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형 엄마의 말레이시아 3주 살이
우리 귀여운 참새들의 방과 후 방앗간은 수영장이었다. 하교 후 느지막한 오후가 되면 엄마 참새는 아기 참새들을 기다려 마중하고는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 아기 참새들을 수영복으로 갈아입혔다. 한 손에는 갖가지 간식거리, 한 손에는 타월을 챙겨 약속이라도 한 듯 수영장에 집합했다.
수영장에 모인 아이들의 공통점은 여자 아이들이 대다수라는 것. 남자아이들은 엄마들이 미리 예약해 둔 축구장에서 공놀이를 했고, 아들과 딸을 모두 둔 엄마들은 축구장과 수영장을 오가며 남매를 챙기기 바빴다.
아이들도 노느라 즐거웠지만 이 시간은 엄마들에게도 작은 활력이 되었다. 매일 등하교시키며 점차 얼굴을 트며 인사를 나눠도 엄마들끼리 친교를 다질 계기가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모두 영어 회화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니어서 방과 후 수영장은 엄마들의 아주 좋은 친교 장소가 되었다.
수영장은 공중 정원처럼 레지던스 호텔의 중간층에 있었고, 사방이 뚫려 시원한 개방감을 자랑했다. 우리가 머무는 시간대는 해가 뉘엿뉘엿 질 때라 적도의 노을을 감상하기 좋았다. 연한 하늘색에서 점차 옅고 진한 주황색으로 찬란하게 번져가는 하늘 아래 삐죽한 야자수 잎과 다홍색 단층 건물의 지붕이 한눈에 들어오며 이국적인 모습을 선물해 주었다.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그림 같은 풍경에 생동감을 더해 주었다.
아이들은 둘 이상만 모여도 엄마를 찾지 않고 알아서 재미있게 놀았다. 수영을 잘해도, 못해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놀잇감을 찾아내고 놀이를 창조하는 아이들의 천부적인 재능은 그곳에서도 빛을 발했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담소를 즐겼다. 한식 반찬을 공동구매하거나, 지난 주말에 다녀왔던 페트로사인스 과학관이나 유명 서점을 소개하며 정보를 나누기도 했다.
엄마들의 일상은 갖가지 장르가 출몰하는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티빙 그 자체였다. 고층 레지던스임에도 벌레들이 곧잘 출몰해 공포영화의 주인공이 된 엄마의 이야기, 싱크대 수전이 고장 나 거실이 물바다가 됐고 이후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도전과 응전의 서사로 코믹과 히어로물을 넘나든 어벤저스급 엄마도 있었다. 쇼핑몰에서 그랩을 불렀는데 휴대폰 배터리가 나가기 직전이어서 발을 동동 굴렀다는 시트콤도 있다. 잠시 후일담을 더해 보자면 택시 기사님께 짧은 영어로 사정을 설명하고 어떻게든 쇼핑몰까지 데리러 와달라고 빌다시피 했고, 간절함이 하늘을 감동시키듯 택시기사님의 의리로 무사히 숙소까지 도착해 휴먼드라마로 완성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스쿨링 캠프에 대한 만족도는 엄마의 성향과 기대치에 따라 극명하게 달랐다. 아무래도 자녀의 영어 수준과 엄마의 기대는 비례하기 마련이었고, 기대가 높은 만큼 실망도 큰 것 같았다. 특히 민지 엄마가 그랬다. 저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어 보강 수업을 해주는데 영어 원서를 줄줄 읽는 민지와 수준이 맞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또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학교에서 지내다 보니 아이와 여가를 즐길 시간이 주말 밖에 없는 점도 그랬다. 그래서 민지 엄마는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결석을 하고 아이를 데리고 관광을 다녔다. 학교 수업은 절대 빠져서는 안 된다는 나의 고지식한 생각의 틀을 시원하게 깨트려주었다. 물론 그럼에도 셔니를 매일 학교에 보냈다. 나의 자유 시간도 소중하니까.
우리는 캠프 마지막 날까지 수영을 즐겼다. 마침 비가 내려 영화 어바웃 타임 같은 명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오들오들 떨면서도 가운을 걸치고 단체 사진을 찍었던 때. 눈물을 가려주는 비가 고마웠던 그때. 아이들끼리 언니 동생하며 서로를 위해주고 아껴 주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방과 후 수영장은 아이들에게 즐거운 놀이터였고, 엄마들에겐 지루한 일상에 활력을 주는 자양 강장제였다. 한마디로 그곳은 지상 낙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