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손끝에서 미국인의 입맛으로
‘피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뜨겁고 바삭한 도우 위에 녹아내리는 치즈, 그 위를 장식하는 다양한 토핑, 그리고 한 손에 들고 거리에서 먹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미국식 피자는 뉴욕의 이탈리아 이민자 피자 가게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이민자들의 손끝으로 피어난 피자는 미국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으며, 지역마다 독특한 스타일로 발전하며 다양한 특징을 갖추었습니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발자취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수많은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새로운 삶을 찾아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특히 나폴리와 이탈리아 남부 출신의 이민자들은 뉴욕의 브루클린, 맨해튼, 브룽크스 같은 지역에 정착했습니다. 이들은 고국의 맛을 잊지 않기 위해 빵 위에 토마토와 치즈를 얹은 소박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음식은 피자의 원형이었으며, 뉴욕의 이스트사이드 거리에서 판매되며 생계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미국 최초의 피자 가게, 롬바르디스
1905년, 뉴욕 맨해튼의 스프링 스트리트(Spring St.)에 젠나로 롬바르디(Gennaro Lombardi)가 미국 최초의 피자 가게인 롬바르디스(Lombardi’s)를 열었습니다. 이곳은 미국식 피자의 공식적인 출발점으로 꼽힙니다. 롬바르디는 나폴리 전통 피자를 기반으로 했지만, 미국의 재료와 환경에 맞게 변형했습니다. 나무 화덕 대신 석탄 화덕을 사용하고, 큰 판으로 구운 피자를 조각으로 나눠 팔았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뉴욕 스타일 피자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미국 피자의 주요 분류와 특징
미국식 피자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에 의해 뉴욕에서 처음 소개된 이후, 각 지역의 문화와 특성을 반영하며 독자적인 스타일로 발전해 왔습니다. 각 스타일은 도우의 두께와 식감, 조리 방식, 토핑의 종류와 순서, 그리고 먹는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1. 뉴욕 스타일 피자 (New York-Style Pizza)
뉴욕 스타일 피자는 넓고 얇게 손으로 편 도우(hand-tossed)를 기반으로 하여 크기가 매우 큰 것이 특징입니다. 글루텐 함량이 높은 밀가루를 사용해 만들며, 바삭한 테두리와 달리 안쪽은 쫄깃하고 유연하여 조각을 반으로 접어 먹기 편리합니다. 이는 뉴욕의 바쁘고 역동적인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길거리에서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발전한 형태입니다. 조리 시에는 석탄 또는 가스 오븐을 사용해 고온에서 빠르게 구워내며, 기본적으로 토마토소스와 저수분(low-moisture) 모차렐라 치즈를 사용합니다. 대표적인 토핑으로는 페퍼로니, 소시지 등이 올라가며, 흘러내리는 기름의 풍부한 맛 또한 이 피자의 매력으로 꼽힙니다.
2. 시카고 딥디쉬 피자 (Chicago Deep-Dish Pizza)
시카고 딥디쉬 피자는 이름 그대로 깊은 팬(pan)을 사용하여 마치 파이나 캐서롤처럼 만드는 피자입니다. 버터를 발라 풍미를 더한 두꺼운 도우를 팬에 깔고, 토핑을 쌓는 순서가 일반적인 피자와는 정반대인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즉, 도우 위에 슬라이스 한 모차렐라 치즈를 넉넉하게 깔고, 그 위에 소시지 패티나 각종 채소 등의 토핑을 올린 뒤, 마지막으로 덩어리가 살아있는 토마토소스를 맨 위에 부어 오븐에서 오랜 시간 구워냅니다. 이러한 독특한 조리법 때문에 손으로 들고 먹기보다는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 썰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며, 한 조각만으로도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됩니다.
3. 디트로이트 스타일 피자 (Detroit-Style Pizza)
디트로이트 스타일 피자는 두껍고 폭신하면서도 바삭한 식감을 가진 직사각형 모양이 특징입니다. 본래 자동차 공장에서 부품 통으로 사용되던 블루 스틸 팬(blue steel pan)으로 굽는 전통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피자의 핵심은 위스콘신 브릭 치즈(Wisconsin brick cheese)를 팬의 가장자리까지 채워 넣어, 굽는 과정에서 치즈가 녹아내리며 만들어 내는 바삭하고 캐러멜라이징된 ‘프리코(frico)’라 불리는 치즈 크러스트입니다. 조리 순서 또한 독특하여, 도우 위에 페퍼로니를 먼저 깔고 그 위를 브릭 치즈로 덮은 후, 마지막에 토마토소스를 피자 위에 길게 두세 줄 뿌려 완성합니다. 이 피자는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의 노동자들이 든든하게 즐겨 먹던 음식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4. 캘리포니아 스타일 피자 (California-Style Pizza)
캘리포니아 스타일 피자는 얇은 도우를 캔버스 삼아 건강하고 창의적인 ‘미식(gourmet)’ 토핑을 올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스타일의 선구자는 1980년대 초, 셰프 에드 라두(Ed LaDou)와 울프강 퍽(Wolfgang Puck)입니다. 울프강 퍽의 레스토랑 스파고(Spago)에서 에드 라두는 훈제 연어와 딜 크림, 오리고기 소시지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재료를 피자에 도입하며 고급 요리로서의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이후 에드 라두는 캘리포니아 피자 키친(California Pizza Kitchen)의 창립 메뉴 개발에 참여하여 바비큐 치킨 피자 등을 선보이며 이 스타일을 대중화시켰습니다. 아보카도, 염소 치즈, 루꼴라 등 신선하고 비전통적인 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며, 화덕에서 구워 바삭한 식감을 살리고 건강과 새로운 맛의 조화를 추구합니다.
피자의 대중화와 확산
20세기 중반, 피자는 뉴욕을 넘어서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양한 인종과 계층이 피자를 즐기기 시작했으며, 피자 헛(Pizza Hut), 도미노스(Domino’s) 같은 체인 피자 가게와 냉동 피자, 배달 서비스의 등장으로 피자는 가정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뉴욕의 피자 가게들은 전통적인 방식과 독창성을 유지하며 피자 문화의 중심으로 남았습니다.
피자 조각에 담긴 이민자의 이야기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피자 한 조각에는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과 창의성이 담겨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한 이탈리아 이민자들은 뉴욕의 다양성과 자유, 음식 문화에 대한 관용 속에서 피자라는 음식에 미국적 개성과 영혼을 불어넣었습니다. 뉴욕 스타일을 시작으로 시카고, 디트로이트, 캘리포니아 등 지역마다 독특한 피자 스타일이 발전하며 미국의 다양한 문화를 반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