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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봉봉 Dec 02. 2024

말라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네덜란드와 영국, 포르투갈이 식민 지배를 하며 남겨 놓은 교회와 건축물이 시내 중심에 남아 있었다. 네덜란드 광장은 그 이름답게 네덜란드 시절 지어진 교회와 당시 시청 건물이 이웃해 있었고 한가운데에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아담한 크기의 빅토리아 분수가 연거푸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무더위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분수 주변으로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홍색의 유럽식 건물과 중력을 거스르며 역류하는 분수의 물줄기는 이색적인 볼거리였다. 네덜란드에서 만든 건물과 영국에서 만든 분수는 각기 다른 국가에서 다른 시간대에 만든 것인데도 이질적이지 않고 오묘하게 어울렸다. 



네덜란드 광장을 등지고 언덕을 조금 오르면 세인트폴 교회를 만날 수 있다. 16세기 포르투갈의 식민지배 당시 세워졌는데 영국과 네덜란드의 공격을 받아 현재는 벽만 남아있었다. 단출하게 남은 교회의 흔적은 그 앞에 어엿하게 세워진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 동상으로 전성기의 모습을 짐작케 했다. 중국과 인도, 일본에 가톨릭을 전파한 자비에르는 말라카 시내와 말라카 해협을 한눈에 굽어보고 있다.


뻥 뚫린 창문을 액자의 프레임 삼아 관광객들은 줄지어 기념사진을 남겼다. 지붕도 없고 문도 사라진 사면만 남아있는 건물임에도 층층이 쌓인 수백 년의 역사가 장엄한 아우라를 만들어냈다. 문화유산 중에서도 인간의 크기를 압도하는 건축물에서나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에너지가 있었다. 


반파된 건물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적색의 벽돌이 아이보리색으로 점차 빛을 바랐는데도 그저 고풍스럽게만 보였다. 자연히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관대한 노인 같았다. 아마 자비에르의 은총과 자비가 서려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말라카는 작은 소도시여서 어디든 걸어서 다닐 수 있다. 날씨가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지만, 쉬엄쉬엄 그늘을 찾아다니면 충분히 만족스럽게 여행할 수 있다. 



16세기 포르투갈에서 만든 파모사 요새와 말레이시아 독립선언기념관을 돌아보고 나니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리버 크루즈를 타고 말라카의 야경을 즐기기 위해 나셨다. 이탈리아의 베니스를 본떠 만들었다는데 베니스를 가 본 적이 없는 나는 그저 좋기만 했다. 한강 크기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소로 같은 강을 유람선을 타고 30~40분 정도 오가는 코스였다. 천변에 늘어선 알록달록 색색의 건물과 조명이 밤의 운치를 더했다. 레스토랑과 카페의 야외 테이블엔 관광객들이 한 자리씩 자리를 잡고 앉아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강바람을 쐬고 있었다. 간간이 크루즈 관광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개방적이고 낙천적인 여행자의 여유를 보여주었다. 



화려한 조명으로 꾸민 다리를 지나 다홍색 삼각 지붕이 돋보이는 말라카 원주민 집성촌도 보았다. 적당한 바람과 크루즈의 느긋한 속도, 밤하늘엔 빛나는 별, 눈앞엔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찬란한 불빛으로 말라카의 낭만적인 밤이 깊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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