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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숙성의 기원, 실수에서 탄생한 풍미

by 보나스토리

우연에서 시작된 변화

고기 숙성의 개념은 현대의 정밀한 기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숙성의 기원은 수천 년 전, 고기를 오래 보관하기 어려웠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냥하거나 도축한 고기를 한 번에 다 소비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바람이 잘 드는 그늘이나 동굴 같은 서늘한 장소에 고기를 걸어두곤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고기는 겉이 약간 말라 있었지만, 구워 먹었을 때는 오히려 더욱 깊고 풍부한 맛을 냈습니다.

그 변화를 처음 맛본 사람들은 분명 놀랐을 것입니다. 단순한 보관이 고기의 맛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체감했을 테니까요.

그 경험은 ‘우연’이었지만, 그 후로 사람들은 그 맛을 다시 얻기 위해 점차 의도적인 시도를 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숙성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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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이 만든 미식

유럽에서는 일찍부터 이러한 숙성 방식을 발전시켰습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의 정육점에서는 고기를 바람이 잘 통하는 창고나 지하실에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매달아 두었습니다.

이러한 자연 숙성 방식은 고기의 수분을 줄이고 단백질을 분해하여 조직을 부드럽게 만들며, 풍미를 더욱 농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20세기 들어 미국의 고급 스테이크 하우스에서는 본격적으로 드라이 에이징(Dry Aging) 기술을 도입하게 됩니다.

이는 온도와 습도를 철저히 관리하는 환경에서 일정 기간 고기를 숙성시키는 방식으로, 수주간 숙성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고기는 외부가 마르면서 풍미가 응축되고, 내부 단백질은 효소 작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분해되어 식감이 부드러워집니다.

이렇게 숙성은 더 이상 자연의 우연이 아닌, 사람이 만든 정밀한 기술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부패와 숙성의 경계

숙성과 부패는 과학적으로 매우 유사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 미생물과 효소, 그리고 시간의 작용을 통해 고기의 상태를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그 변화가 맛과 품질의 향상으로 이어지느냐, 위생적 위해로 이어지느냐에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드라이 에이징 외에도, 고기를 진공 포장한 채 냉장 보관하며 숙성하는 습식 숙성(Wet Aging),

효소를 이용한 효소 숙성(Enzyme Aging), 진동과 열을 활용한 초음파 숙성(Ultrasonic Aging) 등 다양한 방법이 존재합니다.

숙성의 형태는 진화했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시간과 감각, 그리고 기다림이 놓여 있습니다.


시간의 풍미를 먹는다는 것

숙성된 고기를 맛본다는 것은 단지 육류 한 점을 먹는 것을 넘어서는 경험입니다.

그 안에는 시간의 흐름, 공기의 작용, 그리고 인간의 손길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깊은 풍미가 존재합니다.

좋은 숙성은 고기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 감춰진 맛의 잠재력을 끌어냅니다.

이러한 숙성 과정을 통해 고기는 기억에 남는 미식의 경험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결국 숙성이란, 단순한 보관이나 기다림이 아닌 맛을 향한 인내의 기술입니다.

그 기원은 실수였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숙성은 분명 예술적 경지에 도달하였습니다.


� 이 글은 본 저자의『소고기의 미학, 맛과 이야기를 담다』의 일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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