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보나 Sep 10. 2023

4. 요양원 실습이 좋아진 순간

누군가의 삶의 마지막 장에 함께 한다는 것 

3주간의 실습은 고되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실습 첫 주는 몸도 마음도 적응하느라 굉장히 피곤하고 지쳤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주말에 파트타임으로 그리스 레스토랑 주방에서 키친핸드로 일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말에 쉴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정신없던 첫 주를 보내고 나니 어느새 일도 몸에 익숙해지고 환자들을 케어하는 요령도 생기기 시작했다. 효율적으로 옷을 벗기고 입히는 방법, 기저귀를 가는 방법 등 환자분들 및 요양보호사 양쪽 모두가 편하고 조금 더 시간을 단축하여 환자분들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터득했다. 그리고 레지던트들과도 라포도 생기면서 몸은 고되었지만 그래도 이 일을 조금씩 좋아하기 시작했다.     


실습했던 요양원이 있는 동네는 오래전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주를 해서 커뮤니티를 이루어 살던 동네여서 이탈리아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 비율이 높은 요양원이었다. 특히 치매 환자분들이 많으셔서 영어를 많이 잊으신 분들이 많아 대부분 이탈리아어로 말을 하셨고 이탈리아어를 모르던 나와 동기들은 처음에 꽤 애를 먹었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본 이탈리아어를 공부해서 최대한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변, 소변, 식사, 아프신가요, 불편하신가요 등과 같은 필수적인 단어들을 외워서 갔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이탈리아분들이라 그런지 식사시간만 되면 늘 우리들에게도 만자레라고 하시며 식사를 하라고 하셨다.


하이케어에는 치매 및 신체 중 일부가 마비가 되어 거동이 불편하신 분, 시력을 잃으신 분과 같이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는 분들이 굉장히 많이 계셨다. 그래서 그분들의 모든 일상은 우리에게 달려 있었는데 사실 너무 바쁘고 환자의 비율도 많았기 때문에 토일렛팅 (toileting) 시간이 미뤄질 때 굉장히 죄송스러웠다. 그냥 화장실을 데려가서 대소변을 처리하는데 그게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거동이 불편하신 한 분을 토일렛팅 (toileting) 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일단 거동이 불편하시기 때문에 라운지에서 방으로 이동시킨 후 호이스트 또는 스탠딩 머신을 사용하여 환자분을 토일렛팅 (toileting) 체어에 앉힌 후 공용화장실로 가야 했다. 공용화장실에서도 대소변이 바로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으며, 특히 대변을 보셨을 경우 뒤처리를 하고 기저귀를 채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어서실 수 없는 분들의 경우에는 다시 호이스트에 매달아 방으로 가서 침대로 이동시킨 후에 기저귀를 입혀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토일렛팅 (toileting) 전에 대변을 이미 보셔서 옷이 이미 다 젖은 경우에는 침대시트를 갈거나 오염정도에 따라 환자분을 다시 샤워시키거나 베드(bed)에서 파트너와 함께 젖은 수건 및 물티슈로 닦아 처리를 해야 했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한 환자분당 길게는 적어도 20분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에는 뒤에 토일렛팅을 기다리는 분들 또한 화장실에 도착하기 전에 또 휠체어나 베드(bed)에서 대변을 보시기도 했다. 


매일매일을 정말 매 시간 대소변을 보다 보니 가끔씩 내가 뭘 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스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표현해 주시는 마음이 너무나 감사하고 짠해서 일의 고됨을 잊을 때가 많았다. 나와 동기들 모두가 그곳의 환자분들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우리가 더욱 애착이 갔던 귀여우신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할머니의 성함은 마가렛(가명)으로 마가렛 할머니께서는 치매가 있으셨지만 늘 항상 동그란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웃고 계셨다. 우리는 친구라고 늘 말씀하시고 제일 예쁘다며 같은 말을 항상 반복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마가렛 할머니께서 음식을 잘못 드신 건지 배탈이 나신 날이 있었다. 그날 나의 담당 환자는 아니었지만 나와 동기들 모두 마가렛 할머니께서 토일렛팅을 이미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토일렛팅을 한 후에 휠체어에 앉아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계셨는데 우리 모두 너무나 익숙하면서 수상한 냄새가 난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다. 냄새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서 코를 킁킁 거리며 여러 환자분들을 냄새를 맡아본 후 냄새의 근원은 마가렛 할머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던 무렵이라 더 이상의 대변처리는 없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할머니의 바지와 휠체어는 이미 묽은 대변이 흘러나와 젖기 시작한 걸 본 후 이것은 수건으로 닦는 것으로 되지 않겠다는 걸 느낀 동기 동생은 곧바로 할머니를 샤워실로 옮겨 파트너 요양보호사와 함께 할머니를 씻긴 후 할머니를 방으로 옮겼다. 나도 동생을 돕기 위해 할머니 방에 들어가 옷 입히는 거를 도왔는데 치매를 앓고 계셔서 정신이 온전하지 않으신 마가렛 할머니께서는 그 와중에 우리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소리치셨다. 


옷을 입히고 기저귀를 제대로 채우기 위해서 환자분의 포지션을 옆으로 돌려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께서는 이탈리안 억양으로 "I'm sorry"를 외치셨다. 사실 할머니께서 미안해하실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께서는 할머니로 인해 우리가 일을 하고 힘들어한다고 생각하셨는지 계속 미안하다고 하셨다. 

치매를 앓고 계시는데도 사과를 하시는 모습을 보고 할머니께서 건강하셨을 때 얼마나 따뜻하신 분이셨을지 느껴졌다. 계속 사과를 하시는 할머니를 본 나와 동기는 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고 할머니께 그만 미안해하셔도 된다고 얘기해 드렸다. 그럼에도 할머니께서는 동그랗게 눈을 뜨시며 아임쏘리를 그토록 외치셨다. 본 지 얼마 되지 않은 다른 인종 학생들이 들어와 할머니를 씻기고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상황이 할머니께는 굉장히 불편했을 수도 있는데 그런 불편함은 전혀 내색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연신 사과를 하시는 모습이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조금씩 조금씩 라포(rapport)를 쌓아나갔다. 그리고 그날 실습을 끝내고 나와 역으로 걸어가는 그 길이 이제는 그렇게 고되지도 유니폼에 아직 남아있을 것만 같은 대소변의 냄새도 신경 쓰지 않는 나를 보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신체적으로는 피곤했지만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 인생 마지막 장에 내가 그리고 우리가 잠시나마 머물며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케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 3. 호주 요양원 실습 첫날 내가 마주한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