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엔 없어서, 내가 안산으로 갔던 이유

장비가 없다는 이유로 멈출 수는 없었다

by 지수로그

오송 연구소엔 GC-MS 장비가 없다.
하지만 그때 내가 해야 했던 일은 GC-MS가 꼭 필요한 분석이었다.
용기에서 유래한 침출물을 검출하고 정량하는 분석법.
허가 자료에 들어가는, 말 그대로 실패하면 일정이 밀리는 중요한 분석이었다.


장비가 없다고, 분석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분석법을 직접 개발하기 위해 안산 연구소로 출장을 갔다.
처음 가보는 곳, 처음 써보는 장비, 익숙하지 않은 환경.
하지만 누구도 나 대신 이 분석을 해줄 수는 없었다.


처음 며칠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온도 조건을 조정해도 baseline noise는 그대로였고,
컬럼을 바꿔도 분리도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MS에서 불필요한 이온 간섭이 생겨, 정량 신뢰성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때부터는 정말 하나씩 직접 확인하며 조건을 쌓았다.
이온 소스 청소, 내부 표준물질 도입, 시료 전처리 방법 개선,
그리고 그 결과를 정제기술팀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결국, 적합한 분석 조건을 찾아 정량 선형성과 검출한계를 만족시키는 방법을 완성했다.


안산 출장은 단순히 분석을 ‘하러 간 것’이 아니라
분석법을 내가 만든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체득한 순간이었다.
누군가 세팅해준 기기가 아니라,
내가 처음부터 조건을 설정하고, 기준을 맞추고, 데이터를 만든 경험.


이 경험은 내게 ‘기기분석자’라는 직무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단순히 기기를 다루는 게 아니라,
문제를 파고들고, 환경을 바꿔서라도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직업.


그래서 요즘도 가끔 안산 출장 때 썼던 실험노트를 꺼내본다.
그 안엔 내가 분석자로서 한 발짝 성장했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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