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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나 Aug 20. 2023

2.나를 호주 간호사가 되게 한 그 첫걸음, 요양보호사

시드니에서 Assistant In Nursing (요양보호사) 첫 수업

서른을 맞이하기 약 두 달 전 내 인생 20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서 그렇게 나는 호주 시드니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모든 걸 다 두고 온 거에 대한 약간의 해방감이 나를 들뜨게 했고 낯선 곳에서 펼쳐질 내 인생 또한 기대가 되었다. 서른이 코앞에 있어서 그랬는지 오랜만에 느껴본 해방감과 기대감은 마치 나를 진짜 어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줄 것도 같았다. 하지만 다니던 대학원도 직장도 다 그만두고 온터라 1년 뒤 한국에 돌아갔을 때 내가 마주하게 될 현실이 이따금씩 생각날 때면 발끝에서부터 부담감이 엄습해 와 나를 휘감기도 했다.

이런 부담감을 그냥 모른척하고 싶어서 그랬는지, 도피성 여행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나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내 인생은 어떻게든 잘 된다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러한 나 스스로에 대한 이상한 믿음 덕분일까 부담감이 엄습해 올 때면 최대한 흔들리지 않으려 스스로에게 확언을 하며 스멀스멀 올라오는 부담 덩어리들을 마음 한 귀퉁이에 밀어 넣곤 했다. 그리고는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이 시간을 급하게 가다 체하지 않게 최대한 여유롭게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여름이 다가오기 직전이었던 시드니는 건조하면서도 너무 차갑지도 그렇다고 뜨겁지도 않은 바람이 불었다. 처음 겪는 건조함에 초반에는 코에서 계속 피가 났고 벙커침대가 두 개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작은 4인실 방에서 짐도 채 풀지 못한 채 지내며 크고 작은 불편함 들도 겪었다. 그렇지만 적당히 선선한 바람과 햇빛 아래 처음 보는 자카란다 꽃들이 물들인 보랏빛 시드니 풍경을 보며 걷다 보면 내가 겪은 자잘한 불편함 들은 마치 아무 고민거리도 되지 않는다는 듯 어느새 자연스레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이런 여행자 모드도 잠시 이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파트타임 일 및 렌트할 방을 보러 다니며 바쁘게 지내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4개월 과정의 에이지드케어 수업 개강날이 다가왔다. 에이지드케어 프로그램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고 호주의 학위 과정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게 없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 나는 그냥 외국에서 영어로 듣는 수업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딱히 크게 관련이 없는 해부학 책을 들여다보며 내가 이뤄나갈 작은 성취의 시작에 꽤 들떴었다. 이제와 돌아보면 이게 뭐라고 난 그렇게나 대단한 걸 한다고 생각하고 당당했었는지 싶지만 그래도 그 시절 기죽지 않던 나의 당당함이 지금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에이지드케어 과정 학원은 시드니의 중심 타운홀 근처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꽤 역사가 있어 보이는 낮은 건물에 자리하고 있었다. 시드니에서 처음 렌트했던 방이 있는 동네는 타운홀까지 트레인으로 약 15분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처음 수업 가던 날 같이 에이지드 케어 코스로 시드니에 함께 와서 같이 살게 된 룸메이트 동생과 같은 동네에 살게 된 다른 동생들 모두 다 함께 시드니의 유명한 2층짜리 트레인을 탔는데 시드니의 출근 시간 트레인도 한국의 지옥철 못지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지옥철도 나의 첫 수업에 대한 기대감을 무너뜨리진 못했다. 지옥철에서 내린 후 학원이 있는 건물에 도착했는데 그곳에는 누가 봐도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그 덜컹거리는 오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하얀 벽에 하얀 책상이 있는 교실에 앉아 선생님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필리핀 여자 선생님께서 들어오셨고 그렇게 기대하던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내가 등록된 에이지드케어 수업은 한국으로 치면 요양보호사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시드니가 속한 NSW 주에서 AIN (Assistant In Nursing)이 되기 위해 필요한 aged care certification 3을 따기 위한 수업과정이었다. 내가 현재 있는 Victoria 주에서는 PCA (Personal Care Assistant)라고 불리며 이렇게 각 지역마다 요양보호사의 명칭이 다르기도 하지만 요구되는 자격증은 같았다.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aged care와 disability care 가 가능한 certification 4도 있으며 가지고 있는 자격증에 따라 돌볼 수 있는 환자의 범위가 넓어진다고 했다. 이 외에도 CPO (Constant Patient Observer)라고 수술 후 망상증을 겪고 계시거나 낙상 위험이 있는 환자분들과 같은 at risk에 있는 환자분들 옆에서 1:1로 관찰하며 케어를 하는 직업도 있다. 또한 Support worker나 peer worker라는 직업도 있는데 일주일에 정해진 날 그리고 시간에 따라 환자 또는 레지던트들과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그들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에이지드케어 전반적인 이론 수업 내용은 바이러스 감염 경로, 손 위생, 노인 케어와 관련된 내용이었고 아주 간단한 해부생리학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이론 수업 후에는 그에 맞는 다양한 케이스 스터디를 하며 여러 상황이 발생했을 때 AIN으로써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와 같은 것들을 배웠다. 이 외에도 노년기에 걸릴 수 있는 질병에 대한 조사 및 유의해야 할 점에 대해 조사하여 조별로 발표하는 조별과제 또한 있었다. 그리고 매일 해야 하는 워크북이 있었는데 대부분 그날 배운 것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였으며 다음 수업 때 선생님과 함께 다 같이 풀이를 하였다. 수업은 월요일에서 금요일 주 5일 동안 아침 아홉 시에서 오후 네 시까지 약 4개월간 진행되었다.


또한 너무 오래되어 잊을 뻔했는데 이때 일주일에 한 번은 다른 학원으로 가서 요양보호사로써 알아야 할 영어표현들을 배우는 영어회화 수업 또한 있었다. 그런데 이 당시 영어회화 수업을 맡았던 남자 선생님은 수업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와서 술냄새를 풍기기도 했고 수업을 대충 시간만 때우고 가려고 하는 것만 같아서 수업을 가는 게 그렇게 달갑지 않았다. K-move 프로그램에서 에이지드케어 자격증 과정 및 영어수업 비용을 일정 부분 지원해 줬는데 저렇게 수업을 날로 먹으려 하는 걸 보니 이 수업에 왜 와야 하나 회의감이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오히려 호주로 오기 전 세부에서 원어민은 아니지만 필리핀 선생님들께 두 달간 받았던 영어수업이 더 알찼던 거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약 몇 달에 걸친 이론 수업이 끝나갈 즈음에 실습이 다가오고 있었다. 실습을 나가기 몇 주 전에는 다른 동네에 위치한 학원의 본사에 가서 요양원에서 사용되는 기계들의 사용방법 및 주의해야 할 점들을 배웠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거동이 되지 않는 환자분들을 옮길 때 필요한 다양한 종류의 hoists 그리고 Sara steady와 같은 처음 보는 기계들이 많았는데 동기들과 돌아가며 직접 환자가 되어보기도 하고 기계들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어떻게 사용하는지 몸에 익히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환자의 사지가 마비된 상태에서 마비가 된 위치에 따라 효율적으로 옷을 입히고 벗기는 방법, 베드를 만드는 방법, 안전하게 환자를 이동시키는 방법, 그리고 환자를 케어할 때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과 같은 것들을 몸으로 직접 배웠다. 그리고 3주간의 실습을 나가기 전 평가를 받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론 수업이 끝이 났다.


그렇게 나는 요양원에서 내가 겪게 될 일들을 알지 못한 채 실습 전날 밤 기대반 그리고 걱정반으로 긴장된 나의 몸과 마음은 밤잠을 설치게 했고 그렇게 약간은 피곤한 상태로 호주에서 첫 요양원 실습을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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