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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가을 Jun 24. 2022

어린 아이가 있다면

30대 중반 전후에 결혼한 내 친구들은 대부분 저학년 초등생이나 미취학아동들을 키우고 있다.

한 때는 소녀였던 우리가 나이를 먹어 성인이 되고 임신, 출산, 육아를 차례로 겪게 됐다.

엄마가 되는 일은 처음이라 낯설고 두려우면서도, 잘해야 한다는 욕심이 나는 과정이다.

그러나 정작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는

"애 키우기 너무 힘들다"

내 자식을 키우면 마냥 행복할줄 알았겠지만, 정작 어린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육아에 매여 힘들고 지친다고 하소연한다. 어린 갓난쟁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집안에 갇혀 아기를 먹이고 입히는 일만 하는 암컷 짐승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5kg도 안 되는 아이지만 하루종일 안고 있다보면 허리와 팔목도 고장나고 체력도 떨어지며, 마음껏 멋을 부리고 자유롭게 다니던 시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을 것이다. 그 옆의 아빠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2시간 마다 울어대는 신생아를 먹이고 목욕시키는 것은 잠을 자야 살 수 있는 인간이 혼자 해낼 수 없는 일이니까. 육아휴직을 내지 못한 아빠가 낮에 아무리 바쁘게 일하더라도 회사에서 돌아오면 엄마를 쉬게 하고 아이를 양육해야 한다.


조금 더 크면 아이들은 완충된 배터리처럼 에너지가 넘쳐서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늘, 때로는 잠 잘 때조차 안전한지 살펴야 한다. 부모로서 이 조그만 '에너자이저'와 같이 뛰고 놀아줘야 하며, 동시에 청소와 요리 등 각종 집안일과 회사일까지 해내야 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 육아가 좀더 수월해질까? 그렇지 않다. 많은 워킹맘들이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는 시기가 바로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다. 학교에 불려갈 일도 많고, 아이를 위해 챙겨줄 것도 많다. 아이가 혼자 다닐 수 있기 전까지는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에 데리러 오기도 해야 한다.


중학생이 되면 이제야 좀 편해지지 않냐고? 글쎄, 다른 의미로 쉽지 않다. 오히려 난이도 레벨은 더 상승한다. 아이가 어릴 때는 주로 '체력'을 써야했다면,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를 위해서는 '머리'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사춘기 아이의 뇌는 호르몬의 변화로 폭발적 변화를 겪고, 아이들은 이 뇌의 변화로 인해 속마음과 달리 감정조절을 못하고 짜증을 내거나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게 된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민감하게 지켜보며 특별한 문제는 없는지 체크하고, 때로는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감정을 다독여주어야 하며, 공부나 친구문제로 고민하는 아이를 위해 적절한 조언도 해주어야 한다. 부모보다 더 똑똑해진 아이들을 책임감 있게 키우려는 노력은 결국 부모 자신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말,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을 해주기 위해 부모는 더 많이 공부하고 더 깊이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양육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체력과 정신력이 골고루 소모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아이를 가까이하고 함께한 시간들이 축적될수록

애정은 더 쌓이고 그 귀여움과 순진함에 반하고

어느순간 '모성애', '부성애'라는 감정이 폭발해 당신의 온 세상을 가득 채울 때가 올 것이다.


아이라는 소중한 존재 옆에서 당신은 부모가 되기 전 알지 못했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아이는 마치 우주를 바라보듯 당신을 쳐다보고 온전히 의존한다.

그 아이에게 당신은 어떤 의심과 계산 없이 마음껏 사랑을 퍼주어도 된다.

아이를 키우며 경이로운 감탄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그 중 한 순간은, 누군가와 사귈 때 얼마나 친밀감을 나눌지 머릿속으로 계산하던 기존의 관계방식을

아이 앞에서는 완전히 버려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세상의 또 어떤 존재와 이토록 순수하고 편안한 교류를 할 수 있을까?


어릴 적 어버이날이면 '낳으시고 기르신 어버이 은혜'라는 가사의 노래를 불렀는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자기를 키워준 부모에 대해 고마워하면 좋고, 아니면 마는 것이다.

낳기로 결정한 것은 아이가 아닌 부모의 선택이었고, 부모는 아이를 키우며 행복했을 테니까.


물론 아이를 키우는 일은 힘들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어렵게 번 돈으로 아이를 입히고 먹이고 가르쳐야 한다.

퇴근 후 집에서도 온전히 쉴 수 없다. 내 시간과 노동력의 부단한 투입이 필요하다.

그럴때 “힘들다” 하며 아이를 키우지 말고, 아이가 조그맣고 가벼운 그 때를 즐겨보면 어떨까?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아이의 시간은 순식간에 흐른다.

곧 당신보다 더 크게 자라버린 아이의 어릴 적 조그만 모습을 그리워하게 될 날이 온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엄마, 나 키울 때 힘들었어?”

하고 질문한 적이 있다.

어버이날이라고 학교에서 부모의 고단함이나

낳아준 고마움 같은 것을 가르치는 모양이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니? 하나도 안 힘들고 엄청 재밌었는데?
네가 너무 귀여워서 엄마가 행복했어.
많은 집 중에 우리집에 와줘서 고마워”



'키울수록 더 예쁘다'는 말이 있다.

아이를 키워보니 맞는 말이다. 갓 엄마와 아빠가 되었을 때 생기는 책임감도 모성애와 부성애라 불릴 수 있겠지만, 아이와 오래 함께할수록 그 감정은 점점 더 깊어지고 한없이 커지는 것 같다. 즉 아이에 대한 사랑은 대부분의 귀한 것들이 으 그렇듯이 시간을 들여 가꾸고 기르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아직 어린 아이를 키우는 당신의 모성애 또는 부성애는 아직 '생성 중'일 수도 있다.


그러니 만약 이혼을 고민 중인데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신중에 신중을 기해 이혼을 결정헸으면 한다.

아이를 키운 지 얼마되지 않은 당신이 아직 아이의 소중함을 뼈에 새기지 못했을까 염려되어 하는 말이다.

물론 부모에게 있어 아이란 나 자신보다 더 아껴주고 싶은 신비한 존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히 안다고 할 수 없다.


이혼과정에서 당신의 아이에 대한 양육권을 잃거나, 한 달에 두세 번만 면접할 수 있다고 상상해보라.

자식과의 헤어짐은 당신이 겪은 어떤 이별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상실감을 줄 것이다.

또 당신이 아기가 되었다고 상상해보라.

세상의 모든 아기는 엄마와 아빠 곁에서 사랑받고 싶어 한다.

모든 새끼동물이 어미의 양육을 받고 자라듯이.


아이는 밥만 주면 되는 강아지가 아니다.

할머니나 고모나 이모, 베이비시터는 채워주지 못하는 충족감이 있다.

부모와 떨어지는 것은 아이에게도 우주가 흔들리는 아픔인 것이다.

그러니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었다면 그 역할은 당신이 남자 또는 여자라는 것보다 우선해야 한다.

아이는 부족한 당신을 '부모'라며 찾아준 손님이고,

신이 잠시 맡겨둔 선물 같은 존재다.

이제 당신은 남자와 여자이기 전에 '부모'다.


'내 인생의 나의 것'

'애 딸리고 이혼하면 재혼하기 힘들다'

따위 남들이 조언이라며 내뱉는 헛소리는 귀 밖으로 털어내길 바란다.

자식이 먼저다.

삭막한 세상에 핏덩이를 뚝 던져놓은 건 당신이니까.


그러니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끝의 끝의 끝의 끝까지 이혼을 심사숙고했으면 한다.

내가 그러지 못해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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