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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가을 Sep 21. 2022

(전)배우자에게 화날 때

스트레스를 받으면 죽는다는 물고기가 있다.

바로 '개복치'라는 놈이다.

포식자가 없어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직진만 해서 부딪혀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

그만큼 민감해서 성체가 되기 전에 많기 죽기 때문에 

다 자란 개복치를 보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이 섬세한 물고기는 마치 사람의 마음을 형상화 해놓은 것 같다.

사람도 어린 개복치처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스로를 통제하기 힘들다.

예민한 성격이 따로 있다고도 하지만

따지고보면 세상에 스트레스 안 받고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들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래도 원만한 사회생활은 해야겠으니 눈치껏 넘기고 견디는 것이다.


사실 화나고 스트레스 받는 일들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널려있다.

그래도 화나게 하는 대상과 소위 '손절'함으로써 안 보고 살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끊어내기가 불가능한 관계도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한 집에 사는 배우자, 

둘째는 아이가 있어 연락할 수밖에 없는 전 배우자가 바로 그들이다.


배우자와 아무리 노력해도 관계개선이 힘들고 결혼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이혼하는 방법이 있다.

물론 이혼이 쉬운 방법은 아니지만, 지금의 관계를 변화시킬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아이가 없다면 이혼하고 안 보면 그만이니 문제해결은 훨씬 간단해진다.


정말 어려운 건 이혼 후 아이를 사이에 둔 전 배우자와의 관계다.

중간에 아이가 있는 경우 아이가 양쪽 집을 오가는 과정에서 상의하거나 전달할 것들이 생기고, 

언제든 전 배우자와 접촉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럴 때 전 배우자와 직접 말하기가 불편해 아이를 시켜 전달하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이를 위한다면 마음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전 배우자와 직접 대화해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말을 전달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아이 나름대로 작은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느라 바쁘고 기억할 것들이 많다. 거기에 부모의 말들을 기억하고 전달하라고 얹어줄 이유가 있을까.

서로 내외하던 이몽룡과 성춘향의 대화를 누가 전달했는가?

누군가의 말을 전달하는 것은 종이나 아랫사람의 역할이다.

  

그러므로 전 배우자가 다행히 부모로서 책임감이 있다면, 아이가 자라는 동안 전 배우자와 반드시 직접 연락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이 두 사람의 관계를 한번 더 할퀼 뿐, 아이의 삶에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전 배우자를 '손절'하거나 거리를 두면 안 되는 것이다. 당신이 싫고 화난다는 이유로 전 배우자를 끊어내면 아이의 삶은 더 힘들어진다. 당신에게는 싫은 사람이지만 당신의 아이에게는 소중한 엄마고, 아빠기 때문이다. 아이의 감정은 결국 당신의 감정으로 이어지기에 당신의 선택이 아이는 물론 당신의 인생까지 괴롭히는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사실 누군가와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반드시 '손실'을 포함한다.

지인과 연락을 끊거나, 스트레스를 주지만 한편으로 유능하거나 좋은 부모라거나 다른 면에서는 이익을 주는 배우자와 이혼하는 것도 인적 네트워크의 손실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화가 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화가 난다고 나는대로 분출하면 평판이 나빠져 사회에서 고립되거나,

상대방의 원한을 사거나, 어떻게든 그만큼의 과보를 받게 된다.

그런가하면 화를 내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할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전 배우자에게 화가 나는 일이 생기더라도 가능한 언쟁을 피하는 편이다.

같이 아이를 키우는 동료와 같은 입장에서 분쟁이 생겨 소통이 원활하지 않게 되면,

그 피해는 중간에서 왔다갔다 하며 지내는 우리 아이가 받게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를 내지 않는 대신 마음 속에 화를 쌓아둔다면

이번에는 내 정신건강에 문제가 나타난다.

정신의 피로는 호르몬을 비정상적으로 분비시키고

결국 내 몸의 건강까지 '화'의 영향을 받게 된다.


즉 화를 내도, 화를 내지 않아도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화'를 처리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지만, 근본적인 방법은

바로 처음부터 '화'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뿌리부터 박멸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화의 뿌리를 박멸하는 것이 가능할까?

가만히 보면, 인간이 고통받는 것은 마치 타고난 숙명인 것만 같다.

인간이란 동물 자체가 '화'의 분신 같은 존재다.

대개 동물들은 배고프면 배고픈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어떻게든 살아가는데

등 따뜻하고 배 불러도 만족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동물이 인간이다.

남과 비교하고, 질투하고, 남에게 화를 못 내면 스스로를 죽이면서까지 화를 푸는 것이 인간이다.

과연 이런 타고난 멘탈 약체에게서 '분노'를 제거할 수 있을까?  


'화'가 나지 않는 원리를 설명한 부처님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당시, 수행자들은 오직 수행에만 정진하기 위해 걸식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평소처럼 어느 집 앞에서 걸식을 하려는데, 집주인이 나와 부처님께 삿대질을 하며 욕을 퍼부었다.

"멀쩡한 몸으로 구걸을 하느냐? 네 힘으로 일해서 먹고 살아라. 나는 절대 음식을 주지 않을 것이다"

집주인이 글로 쓸 수 없는 거친 욕을 하는데도 부처님은 빙긋이 웃더니 그에게 물었다.

“집에 가끔 손님이 오십니까?”

“그렇다”     

“손님이 선물을 갖고 오기도 합니까?”

“그렇다”     

“만약 그 손님이 준 선물을 받지 않으면 그 선물은 누구의 것입니까?”

“선물을 가져온 손님의 것이다”

“그렇군요. 그럼 당신이 나를 욕했는데 내가 그 욕을 받지 않으면 그 욕은 누구의 것입니까?”     

그 순간 깨달음을 얻은 집주인은 부처님께 용서를 빌고 극진히 식사를 대접했다는 이야기다.


이 일화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남이 주는 선물을 받지 않는 것',

이것 내 안에 화의 씨앗을 뿌리지 않는 원리가 아닐까?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 나를 좌절시키는 돈, 나를 미치게 하는 배우자 그리고 전 배우자,

이런 원인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하지만

내 손에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피나는 노력에 따라 가능할지도 모른다.


개복치는 어릴 때 스트레스를 받으면 쉽게 죽지만, 막상 성체로 성장하면 천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오히려 수명이 20년쯤 되며 반려동물로 많이 키우는 개나 고양이보다 더 길다. 

잘 죽는다고 하니 덩치가 조그마할 것 같지만,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성체가 되면 길이 4m, 무게 2톤에 육박하는 대형 어류가 되어 겁 없이 당당하게 바다를 누비고 다닌다.


우리는 어린 개복치와 같이 약하지만, 또 거대한 성체가 될 가능성을 품은 존재다.

그 가능성을 깨우기 위해 '선물을 받지 않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화를 내지 않고, 또한 화가 나지 않음으로써, 남에게도 나에게도 이득을 주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 선택들이 쌓여 세상의 증오를 덜지는 못해도 더하지 않는 삶, 

심을 더 부리면 이번 생에서 원수가 될 수도 있었던 배우자나 전 배우자와의 인연까지 바로잡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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