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를 기다리며
“오늘은 몇 번째 시료지?”
HPLC 앞에 앉아 시료를 넣고, 결과를 기다리고, 데이터를 다시 들여다본다.
시간은 벌써 7시간을 훌쩍 넘었다.
일하다 보면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는 날도 있고,
오늘처럼, 고요하게 멈춘 것 같은 날도 있다.
단백질 분석은 간단하지 않다.
특히 고분자·저분자 불순물을 분리해 확인해야 하는 경우,
작은 피크 하나에도 수없이 많은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단백질이 깨진 건지, 공정 이상인지, 단순한 시료 상태 문제인지.
그래서 같은 분석을 반복하면서도, 매번 의심하고 다시 보는 과정을 멈출 수 없다.
이 일의 매력은,
단순히 '피크가 잘 나왔다'는 결과가 아니라
'왜 이렇게 나왔는가'를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는 순간에 있다.
오늘도 그런 하루였다.
머릿속에서는 “이게 맞을까?”를 되뇌면서도,
손은 자동처럼 시료를 정리하고, 기기를 점검하고, 리포트를 쓴다.
분석실 특유의 냉정한 공기, 기기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분석자만이 아는 그 '확신의 순간'이
오늘도 나를 이 자리로 붙잡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기는 조용히 다음 시료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