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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봉봉 Oct 23. 2024

어쩌다 국제학교 스쿨링 캠프

내향형 엄마의 말레이시아 3주 살이

시작은 이랬다. 남편의 상향 이직이 성공한 지 바야흐로 3년째. 우리에게도 한 달간의 휴가가 찾아온 것이다. 때를 기다리며 어디를 갈까 부단히 고민했다. 한 달을 통째로 쉬려니 아이의 학교가 걸린다. 그럼 이번 여름 방학 때 가면 된다. 이제 어디로 갈까 행선지를 정할 차례다. 남편이 관광객으로 득시글한 유럽 여행을 꿈꾸고 있을 때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부부 둘이 오붓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한 달 살이를 그렸다. 동남아 영어권 국가에 가서 아이는 부지런히 영어를 배우고 부부는 레저를 즐기며 제2의 신혼 같은 일상을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달콤한 꿈이다. 

아이에게 물었다. 

“유럽 여행이 가고 싶어? 아니면 스쿨링 캠프를 가고 싶어?” 

“스쿨링 캠프가 뭔데?”

“외국인 친구들하고 학교에서 영어도 배우고 재미있게 노는 거야.”

“그럼 나 스쿨링 캠프 갈래.”

오호라. 나의 마음을 읽은 것 같은 아이 덕분에 우리는 스쿨링 캠프를 가게 됐다. 

어디로? 말레이시아로!


국제학교 첫날. 부모와 아이들이 다 함께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가 있는 쿠알라룸푸르의 샤알람으로 향했다. 입학식도 아닌데 아이보다 내가 더 설렜다. 학교는 숙소에서 차로 30분 거리. 창 밖으로 이파리가 기다랗고 기둥이 어마어마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옆에 야자수인지 팜나무인지 모를 삐죽한 나무들이 군데군데 초록빛을 더했다. 다홍색 지붕의 단층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이국적이었다. 영어로 써진 큰 간판들을 보니 말레이시아에 온 게 제대로 실감 난다. 

간간히 스치듯 지나가는 오토바이와 도요타, 혼다, 닛산 차량이 줄지어 오가는데 나도 모르게 현대, 기아차를 숨은 그림 찾듯 찾아본다. 역시 외국에 나오니 애국심이 발동한다. 


저 멀리 보이던 거대하고 웅장한 파란 모스크가 가까이 보일 무렵 학교에 도착했다. 우리를 포함해 이번 국제학교 스쿨링 캠프에 참여한 팀은 11팀. 남매나 형제가 같이 온 경우도 많았다. 학교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적당한 크기의 교실로 모였다. 오리엔테이션인 만큼 교장 선생님의 환영 인사와 학교의 특색, 지켜야 할 룰을 차례로 소개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존중과 예의를 중시하는 학교 분위기도 좋았다. 특히 부끄러워하지 말기,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기처럼 아이들의 주도적인 참여를 독려하는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만약 내가 30년 전 이 학교를 다녔다면 부끄러움이 많고 내향적인 나 같은 아이도 뭔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차, 30년 전이면 학교가 설립되기 전일지도 모르겠구나. 나 혼자 상상의 나래를 신나게 펼치는 동안 현지 선생님은 아이들을 차례차례 호명하며 선물 꾸러미를 나눠주었다. 어색한 듯 요상한 발음으로 더듬더듬 한국 이름을 부르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마냥 신선했다. 귀여운 노란색 유니폼과 파란색 체육복, 학교 이름이 떡하니 박힌 다양한 크기의 노트 여러 권, 질이 좋아 보이는 일본 필기구 세트와 필통까지. 종합선물세트였다. 


드디어 기다리던 버디 친구들이 찾아왔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각자 정해진 반의 버디를 따라 교실로 돌아가면 행사는 마무리된다. 한국 학생은 반 당 2명씩. 4학년인 내 딸 셔니는 캠프에 함께 온 동갑내기 남자아이와 같은 반이 됐다. 버디는 셔니보다 약간 작은 듯 귀엽고 야무진 인상의 야스민이었다. 동성 친구라니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아이들이 줄지어 서서 이동하려는데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린다. 엄마의 허리를 잡고 안 가겠다고 우는 아이는 분명 이 중에서 가장 작아 보이는 1학년 새내기 친구였다. 당황한 엄마와 엄마를 붙잡고 우는 아이. 그 둘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엄마 아빠들. 아마 다 같은 심정일 거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이곳까지 왔지만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아이를 보니 또 마음이 아프고 안쓰러운 그런 거. 내 애도 생경한 곳으로 갑자기 날아와 어리둥절하며 속으로 울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재미있게 노는 것이라더니 엄마한테 속았다며 이따 하교하자마자 내일부터 등교거부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다.

제 발로 걸어가는 아이의 엄마들이나 허리춤을 잡혀 네 발로 가는 엄마 할 것 없이 그곳에 있는 엄마들은 서로에게 위로와 공감의 눈빛을 던졌고, 누군가는 아이가 금방 적응할 거라며 네 발로 걷는 엄마를 위안하기도 했다. 결국 끝까지 아이에게 붙잡혀 교실까지 따라간 엄마를 애처로운 시선으로 배웅하며. 

‘3주 동안 잘 해낼 수 있겠지?’, ‘우리 아이들은 잘할 거야’라는 마음으로 엄마 아빠들은 다시 스쿨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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