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의 비밀, 밀가루에서 시작된다

피자는 왜 쫄깃할까? 피자 도우의 이야기

by 보나스토리

피자를 주문하면서 도우의 종류를 고를 때가 있다. 오리지널, 씬, 치즈크러스트. 그런데 정작 그 도우가 어떻게 다른 식감을 갖게 되는지, 왜 어떤 피자는 폭신하고 어떤 피자는 바삭한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 모든 차이의 시작점에는 밀가루가 있다. 피자는 화려한 토핑 이전에, 도우라는 캔버스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캔버스의 질감과 풍미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밀가루다.


반죽 속에서 벌어지는 일

피자 도우를 만들 때 일어나는 일은 생각보다 극적이다. 밀가루에 물을 부어 반죽하는 순간, 밀가루 속 글루테닌과 글리아딘이라는 두 단백질이 물을 만나 서로 엉켜 붙기 시작한다. 이렇게 형성되는 것이 글루텐, 즉 탄력 있는 단백질 네트워크다.

이 글루텐망이야말로 피자 도우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아도 찢어지지 않는 이유다. 오븐 속에서 도우가 부풀어 오르면서도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쫄깃한 식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모두 이 보이지 않는 망 덕분이다.

반죽을 치대면 치댈수록 글루텐은 더욱 조밀하고 강해진다. 피자 장인들이 도우를 오랫동안 주무르고 접고 늘리는 과정을 반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밀가루 속 단백질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글루텐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으면 효모가 만들어낸 이산화탄소를 담을 수 없어 도우가 푸석하고 밀도 높게 굳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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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 함량이 만드는 차이

마트 제과 코너에 가면 박력분, 중력분, 강력분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이름만 들어서는 무슨 차이인지 감이 오지 않지만, 그 차이는 명확하다. 바로 단백질 함량이다.

박력분은 단백질이 8-10%로 가장 적다. 글루텐 형성이 약해 부드럽고 연한 질감을 만든다. 케이크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것, 쿠키가 바삭하게 부서지는 것은 모두 이 약한 글루텐 덕분이다. 하지만 피자 도우에 박력분을 쓴다면? 반죽은 쉽게 찢어지고, 구웠을 때 푸석푸석한 식감만 남을 것이다.

중력분은 단백질이 10-12%로 중간이다. 한국 가정에서 가장 흔히 쓰는 다목적 밀가루다. 부침개, 전, 국수 등 일상적인 요리에 무난하게 쓸 수 있다. 적당한 탄력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만능이지만, 피자처럼 강한 탄력이 필요한 요리에는 다소 부족하다. 얇게 늘릴 때 더 쉽게 찢어질 수 있다.

그래서 피자 도우에는 강력분이 필요하다. 단백질 함량이 12-14%로 높아, 강하고 탄력 있는 글루텐망을 형성한다. 반죽을 얇게 늘려도 찢어지지 않고, 오븐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힘을 견딜 수 있다. 피자를 한 손에 들었을 때 축 처지지 않고 단단하게 형태를 유지하는 것,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쫄깃하게 씹히는 것이 모두 강력분의 힘이다.


나폴리와 뉴욕, 밀가루로 갈라진 세계

같은 피자라도 나폴리 피자와 뉴욕 피자는 전혀 다르다. 그 차이는 레시피나 굽는 방식뿐 아니라 밀가루의 선택에서도 비롯된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는 '00(doppio zero)' 밀가루를 고집한다. 이것은 밀가루를 극도로 곱게 간 것으로, 입자가 고운 가루처럼 부드럽다. 이 고운 입자 덕분에 반죽은 실크처럼 매끄럽고 탄력적이다. 정통 나폴리 피자 협회(AVPN)는 Type 00 또는 Type 0 밀가루만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단백질 함량은 11-13% 정도가 적합하다고 명시한다.

나폴리 피자의 특징인 '표범 무늬'—도우 가장자리에 불규칙하게 생기는 검은 반점들—는 고온의 화덕에서 순식간에 구워지며 만들어진다. 430-485°C의 고열에서 60-90초간 구워지는 동안, 도우의 기포가 부풀어 오르며 천장의 복사열을 받아 곳곳이 그을린다. 수분 함량이 높은 도우가 고온에서 빠르게 팽창하면서 불균일한 기포들이 형성되고, 이 기포들이 뾰족하게 솟아오른 부분부터 먼저 그을려 표범 무늬를 만든다. 가장자리는 부풀고 폭신하면서도 가볍고, 중앙은 얇고 부드럽다. 칼로 자르지 않고 손으로 접어 먹는 것이 전통인 이유도 여기 있다. 도우가 너무 부드러워 칼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반면 뉴욕 스타일 피자는 다르다. 단백질 함량 13-14.5%의 고단백 강력분을 사용해 더 쫄깃하고 단단한 도우를 만든다. 뉴욕 피자는 한 조각이 크고 넓어서 반으로 접어들고 먹는 것이 문화인데, 이렇게 접어도 찢어지지 않을 만큼 질기고 탄력 있다. 260-315°C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5-10분간 천천히 구워지기에 도우가 두껍고 단단하게 익는다. 바삭하면서도 쫄깃한, 어딘가 거친 듯한 식감이 뉴욕 피자의 정체성이다. 같은 '피자'라는 이름 아래, 밀가루의 선택과 굽는 방식이 완전히 다른 음식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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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쌓아 올리는 맛

피자 도우에서 밀가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시간이다. 반죽을 만들자마자 바로 굽는 피자와 하루, 이틀, 때로는 사흘을 재워둔 피자는 전혀 다른 맛을 낸다.

천천히 발효시키는 동안 효모가 밀가루 속 당분을 먹고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 이 과정에서 도우는 부풀고, 복잡한 풍미가 생긴다. 동시에 글루텐이 이완되면서 반죽이 더 쉽게 늘어난다. 숙련된 피자 장인들이 도우를 24-72시간 냉장 숙성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급하게 만든 도우는 탄력은 있어도 맛이 밋밋하다. 시간을 들인 도우는 은은한 발효향과 깊은 맛을 품고 있다.

밀가루와 물, 소금, 효모. 단순한 재료들이 시간이라는 마법을 만나 피자 도우로 거듭난다. 발효 과정에서 효소들이 복잡한 단백질과 전분을 더 단순한 형태로 분해하며, 이것이 소화를 돕고 풍미를 더한다.


물이 결정하는 것들

밀가루는 단백질 함량에 따라 물을 흡수하는 능력도 다르다. 단백질이 많을수록 더 많은 물을 머금는다. 같은 양의 밀가루라도 박력분보다 강력분이 훨씬 더 많은 물을 필요로 한다.

이탈리아 피자 장인들은 물의 비율을 '수화율(hydration)'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한다. 밀가루 대비 물이 60%면 낮은 수화율, 70-80%면 높은 수화율이다. 수화율이 높을수록 반죽은 질퍽하고 다루기 어렵지만, 구웠을 때 더 가볍고 공기가 많이 든 폭신한 도우가 된다. 고수화율 도우에서 큰 기포가 형성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이 많으면 글루텐 가닥이 더 얇게 늘어나고, 이 얇은 가닥들이 오븐에서 바삭하게 구워진다.

또한 밀가루는 공기 중 습기도 흡수한다. 장마철에는 밀가루가 평소보다 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어 물을 덜 넣어야 하고, 건조한 겨울에는 물을 더 넣어야 한다. 피자집 주방에서 매일 도우를 만드는 사람들이 날씨를 보며 물의 양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이유다. 레시피는 출발점일 뿐, 진짜 비결은 그날그날의 감각에 있다.


밀가루를 다루는 법

피자를 만들다 보면 밀가루가 얼마나 섬세한 재료인지 깨닫게 된다. 밀가루를 체에 거르면 공기가 들어가 부피가 늘어나고, 작은 덩어리들이 풀어져 물과 더 잘 섞인다. 계량할 때도 꾹꾹 눌러 담으면 실제 필요한 양보다 많아져 반죽이 뻑뻑해진다. 밀가루는 숟가락으로 떠서 가볍게 담고, 윗면을 칼등으로 평평하게 깎아내는 것이 정확하다.

반죽을 할 때도 힘의 강도를 조절해야 한다. 피자 도우는 충분히 치대어 글루텐을 발달시켜야 하지만, 지나치면 반죽이 너무 질겨진다. 케이크 반죽처럼 살살 섞어서도 안 되고, 빵 반죽처럼 무작정 치대서도 안 된다. 그 중간 어딘가의 적절한 지점을 찾는 것이 피자 도우의 기술이다. 보통 5-7분 정도 반죽한 후 4-5분 휴지 시키고, 다시 1-2분 반죽하는 방식으로 탄력과 매끄러움을 동시에 얻는다.

밀가루는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밀폐 용기에 담아 보관해야 한다. 습기가 많으면 곰팡이가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 산패한다. 특히 통밀가루처럼 배아가 포함된 밀가루는 지방 함량이 높아 더 빨리 상한다. 개봉한 밀가루는 3개월 이내에 쓰는 것이 좋고, 오래된 밀가루는 변질될 수 있으니 사용 전 냄새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가루에서 시작하는 완성

피자를 생각하면 토마토소스, 모차렐라 치즈, 바질 같은 화려한 재료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바쳐주는 것은 도우다. 그리고 그 도우의 본질은 밀가루다.

밀가루 봉지 뒷면에 적힌 단백질 함량, 그 숫자 몇 퍼센트의 차이가 피자의 식감을 완전히 바꾼다. 어떤 밀가루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나폴리의 폭신한 도우가 될 수도, 뉴욕의 쫄깃한 도우가 될 수도 있다. 얼마나 치대고, 얼마나 재우고, 얼마나 많은 물을 넣느냐에 따라 같은 밀가루로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피자 한 판을 앞에 두고 첫 입을 베어 물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단순한 맛이 아니다. 그 안에는 밀가루 속 단백질의 화학, 장인의 손길, 시간의 발효, 오븐의 온도가 모두 담겨 있다. 피자는 밀가루에서 시작해, 과학과 기술과 정성이 만나 완성되는 음식이다.

피자를 주문할 때, 혹은 직접 도우를 만져볼 기회가 생긴다면, 잠시 생각해 보자. 이 하얀 가루가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되었는지. 밀가루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피자를 진정으로 음미하는 첫걸음이다.



� 참고 서적 《맛으로 피어나는 피자 이야기》 조동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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