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키힐에서 야생 원숭이를 만났을 때
바투동굴에 이어 두 번째로 이동한 장소는 몽키힐이다. 셀랑고르 반딧불 투어를 할 선착장 근처였는데, 도착할 때쯤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역시 적도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
비가 오면 으레 행동이 굼떠지고 잠도 오고 한없이 게을러지기 마련이라 원숭이들도 제집에 들어가 늘어지게 낮잠이나 자고 있겠구나 싶었다. 처음엔 몽키힐이라는 이름 때문에 원숭이들의 집단 서식지 내지는 동물원 같은 곳인가 추측했는데 언제부턴가 원숭이들이 관광객들에게 먹이를 얻어먹는 특정 장소였다. 원숭이들이 생계를 이어가는 직장인 셈이다. 그들은 자발적인 프리랜서로 주말에도 성실하게 출근을 하는데 비가 오는 날씨라 출근을 했는지 휴업인 상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가이드가 먼저 내려 상황을 파악한 뒤 우리를 불렀다. 가이드는 바나나, 당근, 땅콩 같은 먹이가 든 꾸러미를 아빠들에게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손을 내밀며 채소나 과일 한 개씩을 손에 들고 원숭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신기하게도 언제 어디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건지 원숭이 무리가 점차 나타나기 시작했다.
짙은 회색 퍼를 온몸에 두르고 손 발엔 까만 장갑과 신발을 신은 채 제 키보다 긴 꼬리를 바닥에 늘어뜨린 야생 원숭이었다. 동물원에서 보던 원숭이가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와 있었다.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말해 혹여 원숭이가 공격을 하더라도 나를 보호해 줄 안전장치가 아무것도 없다는 뜻과 같다. 이런 초밀접 접촉에 긴장이 되어 다들 몸을 움츠린 채 서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가이드는 “야생 원숭이 치고는 순한 녀석들”이라며 긴장을 풀어주려고 했으나 이 말인즉슨 “우리 개는 안 물어요”나 야생동물들도 사람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덤비지 않는다는 뭐 그런 류의 말 같아 도리어 긴장을 증폭시켰다. 더불어 “물리지만 마세요”라는 첨언으로 쐐기까지 확실히 박았다.
원숭이들은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듯 아이들의 손에 들린 과일 조각을 잽싸게 낚아채기 시작했다. 한두 마리로 보이던 원숭이들이 갑자기 수십 마리로 늘어나 여기저기에서 출몰했다. 손오공이라도 숨어 있었던 건지 머리카락 개수만큼 늘어나는 원숭이에 잔뜩 졸았다.
그때였다. 행동 대장으로 보이는 원숭이 한 마리가 남편의 어깨 위로 갑자기 뛰어오르며 우리들의 광란의 파티가 시작됐다. 아이들은 꽥꽥 비명을 지르며 파티의 흥을 북돋웠고, 졸지에 남편은 서커스 단장이 되어 어깨 위의 원숭이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남편의 리드미컬한 탭댄스에 놀란 나는 희귀한 광경을 평생 소장할 생각에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재빨리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었다.
흥이 채 꺼지기도 전에 정신을 쏙 빼놓은 원숭이는 남편의 손에 들려 있던 땅콩 봉지를 뺏어 무대 밖으로 재빨리 탈출했다. 주연 배우의 실종으로 허무하게 공연이 끝났고 눈 뜨고 코 베인다는 게 어떤 뜻인지 생생하게 확인한 순간이었다. 허망하게 뺏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찜찜했지만 도둑이 있어도 경찰은 없는 게 원숭이의 세계니까 원숭이 땅콩 봉지 강탈 사건은 남편의 멋쩍은 웃음으로 무마됐다. 원숭이와 춤을 추는 경험을 선물 받았다 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