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이 아니라, 나를 검증하는 시간
Validation을 처음 맡았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는 단순히 '분석법이 잘 되면 끝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도 아니었다.
직선성, 정확성, 정밀성, 특이성, 완건성, 검출한계, 정량한계...
하나의 분석법이 ‘유효하다’는 걸 증명하려면,
수십 개의 시료와 수백 개의 숫자를 뽑아내야 한다.
특히 정확성과 정밀성은 나를 제일 많이 흔들었다.
똑같이 시료를 주입했는데 값이 어긋날 때,
내가 틀린 건지, 기기가 틀린 건지, 기준이 너무 빡센 건지 알 수 없었다.
모든 조건을 통제했는데도 값이 흔들리면, 결국 실험자는 스스로를 의심한다.
그럴 때 나는 실험노트를 다시 꺼냈다.
시약 배합부터 주입 순서, 기기 로그까지 하나하나 다 훑어보며,
결국 데이터가 아니라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Validation은 단순히 분석법이 ‘잘 작동하는지’를 보는 게 아니다.
‘누가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가’를 입증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숫자를 맞추는 게 아니라,
내 분석이 책임질 수 있는 결과라는 걸 증명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지금도 validation이라는 말을 들으면 머리가 살짝 지끈거리긴 하지만,
그만큼 실험실에서 가장 ‘진짜 분석자’가 되는 과정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