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40분이면 아이들은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로 간다. 홀로 남은 엄마들은 숙소에서 시간을 때우거나 이곳저곳 흩어져 있는 쇼핑몰을 찾아 투어를 떠난다.
그래도 우리들은 교육열이 강한 한국 엄마들 아닌가. 일주일에 단 두 시간이라도 영어 수업을 하며 보람찬 시간을 보내 보기로 한다. 노는 입에 염불 외운다는데 부담 없이 영어 공부라도 해 볼 요량이었다. 우리는 영어 초급반과 중급반으로 나눠 두 그룹을 만들었다.
작년 가을부터 1년 가까이 ebs이지잉글리시를 꼬박꼬박 들었고 암기와 필기까지 제법 성실하게 공부했기에 약간의 자신감이 있었다. 초급반과 중급반 중 어디로 갈까 머리를 굴렸다. 리스닝이 중급이고 스피킹이 초급인데 그렇다면 초급반에 가야 할까, 중급반에 가야 할까. 초급반에 가자니 나의 리스닝 실력이 아깝고 중급반에 가자니 스피킹이 걱정이다.
남편도 말레이시아로 떠나기 전부터 매일 영어공부를 하는 나를 짐짓 믿는 눈치였다. 이번 기회에 나의 영어 실력을 제대로 보여줘야겠다 의지를 불태우며 여행 가방에 이지잉글리시 8월호와 영어 노트 한 권 그리고 필통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나만 믿고 따라오라는 무언의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헌데 공항에 내려 그랩을 타고, 식당을 다니며 곧 깨달았다. 나의 진짜 실력을.
말레이어와 영어 발음이 묘하게 섞여 알아듣기도 어려운 데다 현지인을 만날 때마다 내 입만 쳐다보는 남편을 두고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마치 사방이 어두운 연극 무대에 핀 조명을 하나 두고 내 앞에 현지인 한 명과 나라는 사람이 독대를 하고 관객석엔 남편과 딸이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달까. 대본도 없고 감독도 없는 그야말로 생리얼의 라이브 현장에 광대가 된 기분이었다. 긴장하니 들리지도 않고 입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었나’ 자괴감과 창피함에 입은 점점 굳어갔다.
그렇게 양심을 챙겨 영어 초급반에 들어갔다. 어차피 다들 실력은 비슷할 테니 창피할 것도 없겠다 자위하면서.
우리가 만난 영어 선생님은 30대 초반의 알리샤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안경을 쓰고 머리에 히잡을 두른 호탕한 성격의 아가씨였다. 우리는 숙소 1층에 있는 카페에 모여 수업을 시작했다. 첫날은 당연히 자기소개 타임. 엄마들 다섯이 돌아가며 30분 동안 자기소개를 하고 알리샤에게 궁금한 점을 한두 가지 정도 묻는 시간이었다. 앞서 엄마들이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알리샤에게 질문할 거리를 생각했다. 머릿속에 저장된 문법에 맞는 문장을 찾아내느라 시간이 부족했다. 초조했다.
엄마들은 약간씩 긴장을 하며 영어를 또박또박 말했고 나는 괜스레 마음이 놓였다.
“왓 카인드 오브 코리안 푸드 두 유 라이크?” 이만하면 됐다 싶었다. 비록 수차례 말을 더듬었지만, 그래서 얼굴이 홧홧거렸지만 일단 질문을 했으니 내 차례는 지난 거다. 이윽고 평정심을 찾은 순간 알리샤가 되물었다. 네가 좋아하는 말레이시아 푸드는 무엇이냐고.
알리샤는 영어 수업에 진심이었다. 쌍방향 대화를 이어가고자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이 프로페셔널해 보였다. 와우.
남은 30분, 갑자기 알리샤가 영어로 빼곡한 프린트물을 꺼냈다. 순간 뒷목이 뻣뻣해지는 느낌이다. 제발 오늘 아침 이지잉글리시에서 배운 내용만 나와라 하며 이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경건한 마음으로 종이를 살폈다. 분명 기초적인 문제가 나오리라 자기 예언적 확신을 거듭했건만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토익도 아니고 무려 토플 수준의 문제들로 가득했다. 한숨을 쉴 때가 아니다. 제한된 시간에 풀어야 한다. 고개를 푹 숙이고 한 문장씩 읽어보지만 그 말이 그 말 같다. 언제 이 긴 지문을 해석하고 문제까지 풀어야 하나 막막할 뿐이다. 단복수 일치, 시제 찾기, 가정법 등 익숙하지만 낯선 문법 문제들이 이 왕초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풀어야 하나 찍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조심스럽게 눈동자를 굴려 옆에 앉은 엄마들을 살폈다. 분명 그녀들도 당황한 눈치다. 그렇다. 나의 희망은 꺼졌다. 그저 이 시간이 간주 점프하듯 얼른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때 알리샤의 경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우리는 왕초보반인데 알리샤는 우리의 실력을 과대평가한 것 같았다. 문제를 풀었으니 답을 불러줘야지 우리 더러 한 문제씩 돌아가며 답을 말하라는 거였다.
이제 정말 때가 왔다. 제대로 망신당할 때가.
침이 점점 마르고 끄적이던 손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도대체 나라는 인간은 그간 무슨 자신감으로 영어를 꽤 잘한다 착각했던 것일까.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는 왕초보반이니까. 앞다퉈 오답 경쟁을 하고 나니 진한 자매애가 퐁퐁 샘솟았다.
쫄깃한 영어 수업이 끝나고 알리샤는 다음 수업을 위한 스피킹 주제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말레이시아를 선택한 이유와 이곳에서의 가장 좋았던 경험 말하기. 중고교 내내 미국식 영어 발음으로 학습된 엄마들의 귀는 알리샤의 발음을 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말레이어와 영어가 혼합된 고난도의 리스닝 테스트 같았다. 엄마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묻고 또 물었다. 파도타기 하듯 엄마들의 입에서 입으로 질문이 돌아도 끝끝내 정답을 찾지 못할 땐 다섯 중 가장 용감한 엄마가 알리샤에게 씩씩하게 질문했다.
영어 수업이 끝나면 엄마들은 카페에 남아 한 시간 동안 꾹꾹 눌러 놓았던 한국어를 제대로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자신보다 영어가 낫다며 서로 추켜세워 주기도 하고 오늘은 영어 발음이 좋았다며 무너졌던 자존감을 끌어올려 주었다. 전날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부터 쇼핑몰 맛집, 귀국을 대비한 기념품 추천까지. 엊그제 만난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급격히 친해졌다. 우리는 영어로 상처받은 마음을 서로 위로하며 다음 수업에도 결코 빠지지 않고 꼭 참석하자는 의지를 다졌다.
2주 차 수업에 접어들며 영어 시간이 점차 편안해졌다. 영어 못하는 것쯤이야 이제 흉도 아니고 엄마들끼리의 친밀감과 알리샤의 유쾌한 성격이 시너지를 내며 1시간 수업이 10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길. 여전히 영어를 입에서 떼기가 어려웠고, 알리샤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울 때는 옆자리 맏언니를 의지하며 “도와주세요”라고 당당하게 묻는 배포가 생겼을 뿐이라는 것을.
안 그래도 내향적이고 수용적인 편이라 셋 이상만 모여도 말을 하기보다 묵묵히 듣는 쪽인데 영어라고 뭐가 달랐을까. 일단 뱉어야 빨리 느는 건데 따지고 보니 한국말이나 영어나 사람들 앞에서 입을 여는 게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왕초보반 엄마들은 다들 초등학생 자녀를 두었고 나이 차이 또한 위아래로 4살을 넘지 않은 데다 결정적으로 다 같이 영어라는 높은 파고를 넘으며 끈끈한 동지애가 생겼다. 영어 수업이 없었더라면 우리들은 이렇게까지 친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영어의 구렁텅이 속에 서로가 서로를 구원해 주는 한줄기 빛, 구원자였다. 비록 영어 실력은 제자리였지만 이국에서 한국인의 정을 제대로 느끼고 왔으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영어는 놓쳤지만, 사람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