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간식은 바삭바삭한 과자다. 기름에 튀긴 얇은 칩을 씹으면 마른 낙엽을 밟을 때 나는 소리가 입안에서 울려 퍼진다.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은 구미를 당겨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게다가 꼭 저녁을 먹고 나면 괜스레 입안이 심심해 과자를 집어먹게 된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봉지를 뚝딱 해치우고 나면 후회의 파도가 밀려든다. 내 마음속엔 건강을 위해 간식을 끊어야 한다는 급진파와 과자 한 봉지 정도는 괜찮다는 온건파의 갈등이 첨예하게 벌어진다. 그리하여 나는 이 두 대척점에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고 양파의 불만을 모두 잠재운다. 바로 과자 대신 부각을 먹는 것이다.
비록 기름에 튀겼지만 기름에 튀겨야만 내가 좋아하는 바삭함을 맛볼 수 있으니 전통 과자인 부각이 과자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김은 물론 다시마와 호박, 연근, 고구마까지 들어간 종합선물세트 같은 부각을 골랐다. 김은 입안에서 가볍고 부드럽게 바스러졌고 호박, 고구마 같은 두꺼운 조각은 힘을 주어 오도독 씹어야 했다. 이러구러 덩실덩실 흥이 나게 부각을 씹다 보니 오른쪽 윗 어금니가 아픈 줄도 몰랐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되는 잇몸 통증에 밥을 먹을 때도 말을 할 때도 아팠다. 당장 치과에 가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 나아질 것도 같아 게으름을 피웠다. 나의 게으름이 통증을 이겼다.
3년 전 오른쪽 윗잇몸 끝에 사랑니가 불쑥 튀어나왔다. 당장 발치해야 할 것 같아 치과로 달려갔다. 과잉 치료를 하지 않는 이름난 동네 치과로 해마다 스케일링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치과의사는 사랑니를 발치하면 사랑니가 밀고 있던 어금니가 얼마 못 가 흔들리고 빠질 수도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사랑니가 뿌리가 짧은 어금니를 지탱해 주는 역할도 하니 양치를 잘하면서 지켜보는 게 좋겠다고 했었다. 십 년 전엔 오른쪽 아래 어금니에 났던 사랑니를 바로 발치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3년도 못 가 사랑니 옆에 있었던 어금니가 약해져 신경치료까지 했던 게 기억이 났다. 최대한 이를 잘 관리해서 오래 써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딱딱한 고구마 부각을 씹다가 이 사달이 났으니 분명 나의 잘못이다. 치아 뿌리가 남보다 짧다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설마 부각을 먹다가 이리될 줄 생각도 못했다.
몸을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 나이가 된 것 같아 잠시 슬픈 감상에 빠졌다가 박노해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11월의 저물녘에
낡아빠진 경운기 앞에 돗자리를 깔고
우리 동네 김 씨가 절을 하고 계신다
밭에서 딴 사과 네 알 감 다섯 개
막걸리와 고추장아찌 한 그릇을 차려놓고
조상님께 무릎 꿇듯 큰절을 하신다
23년을 고쳐 써 온 경운기 한 대
야가 그 긴 세월 열세 마지기 논밭을 다 갈고
그 많은 짐을 싣고 나랑 같이 늙어왔네 그려
덕분에 자식들 학교 보내고 결혼시키고
고맙네 먼저 가소 고생 많이 하셨네
김 씨는 경운기에 막걸리 한 잔을 따라준 뒤
폐차장을 향해서 붉은 노을 속으로 떠나간다
-박노해, 경운기를 보내며
가장 쓸모없어 보이는 사랑니도 현생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는 구석기시대의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쓸모 있는 여분의 치아였을 거다. 거친 식물의 이파리와 질긴 고기를 씹기 위해 턱이 우람하게 벌어진 성인기 어금니 끝에 하나씩 뽀드득 올라 식생활을 이롭게 했을 것이다.
나는 십 년 전 발치를 마치고 치과 밧드에 놓인 사랑니를 보며 경운기를 보내는 김 씨의 마음을 떠올렸었다. 경운기를 폐기 처분하기 전에 23년 동안 논밭을 갈고 생계에 보탬이 되었던 생계 도구를 노동의 파트너로 격상시켜 제사라는 형식으로 고마움을 전했던 그 마음 말이다. 이보다 더 예의 있는 이별이 어디에 있을까 싶었다. 소박하지만 따뜻하고 진솔했던 시인의 마음이 나의 마음을 울렸다.
나도 단번에 뽑혀 나온 사랑니를 보며 짧은 글을 지었었다.
땅 속에 숨겨 있던
씨앗
톡 하고 기를 쓰고 올라왔다
바깥구경 좀 하나 싶었는데
씽-덜컹
산 채로 뽑힌 잡초 신세
부어 있던 오른쪽 잇몸도 점차 가라앉아 정확히 2주가 지나서야 다시 씹을 수 있게 됐다. 다행히도.
사랑니는 애물단지 같다. 뽑아도 문제, 두어도 문제다. 그래도 이렇게 마음이 복잡해질 때 김 씨의 마음을 떠올려야겠다. 한때나마 함께 했던 것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을 아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이별도 후회로 남지 않을 것이다. 비좁은 어금니 끝에서 미움만 받다가 뽑히는 처량한 신세 말고 앞니로 당당하게 태어나 반짝반짝 빛나기를.
무(無) 쓸모의 쓸모를 생각하며 입안에 있는 사랑니를 잘 다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