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오늘 투어의 하이라이트인 반딧불 투어를 할 선착장에 도착했다. 원숭이들과 신나게 춤을 췄으니 이제는 배를 타고 적도의 노을을 감상하고 반딧불이와 사랑에 빠질 차례다.
가이드는 벌써 관광객들의 부푼 마음을 눈치라도 챈 것인지 유튜브 영상에 나오는 반딧불은 연출된 이미지라며 우리들의 기대를 가라앉혔다.
반딧불을 감상하기 전에 이글스 피딩부터 했다. 구명조끼를 차례로 입고 작은 보트에 몸을 실었다. "세계테마기행"에서나 봤음 직한 동남아시아의 넓은 강이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엔 무한한 바다, 말라카 해협이 있다. 적도의 일몰과 일출 시간은 1년 열두 달 거의 똑같다. 7시에 해가 뜨고 19시쯤 해가 진다. 깨끗하고 투명했던 하늘이 조금씩 오렌지색으로 물들며 단풍처럼 붉게 변했다. 적도의 선셋이 유명한 이유가 다 있었다. 하늘만 바라봐도 입이 턱 하고 벌어지는데 거울 같은 강이 하늘을 그대로 비추며 석양의 빛은 강물의 잔잔한 흔들림으로 밝게 부서지며 아름답게 빛났다.
보트를 타고 10분쯤 달렸을까 엔진의 거친 소음이 잦아들고 이글스 피딩을 할 장소에 도착했다. 나무의 우듬지에 앉은 수십 마리의 독수리가 보였다. 보트 선장은 독수리를 향해 집게로 든 생닭다리를 하늘 높이 던졌다.
이글스 피딩은 육고기를 던지면 독수리가 수직 하강하여 낚아채는 모습을 감상하는, 이른바 독수리 먹방 투어였다.
창공을 가르는 야생의 거친 날갯짓을 보고 싶었는데 독수리들은 너무 여유로웠다. 새들의 왕은 역시 뭔가 다르구나 했는데 알고 보니 정말 배가 불렀던 거다. 주말 오후 이미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생닭으로 파티를 제대로 즐긴 녀석들은 식욕도 식탐도 없는 도인처럼 나무 꼭대기에 앉아 멀뚱멀뚱 사람들만 쳐다봤다. 독수리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사람들의 욕심이 독수리를 그렇게 만든 건 아닌지 안타까웠다. 기러기인지 비둘기인지 모를 새들의 왕이 거기에 있었다.
적도의 해넘이를 감상한 것으로 만족하고 형설지공에 등장하는 반딧불이를 보러 갔다. 깜깜한 밤 오직 강을 가르는 보트 소리만 귓가에 들렸다. 보트가 완전히 멈추고 작게 찰싹거리는 강물 소리를 들으며 눈을 더욱 크게 떴다. 바로 앞 숲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주 작디작은 불빛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반딧불이를 모아 글씨를 읽을 정도가 되려면 대체 몇 마리를 잡아야 하나 어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귓바퀴가 따끔하며 몹시 간지러웠다. 모기가 많다는 것쯤은 상식으로 알고 있었고 긴 팔, 긴바지에 모기 기피제도 연신 뿌렸는데 결국 모기의 공격에 속수무책 당하고야 말았다. 노출된 곳은 얼굴과 손 정도인데 이것들이 기똥차게 알아서 한 방 두 방 세 방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무소음 헬기 마냥 모기 특유의 소리도 없어서 물리고 난 뒤에야 알아차렸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더니 반딧불 관람료로 피를 낸 셈이다. 벅벅 긁다 보니 여기저기 붉게 부은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서로 물렸다며 자진 신고하기 바쁜 찰나 보트는 우렁찬 엔진소리를 내며 블루티어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뜰채를 한 개씩 받아 들고 무턱대고 강물에 쑥 밀어 넣어 들어 올리면 그 속에서 형광 연두 빛이 반짝거렸다. 바닷속에 사는 반딧불이 같다. 이게 바로 책에서 보던 그 플랑크톤이었다. 플랑크톤을 건져 만져 보기도 했는데 말캉한 젤리 같았다. 사위가 어두운 밤에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관찰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물비린내의 잔향이 솔솔 올라오며 작지만 강한 존재감을 확실하게 뿜어냈다.
손바닥에 올려두었던 플랑크톤을 다시 강물에 던져주는 것으로 투어는 끝이 난다. 플랑크톤을 강물로 휙 던진 그때 갑자기 앞자리에서 “앗”하며 짧은 외침이 들렸다. 강물에 던진 플랑크톤이 바람을 타고 은채 엄마의 머리카락에 찰싹 달라붙은 것이다. 당황하며 멋쩍은 웃음으로 사과를 건넸고 은채 엄마는 머리카락을 털며 역시나 웃음으로 받아주었다.
내 평생 적도의 나라에 오게 될 줄도, 말라카 해협을 방문할 줄도 몰랐다. 역시 사람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다.
우리는 다음 주 주말에 있을 말라카 투어를 기대하며 고속도로를 쌩쌩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