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젬마 할머니와 60살 나이차를 뛰어넘은 우정
느리게만 갈 것 같던 3주간의 실습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3주간 일을 하는 동안 이곳에 계시는 어르신들과 교감하며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어르신들도 실습생이나 학생들을 더 좋아해 주셨는데 그건 아마도 크게 다를 거 없는 조용했던 일상이 조금은 시끌벅적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나 또한 어르신들이 우리를 좋아해 주시는 마음이 느껴졌던 만큼 마지막이라고 말을 해야 하는 시간이 조금은 천천히 다가오길 바랐다. 누군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건 나에게는 아직도 쉬운 일이 아닌데 이곳은 내가 첫 실습을 했던 곳이라 그랬던 걸까 이 당시에는 실습 마지막 날이라고 말을 하는 게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몇 년의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분이 계신다. 젬마 할머니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정신이 온전하신 분이셨는데 신체적으로 혼자 지내시기에 불편함이 있어 요양원에 오시게 된 분이셨다. 실습 시작 첫 주에는 하이 케어 (High care - 대부분 hoist 트랜스퍼로 최소 2명의 요양보호사의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이 계신 곳)에서 실습을 했기 때문에 로우 케어 (Low care - 하이 케어보다 요양보호사의 도움이 적게 필요하며 독립적으로 거동이 가능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는 곳)에서 지내시는 젬마 할머니를 만날 수 없었고 실습 2주 차에 할머니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평생을 싱글로 사시며 여러 나라를 여행하셨고 필리핀에서도 오래 거주하셔서 따갈로그어도 유창하게 하시는 분이셨다. 요양보호사 일이 육체적으로 많은 에너지가 요구되고 특히 이른 아침 일이 시작되었기에 어르신들 몇 분 샤워를 시켜드리고 나면 내 체력은 금방 고갈이 되어버렸다. 그럴 때 나와 동생들은 할 일을 끝내 두고 잠시 짬이 날 때 할머니 방으로 도피 아닌 도피를 하기도 했는데 할머니께서는 그런 우리를 늘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피곤함이 이해가 된다며 잠시 쉬다 가라고 하셨다. 그러면 우리는 할머니 방구석 소파에 앉아 할머니께서 살아오신 인생 얘기를 들으며 잠시 숨을 고르며 지친 다리를 쭉 뻗었다가 접으며 스트레칭을 하곤 했다.
어느 날은 할머니께서 본인의 러브스토리를 말해주셨는데 할머니께서 싱글로 살아오신 이유는 좋은 사람을 적당한 때에 만나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사람을 만날 때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고 나에게도 곧 좋은 사람이 나타날 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right person at the right time”을 꼭 기억하라고 하셨다. 할머니께서는 가톨릭 신자셨는데 나는 무교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어느 종교와 상관없이 종교적인 장소가 주는 고요함과 평안한 분위기를 좋아해서 성당을 가끔 방문하기도 하고 절을 방문하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다. 할머니께서는 성인들 얘기를 나에게 종종 하시기도 했고 또 종교와 관계없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하던 할머니와의 수다는 언제나 즐거웠고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60살의 나이차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 긴 실습은 아니었지만 태어나 처음 해보는 일이었기에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었고 심리적으로도 압박을 꽤 받았었는데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내 몸과 마음에 있던 부담들이 사라졌다. 할머니와 보낸 시간은 아쉬우리만큼 빨리 지나갔고 어느새 실습의 끝이 다가왔다.
이 당시 개인적인 일로 마음이 잠깐 어지러운 시기였는데 할머니와 나이를 뛰어넘은 이 우정이 주는 내면의 평화가 너무도 감사해서 할머니께 작은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할머니께서 매일 묵주 기도를 하시는 걸 알고 있었고 굉장히 낡은 묵주를 보여주시며 오래된 묵주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이 났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예전에 다른 아시아 국가에 잠시 거주했을 때 그곳에서 만났던 신부님께서 스리랑카 바다에서 난 진주로 만든 묵주를 스리랑카에서 사 오셨다며 선물로 주셨던 게 생각이 났다. 종교는 없지만 호주에 올 때 들고 왔었는데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둔 새 묵주를 보니 이 묵주는 나에게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매일의 기도로 할머니의 묵주가 낡은 만큼 나의 새 묵주 또한 필요한 사람에게로 가 간절함을 담은 기도와 함께 그 쓰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습 마지막 날 나는 나의 진주 묵주를 가방에 고이 넣어 요양원으로 향했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고요하고 캄캄했던 통로에 들어서자 움직이는 발걸음에 맞추어 타닥타닥 소리가 들리며 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요양원에도 다시 아침이 찾아오며 나의 마지막 실습도 시작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한 분 한 분 씻겨드리며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인사를 드렸다. 젬마 할머니께도 아침에 잠시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할머니께서는 화장실 안에서 다른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고 계셨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들려오는 할머니께서 힘겨워하시는 소리가 마음을 콕콕 찔렀다. 할머니께서 어떻게 아셨는지 다른 요양보호사에게 학생들에게 힘들어하는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다며 나중에 찾아와 달라고 얘기해 달라고 요청하셨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지나 실습을 마치기 약 두세 시간 전 잠깐의 여유가 생겼을 때 할머니 방으로 다시 재빠르게 달려갔다. 할머니께서는 오늘이 우리들 실습 마지막 날인 걸 알고 계셨다.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며 준비해 온 묵주를 드렸다. 너무나 새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핑크색 진주 묵주를 보시고는 할머니께서는 눈물을 글썽이며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나는 할머니께 할머니께서 매일 기도를 하시니 할머니께 이 묵주를 드리고 싶다고 하자 할머니께서는 진심으로 고맙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할머니께서는 나이가 들어 사람들 이름을 자주 깜빡한다고 한 명 한 명 우리들 이름을 하얀 종이에 받아쓰시며 나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앞날을 축복하며 기도를 해주겠다고 하셨다. 종교를 떠나 누군가 나를/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해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할머니께서 기도해 주신다는 그 말이 저 때에는 안개가 낀 듯 불투명했던 내 삼십 대의 시작을 꼭 응원하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내 친구 젬마할머니 아직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