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과 삼겹살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나는 자유로운 탐험가가 아니었다. 20박 21일의 짧은 체류기간 중 19일은 집이 그리웠다. 자신했던 영어실력에 좌절을 하고 식당에서 처음 맛본 락사에서 신맛을 느꼈을 때 집이 생각났다. 이제껏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맛의 조합이 이색적이었다. 총천연색 맛을 찾아낸 말레이인들의 창의력에 감탄하기도 했다. 12색에 불과했던 미각의 스펙트럼이 갑자기 48색 크레파스처럼 확장되는 것 같았다. 내 옆에 앉은 11살 꼬맹이는 새콤한 락사가 맛있다며 연거푸 숟가락질을 했다. 입이 짧아 내가 해준 음식도 많이 먹지 않는데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배는 고프니 굴침스럽게 한 입씩 먹어보지만 나시르막의 쌀밥에선 예측하지 못했던 코코넛의 밀키 한 맛이 났다. 푹 익힌 묵은지가 절로 떠올랐는데 식당엔 그 흔한 피클 한 조각 없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니 그다지 흥이 나지 않았다. 간간이 쇼핑몰에 있던 한식당에서 나의 허기진 위를 채우고 싶었지만, 나보다 개방적인 입맛의 남편과 말레이시아에 도착하자마자 현지인 입맛이 돼 버린 딸은 수구적인 입맛을 이해하지 못했다.
상처받은 나의 영혼은 매일 밤 치킨을 뜯으며 빈 속을 채우고 스스로를 치유했다. 허니콤보와 레드콤보의 단짠은 환상의 짝꿍이 되어 향수병을 달래주는 명약이었다. 솔로들이 나와 짝을 찾는 프로그램이나 보이는 라디오를 표방한 토크 프로그램, 달리는 사람들이 나오는 예능 방송, 각종 K-드라마를 섭렵하며 여기가 쿠알라룸푸르인지 서울인지 모를 나만의 한인타운을 만들었다. 창 밖에는 KLCC 트윈 빌딩과 KL타워 항공 장애등이 빨간빛을 내며 점멸을 거듭하는데 방 안은 한국 음식과 한국말이 넘쳐나는 작은 한국이었다.
이슬람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는 돼지고기가 금기시되다 보니 식당에서는 줄곧 닭고기와 소고기 요리뿐이었다. 마트에서도 저 구석진 모퉁이 논할랄 구역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는데 수요가 적어서인지 돼지고기 값도 한국보다 비쌌다. 3주만 머무르는 곳인데 그럼에도 기어코 삼겹살 식당을 찾아갔다. 아무래도 나의 향수병을 다스리기엔 치킨만으로는 부족했다. 전 세계적인 k팝, k드라마의 흥행으로 쿠알라룸푸르 시내에도 한국 편의점과 한식당들이 곳곳에 있었다. 그간 삼겹살이 한식당의 메뉴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당당히 삼겹살 전문 식당도 여럿 생겨 리뷰를 비교하며 찾아갈 수 있을 만큼 선택지가 늘었다. 그중에서도 국내 식당과 가장 유사한 구성을 보이며 명동에도 본점이 있다는 삼겹살 식당으로 갔다.
삼겹살 150g 1인분에 45링깃. 쌀밥은 5링깃이었다. 반찬도 다섯 가지나 되었는데 배가 고파 자꾸 집어먹었더니 접시가 빌 때마다 직원분이 알아서 채워 주셨다. 이국에서 맛보는 훈훈한 인심이 참 기꺼웠다. 말레이인으로 보이는 직원분이 고기를 한 덩이씩 불판에 올려 타이머를 맞춰가며 정성껏 구워 주었다. 성격 급한 한국인 가족은 짧은 영어를 써 가며 집게와 가위를 뺏어 들고 직접 굽기 시작했다. 남편이 남은 고기 두 덩이를 올려 굽고 자르는데 그 현란한 손짓에 신기한 듯 뚫어져라 쳐다보는 직원분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식당에 방문한 손님 중 한국인은 우리 밖에 없었고 노릇노릇한 고기를 상추에 얹어 쌈으로 먹을 줄 아는 사람도 우리 밖에 없었다. 남들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꿀떡꿀떡 맛있게 먹었다.
아침저녁으로 한식을 먹다 보니 어느새 한국에서 가져온 비상식량이 동이 나기 시작했다. 한국 반찬도 그랩으로 주문해서 먹을 수 있었지만 어차피 한낮에 시간이 많아 한인타운이 있는 몽키아라까지 갔다.
숙소에서 차로 30분 거리이니 그리 가까운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쿠알라룸푸르까지 왔는데 호기심에 한인타운까지 가봤다. 역시 한인마트엔 없는 게 없었다. 한국에 있는 마트를 통째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각종 반찬과 라면, 과자, 젤리까지 기분 좋게 쇼핑을 했다. 경북 영주에서 온 복숭아 한 박스도. 무려 50% 할인이라니 안 살 수가 없었다. 속는 셈 치고 샀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고향의 맛에 눈물이 찔끔 났다.
여행객이라면 현지식을 맛보고 즐기면서 여행을 즐기기 바쁜데 우리는 이민자처럼 향수를 느끼며 이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았다. 국제학교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아니라 엄마의 적응력에 달렸다는 걸 몸소 실감하면서. 이미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갖춘 엄마가 외국에서 현지식으로 융화하며 산다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란 걸 안다. 아직 성장 중인 아이는 학교에서 말레이인, 중국인, 중동인 학생들과 어울리며 잘 지낼 수 있지만 엄마는 언어의 장벽과 문화 차이로 향수병을 앓기 쉽다. 엄마가 적응을 못하면 다시 한국행이다.
몽키아라 스타벅스에서 남편과 한담을 나누는데 옆 테이블에서 한국인 엄마 둘의 대화가 들렸다. 시부모와의 갈등, 아이의 학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역만리에서도 엄마들의 고민은 여전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괜한 내적 친밀감에 오지랖을 부리고 싶어졌다. 혹시 고국이 그리워진다면, 홀로 외롭다면 삼겹살 처방을 내려주겠노라고. 친히 삼겹살 맛집을 알려주겠다고. 번데기 앞에서 신나게 주름을 잡는 상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