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남편도 행복했을까?
어느덧 3주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처음에 말레이시아에 도착했을 땐 3주라는 시간이 꽤 길게 느껴졌는데 세 번의 주말을 보내고 나니 벌써 떠나야 할 날이 도래한 것이다.
우리는 영어 선생님 알리샤와 마지막 수업을 했다. 몽키아라에 있는 로컬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알리샤는 우리가 도착하기 전 애피타이저와 락사, 누들 요리를 미리 주문해 놓고 깜짝 송별회를 열어주었다.
서로 떼타릭과 음식을 건네며 프리토킹을 했다. 물론 나는 알리샤의 눈을 피해 묵묵히 음식을 먹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를 반복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별미를 입 안에서 한참 굴려보며 내가 알던 친근한 맛과 비슷한지 아닌지 맞춰보았다.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고 있는 사이 알리샤는 종이 가방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그 안에는 말레이시아 라면과 과자, 카야 잼이 있었고 지난 영어 수업에 알리샤가 가져온 전통 간식 피상 고랭-바나나를 쌀가루나 밀가루와 반죽해 팜유에 튀긴 전통 간식-을 만드는 원재료도 있었다. 우리가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더니 알리샤는 잊지 않고 선물로 가져온 것이다. 지난 시간 동안 수업을 하며 행여 서운한 게 있더라도 너그러이 마음을 풀어달라는 말과 함께.
우리는 알리샤가 준 말레이시아 국기인 잘루드 그밀랑을 손에 들었고, 알리샤는 핸드폰에 태극기를 띄워 놓고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국과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와 한국 간 민간 외교의 장이었다. 잠깐이었지만 어떤 인연으로 만나 사제 관계를 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진한 우정을 나눴다.
마지막으로 알리샤와 한 명씩 포옹을 하며 작별인사를 하는데 그만 선호 엄마가 눈물을 터트리는 바람에 다들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토끼처럼 빨개진 눈을 손으로 꾹꾹 누르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이날 우리가 가장 많이 쓴 영어는 땡큐와 해피였다.
헤어지기 아쉬운 우리 엄마들은 귀국하기 전에 차를 대접하겠다며 커피를 돌리기 바빴다. 이제 자기 차례라며 커피를 사기 시작하니 마지막이 마지막이 아니어서 민망할 정도였다. 돌림 노래를 부르듯 우리들의 송별회는 셋째 주 내내 계속됐다.
여고생처럼 카페 투어를 하며 서로의 첫인상에 대해 회고하고 인상과 인성의 상관관계에 대해 토론을 하고 반전 매력을 이야기하며 웃었다. 즐거웠던 에피소드를 나누고 힘들었던 때를 되돌아보며 공감하고 함께라서 고마웠다는 고백도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적응하느라 성장통을 겪었다면 엄마들은 먼 이국에서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짧은 영어로 살아남아야 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들만 실패하는 게 아니라 성인이 된 엄마들도 낯선 곳에서 실수하고 좌절하는 경험을 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실패할 일도 없을 거라는 막연한 안일함을 깨 주었던 시간이기도 하다. 어린 날에 비해 크게 상처받지 않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스스로에게 관대한 그런 어른이 되어보는 배움의 현장이었다.
함께 영어 수업을 하던 엄마들과는 더욱 각별한 정이 들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그 품이 한껏 넓어진 엄마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마음의 폭이 참 넓었다. 우리들은 급속히 친해졌고 내내 의기투합하며 서로를 응원했다.
엄마들과 연일 송별회를 하며 눈물 콧물을 짤 동안 남편은 숙소에 남아 한가로움을 즐겼다. 캠프에 함께 온 아빠들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소수였고 그마저도 일주일을 채 넘기지 않고 고국으로 돌아갔으니 우리 남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였던 셈이다. 말레이시아에 와서 승마나 골프를 하지 않으면 바보라고 할 정도로 가성비가 좋은 취미였지만, 승마는커녕 말 근처에 가본 적도 없고 팀플레이인 골프를 혼자 칠 수도 없어서 남편은 숙소에서 티브이와 뒹굴었다.
그럼에도 나 못지않은 내향형 인간인 남편에게 홀로 있음은 그 자체로 힐링이었기를 굳게 믿는다.
향수병에 걸려 골골거렸어도, 영어로 좌절을 맛봤을지라도, 엄마들과 나눈 정, 말라카의 순하고 가벼운 바람 그 모든 것들이 다 행복이었다.
우리들의 504시간은 이렇게 끝이 났다.
비록 3주란 시간은 짧았지만 마음을 나누기에 부족하지는 않다. 덕분에 즐거웠고 행복했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인연에 감사하며 그들의 앞길에도 축복이 가득하길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