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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가을 Sep 08. 2022

'결혼'도 '이혼'도 정답입니다

신은 우리를 단련시키기 위해 세상에 보낸 것이 아닐까? '좋은 선택'을 하기란 참 어려운데, 살아있는 한 끝없이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한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들은 반복적인 일과를 만들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좋은 습관을 만들어 '선택'하는 데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루틴한 삶을 살고 싶어도, 때로는 마치 교통사고가 발생하듯 예기치 못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곤 한다. 예를 들면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고민,

"이 인간과 계속 살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혼'을 했거나, '이혼'을 할지말지 고민하는 사람들만 이런 고민을 했을까? 그렇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은 사람들, 아이가 자라 직장에 다니고 머리가 희끗해진 결혼 수십년차의 부부들조차 이런 고민 속에서 마치 투쟁하듯 살아가거나, 투쟁 끝에 얼마쯤 포기하고 사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불교공부를 하면서 이모님 연배쯤 될 법한 나이의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다행히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분들이 많았으나 속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결혼 후 행복지수가 지하 수십층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시댁식구들과 종일 함께 있다가는 병에 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낮에 집 밖에 나와 봉사활동을 했다는 분,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힘들어 마음공부를 하기 위해 불혹의 나이에 심리학 대학원에 진학해서 50세가 다 되어 박사학위를 땄다는 분, 남편과 이혼 후 큰 결심으로 재결합했는데 후회된다는 분, 남편이 술 마시고 늦게 집에 들어와 힘들다는 분, 반대로 자영업하는 남편이 점심 때까지 집에서 안 나가고 있으면 짜증이 나 죽겠다는 분...결혼생활을 하며 이혼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선택의 기로에 서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런 사정은 남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일 문제로 10년 넘게 알고 지낸,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50대 남성 한 분은 친한 동료 몇 사람만 모인 소규모의 회식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지는 않아요"

그 사람은 평소 회사 직원들에게 존경받고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걸까 하던 찰나, 부연설명을 덧붙이는 것이었다.

"꼭 누군가가 예뻐서 사랑하는 건 아닌 거 알아요? 나는 아내의 사정이 너무 불쌍해서, 동정심에서 결혼했어요. 아이를 하나 낳았고 할일을 다 했으니까, 이제 각방을 쓴 지 오래됐어요. 그런데 남자는 종족번식의 본능 때문에 타고나길 성욕을 다스리기 힘들거든요. 그러니까 몸과 가정을 잘 지키는 남자는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남자만 성욕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아니고, 남녀 구별없이 사람의 성격이나 나이나 특성에 따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에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기의 욕심을 채우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행동은 윤리적으로 당연한 것이지만, 인간이기에 그 사람의 마음 속에서는 아내와 가정에 대한 의무를 지키기 위해 전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면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 일심동체가 되는데, 한번쯤 자기가 겪은 고통이다 보니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건 아직 미혼인 경우인데, 기혼자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결혼을 정말 꼭 해야 할까요?" 반문을 하기에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인생이 아닐까? 결혼을 정말 해야할지 모르겠다 하면서 덜컥 결혼을 선택하고, 막상 결혼해보니 결혼 전의 기대와 달리 '산 넘어 또 산이더라' 하며 인생 최악의 행복지수를 찍고, 이제는 정말 '이혼'을 해야할까 선택의 기로에서 또다시 갈등한다. 그렇게 '이혼'을 선택하면 결혼생활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대신 실과 바늘처럼 따라오는 사회적 낙인이나 육아문제와 같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이때 결혼 전 주변 환경이나 자신의 마음이 그리 행복하지 못해서 결혼을 통해 행복을 찾고 싶었던 경우, 즉 결혼에 대한 기대가 많았던 사람일수록 '이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반면 '결혼 유지'를 선택할 경우 봉사활동을 하든, 종교생활을 하든,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갖은 방법으로 고통을 견딜 방법을 찾고 어찌어찌 버텨낸다. '아이가 대학에 갈 때까지만 참자' 했지만, 그때쯤 되면 어느새 결혼생활의 고통에 익숙해졌거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면서 오랫동안 계획했던 '이혼'을 포기한다. 그때 거울을 보면 머리에는 백발이 늘었고, 눈가에는 주름이 져 있다.


이처럼 연배가 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마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나라의 결혼문화 때문인지 가부장사회의 잔재 때문인지 교육과정 때문인지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직업도 재산수준도 사회적 지위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사실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비슷한 고민을 하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글에서 결정을 잘 못 내리는 이유에 대해 '욕심이 많아서' 그리고 '책임지기 싫어서'라는 이야기를 했다.

어떤 선택을 포기하면 그에 따르는 가치도 포기할줄 알아야 하는데 어느 것도 포기하기 싫고, 내 선택의 결과를 내가 책임지기 두려운 것이다. 결정를 잘 하고 싶다면, 이와 반대로 하면 된다. 다양한 선택지들이 주는 이익을 모두 갖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내 선택에 따른 것이니 받아들이면 된다.


말이 쉽지, 누가 몰라서 그렇게 안 하냐고? 그 말이 맞다. 지난 글에서 남이 아닌 내 장단에 춤추고, 내 뜻대로 살아야 중요한 결정도 잘 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겨우 옹알이 수준의 공부를 했지만, 불교대학에서 배운 것 중 하나를 말하자면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결과물 그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내가 어떤 안경을 쓰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선택이 좋기도, 나쁘기도 한 것이다. 행복도 불행도 내 마음에서 비롯된다. 만약 내 선택의 결과로 인해 괴로움이 오더라도 덜 흔들리도록 내 마음을 다스리면 된다. 그것이 책임지는 삶이다.


그러니 선택의 기로에서 할 일은 첫째,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하면 된다. 모든 선택에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만 있는 선택은 없다. 그냥 내 마음이 흐르는 대로 선택해보는 것이다. 남의 조언이나 남의 시선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고민하고, 내가 결정해야 비로소 진정한 내 삶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대범하게 결정해봐야 경험이 되고, 공부가 된다. 이혼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혼'에 더 마음이 가서 이혼하기로 결정했다고? 잘했다! 이제 내 선택을 믿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면 된다. 당신의 선택의 경험은 삶의 지혜가 되어 남은 인생에 또 적절하게 쓰일 것이다. 또 당신이 선택과 결과의 과정을 가장 잘 알기에 누군가에게 현명한 조언도 해줄 수 있는 것이다.


선택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혼 후 당신은 독신생활을 즐겨도 되고, 재혼해도 된다. 또 이혼을 선택했더라도 자녀가 있는 경우 3개월, 자녀가 없는 경우 1개월의 이혼 숙려기간이 있어서 그동안 선택을 바꾸어도 된다. 이익과 손해를 따져보는 것은 선택을 위한 당연한 과정이지만, 너무 부담을 갖고 고민하느라 마음이 지치면 적절한 시기에 더 나은 선택을 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선택을 너무 빨리 뒤집는 것은 후회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잊어버렸지만 당신이 선택한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결혼 유지'를 선택했다면, 그것도 참 잘했다! 당신이 그 사람과 결혼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한번 '결혼'을 선택했다면 내 선택을 믿고 지켜봐야 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같이 살려면 내가 적응할 시간도 필요하지만, 내 배우자가 적응할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좋은 선택을 하려면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무엇이 나에게 이익인가?

지금의 배우자와 가족으로 묶여있음으로 해서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     

이익이라는 건 반드시 '얻는 것'만은 아니다. 돈을 벌어서 행복할 수도 있고 돈을 기부해서 행복할 수도 있다.  당장 눈앞의 손해를 보더라도 '주는 것', 때로는 '희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나에게 더 이익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요즘 유튜브에서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알고리즘이 70대 배우 박원숙 님의 유튜브 채널도 종종 띄워주는데, 우연히 그녀가 출연한 오래된 드라마에서 아들 역할을 했던 배우와 이야기 나누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이제 40대가 된 그 배우에게 하는 조언은 성숙하고 지혜로운 선배다웠다.

"갈림길에서 길게 봐야 해. 눈앞의 이익을 좇다가 올바른 길을 헷갈리면 안 돼"


'선택'은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 우리가 매일 하는 것이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운동을 하러 갈까, 말까? 우리는 매일 선택을 연습하고 있다. 먼저 마음 가는 대로, 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으로, 일단 선택했다면 나를 믿고 결과를 지켜보기로, 또한 선택의 기회는 언제든 또 있음을.

당신은 이미 잘 선택하고 있다.

그래도 오늘 나눈 이야기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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