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분석자의 말은 신뢰여야 했다.

by 지수로그

처음엔 무심히 넘겼다.
크게 흔들리는 건 아니었고, 피크는 여전히 보였다.
그런데 반복 주입할수록 RT가 지연됐고, area 값이 미세하게 감소했다.
‘기기 오차겠지’라고 넘기기엔 너무 반복적으로 이상했다.


기기 조건, 시약, 표준물질, 컬럼까지 하나씩 점검했다.
조건을 바꿔가며 실험을 반복하는 동안
이상 현상이 컬럼에서만 발생한다는 걸 확인했고,
결국 선택적 흡착에 의한 컬럼 손상이 원인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단순한 분석 실패가 아니라,
지속적인 반복 분석이 컬럼 성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구조적 문제였다.


확보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QC 부서에 분석 결과를 투명하게 공유했다.
세척 조건의 한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했고,
결국 QC 팀과 협의해 세척 프로토콜을 개선하고 SOP까지 수정했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내가 한 말이 분석 결과로, 문서로, 시스템으로 남는다’는 책임감.


분석은 기기가 하지만,
기기가 하지 못하는 건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았지만,
나는 그 미세한 피크의 변화를 끝까지 쫓았고,
그게 작은 개선으로 이어졌다.

분석자는 결국,
‘문제를 먼저 멈춰보는 사람’이라는 걸 배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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