운 물로 바닥에 흘러나온 대변을 하수구로 계속 밀어내려 보냈다.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라 덤덤하게 쓸 수 있는데 그 당시 내 인생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일단 흘러나오는 대변들을 빨리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신발과 바짓자락에 대변이 튀는 것도 모르는 채 물로 씻어내렸고 환자들 샤워를 시킬 때 요양보호사들이 입는 얇은 플라스틱 가운을 입었던 상태라 땀까지 흘릴 대로 흘리는 상태였기에 대변냄새와 뜨거운 김이 섞여 있는 그곳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져 빨리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굉장히 죄송스러우면서도 이게 한평생 열심히 묵묵히 살아온 사람이 맞이하는 삶의 끝자락이라면 너무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께서는 간호사로 30년을 넘게 일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할머니 인생의 절반을 다른 사람을 간호하며 사시다 할머니 인생 마지막장을 요양원에서 쓰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 행복한 말년을 보내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만약 할머니께서 정말 최고의 간호를 받고 계셨다면 조금이나마 나았겠지만 이곳 요양원의 실상은 그렇지 않았기에 할머니 인생의 마지막은 불편한 것을 감내하며 그냥 하루하루 버티시는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여러 가지였는데, 요양보호사 한 명에게 할당되는 환자의 수가 많으며 아침마다 대부분 샤워를 시켜야 하는 이곳의 요양보호사 노동의 강도는 굉장하다. 그래서 샤워라는 개념이 샤워가 아니라 모든 것이 최대한 속전속결로 끝나야만 하는 하나의 타스크에 불과했다. 물론 이것은 요양보호사의 탓이 아니다. 빨리 샤워를 시키지 않으면 주어진 일을 제시간에 끝낼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갔다. 그렇지만 환자분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제대로 된 케어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내 눈으로 보아도 이것은 홀리스틱한 케어가 아니었다. 또한 강압적인 말투로 얘기를 하고 베드에서 사지가 마비된 환자의 포지션을 바꿀 때도 굉장히 거칠게 밀기도 했다.
첫날 내가 할머니 몸을 구석구석 닦아드리며 샤워를 시키고 있으니 옆에서 지켜보던 버디 요양보호사가 굉장히 짜증이 난 목소리로 "너 그렇게 일하면 안 돼, 우리 제시간에 일 못 끝내고 지금 샤워할 사람이 굉장히 많이 남아있어".라고 말하며 샤워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건 샤워가 아니라 거품을 앞 뒤 다리 머리에 몇 초 만에 묻힌 후 그냥 물로 씻어내려 2분도 안 돼서 끝이 났다. 정신이 온전한 분을 케어한다면 물론 이 정도로 빠르게 샤워를 끝마치지 못했을 것인데 이 할머니께서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시고 계속 소리를 지르셨기 때문에 요양보호사가 할머니의 불편을 덜어드리려고 최대한 빨리 끝내려고 그런 걸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는 납득할 수 없었고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이런 곳이 요양원이고 내 생을 마감하고 내 가족들이 지내야 할 곳이라면 절대로 보내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물론 요양원마다 요양보호사마다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대충 케어하는 요양보호사도 있지만 굉장히 정성을 들여 케어하는 요양보호사도 많이 보았지만 그래도 이 당시에는 요양원이라는 곳이 인간이 인생을 행복하게 마감할 수 있는 장소로 보이지는 않았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낀 첫 실습 날, 환자분들한테 좀 더 나은 케어를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마음에 죄송했고 열악한 환경을 바꿀 수 없는 사실에 무력함을 느끼기도 했다. 또한 내 인생 처음 마주한 광경이 충격적이기도 했고 인간의 몸이 약해지고 병들었을 때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신체적 증상 앞에서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환자분들의 표정을 보는 것은 마음을 아프게 했기에 그리 즐거운 첫날은 아니었다. 첫날 실습을 마친 후 요양원 문 밖을 나서자마자 비치는 밝은 햇살이 너무나 반가웠고 멈추지 않는 일과 고된 노동 강도로 첫날 다리가 너무 부서질 거 같아 앞으로 남은 3주를 어떻게 버텨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랬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일이 익숙해지며 내가 여태 경험한 적 없던 세상에서 또 다른 의미와 가치들을 발견하며 생각보다 잘 버텨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