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로 떠나기 6개월 전부터 스쿨링 캠프를 신청하고 숙소와 비행기 티켓을 하나씩 해치우다 보니 떠날 날이 코앞에 다가왔다. 피난이라도 떠나는 것 마냥 동결건조국과 한 끼씩 비닐 포장된 썰은 김치, 1인분씩 낱개 포장된 누룽지와 김과 김자반, 씻어 나온 쌀까지 바리바리 챙겼다.
소심하고 겁 많은 성격에 아이까지 데리고 떠나다 보니 출발하기 전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몇 해전 갑작스레 생긴 방광염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면역력이 조금이라도 떨어질 때면 곧잘 재발했다. 그 찝찝하고 쓰라린 통증은 날카로운 추억이 되었고 재발의 기미가 보이면 안절부절못하고 물만 연거푸 들이마시며 화장실을 들락날락해야 했다. 예측불가한 상황에 나의 고질병까지 매달고 가게 되는 셈이라 불안이 극에 달했다.
아프면 어떡하지, 다치면 어떡하지,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걱정의 무게도 커져만 갔다. 감기약, 해열제, 지사제, 소화제, 모기 기피제와 상처에 바르는 연고와 밴드, 그리고 나의 영원한 동반자 크랜베리 영양제까지. 걱정의 크기만큼 비상약 파우치도 점점 빵빵해졌다. 말라리아 예방접종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인터넷을 찾아봐도 예방주사까지 맞고 가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고 내가 생각해도 유난인 것 같아 예방 주사는 접었다. 그래도 동남아 수질이 안 좋다고 하니 샤워 필터, 싱크대 수전 필터까지 넉넉히 챙겼다. 이런 나를 두고 그렇게 걱정스러우면 집에나 있지 굳이 왜 가냐며 면박을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쨌든 이번엔 떠나야 했다. 3년도 아니고, 3개월도 아니고, 3주니까. 이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릴 수는 없으니까.
3주 동안 머물 숙소는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레지던스 호텔이었다. 고급 아파트에서나 볼 법한 각종 커뮤니티 시설은 해외 살이의 걱정을 덜어줄 만큼 멋지게 보였다. 야외 수영장은 물론 피트니스 센터, 축구장, 테니스장, 탁구장, 사우나까지 온갖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매일 아침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러닝 머신 위에서 창 밖을 내다보며 우아하게 뛰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몸에 밀착된 브라탑과 레깅스, 흰 운동화를 신고 이따금 땀이 나면 목에 두른 작은 타올로 얼굴을 닦고 스탠리 텀블러에 있는 레몬수를 한 모금씩 마시며 건강한 몸매를 자랑하는 미래의 나. 새로운 루틴을 습관으로 만드는 데 21일이면 된다고 하니 타이밍도 딱이었다.
그랩을 타고 가면서도 사진에서 보았던 숙소의 모습을 떠올리며 숨바꼭질의 술래가 된 듯 눈으로 숙소를 찾았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가 배정받은 방은 32층이었다.
‘네? 32층이라구요?’
어린 시절부터 지독한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꿈과 희망이 있는 스펙터클 어드벤처 놀이 공원에서조차 바이킹을 언제 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지경이고, 아파트마저 저층을 선호하며 1층에 살고 있는데 당분간 32층에서 지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게다가 영국 스타일을 따르는 나라라 1층이라고 해서 우리가 알던 그 1층도 아니다. 그냥 맘대로 붙이기 나름이랄까. 수영장, 피트니스센터 등 공용공간을 제외하고 1층부터 시작되는 거니 족히 42층은 되어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을 넘어가니 갑자기 귀가 멍해지기 시작했다. 몸은 정직해서 기압의 차이를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숙소로 발길을 돌리는데 갑자기 난간 아래가 눈에 들어왔다. 슬쩍 내려다보니 땅바닥이 아득하게 보였다. 순간 발바닥에 껌이라도 붙었는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높은 층엔 난간에 그물이라도 쳐야 하는 게 아니냐며 항의라도 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난 잠시 머물다 가는 여인숙의 여행객일 뿐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재빨리 눈을 돌렸다. 고소공포증 극복 체험에 참가한 실험자라고 세뇌하며 이번 기회에 고소공포증에 탈출해 보자며 긍정회로를 돌렸다.
함께 캠프에 온 엄마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고층이라며 부러워했다. 저층은 주차장 타워 위에 마련된 놀이터 뷰였고 고층일수록 말레이시아의 랜드마크인 KLCC쌍둥이 빌딩과 KL타워가 멋들어지게 보이는 시티뷰였다.
그들의 기대를 깨기도 미안했고, 구구절절 말하기도 마뜩잖아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맘 같아선 숙소를 바꾸자며 먼저 제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시티뷰를 좋아하던 남편 얼굴이 떠올라 입을 꾹 다물었다.
숙소는 거실과 취사 가능한 부엌, 화장실 두 개와 방 두 개로 우리 집보다 더 쾌적하고 훌륭했다. 신축에 가까운 건물로 외관, 내부 모두 쾌적하고 고급스러웠지만 밤새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숙소 옆에 고속도로가 있어서 새벽 시간에도 쌩쌩 달리는 차들과 오토바이의 굉음이 끊이질 않았고 그 모든 소음을 막아주기엔 창문이 너무 부실했다. 단일창이었다!
슬프게도 큰 방 디럭스 침대를 포기한 채 소음이 덜한 작은 방에서 3주를 보내야 했다. 1인용 침대에 딸과 둘이 부둥켜안고 자야 했으니 어찌 보면 단칸방 신세와 다를 바 없었다. 불면증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어 낮 동안 부지런히 몸을 놀렸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이 등교를 돕고 나면, 낮잠이라도 원 없이 잘 수 있을 만큼 한가해졌지만 매일 밤 소음 공격을 이겨낼 만큼 피곤해야 했기에 종일 쇼핑몰을 돌아다녔다.
꿈에 그리던 커뮤니티 시설인 피트니스 센터와 스포츠 공간이 있었지만 운동을 싫어하는 남편의 비협조와 나의 소심함, 귀차니즘이 콜라보를 이뤄 러닝 머신에서 멋지게 뛰던 미래의 나는 거기에 없었다. 테니스장, 탁구장도 매트와 탁자만 덩그러니 있을 뿐 필요한 소도구들을 각자 준비해야 하니 그림의 떡 같았다. 3주만 머물 건데 배드민턴채도 사고 테니스채도 사고 탁구채도 사기가 어정쩡했다. 그리하여 3주는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도 배우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반면 낯선 곳에서 머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에겐 3주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