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사체처리부 -하수> 고수 >중수-

9화 - 하수> 고수> 중수 -

by 융갱


주짓수 도장의 저녁 7시 수업. 직장인들과 중고등학생까지 가장 많은 인원이 등록하는 시간이다. 황금 같은 저녁시간을 쪼개서라도 주짓수를 배우려는 열의가 있는 만큼 저녁 7시 반 관원들은 진심으로 강해지고 싶은 사람들이다. 누군가를 제압하기 위해, 자기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자기 안의 모호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예외가 있다면 나라에서 빈곤층에게 주는 문화사랑카드를 쓰려고 운동 삼아 등록한 김후성 정도일까.

도장에 도착한 후성은 탈의실에서 도복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이미 도복으로 갈아입고 스트레칭과 버피테스트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스무 명의 관원들 중 초급자용 흰 띠를 허리에 맨 유일한 사람은 김후성이다.

그 위의 단계인 흰 띠에 검은 줄 하나, ‘1그랄’ 띠를 매고 코너에서 발목을 돌리고 있는 건 이설윤. 그리고 색색의 띠를 매고 ‘뚜드득’ 관절 꺾는 소리를 내며 몸을 푸는 ‘중수’들. 마지막으로 15년 이상 주짓수를 해야 겨우 받을 수 있다는 ‘고수’의 상징, 검은 띠를 맨 두 사람은 이들의 스승인 관장과 코치다.

“자, 시작합시다!”

도장 구석구석에서 몸을 풀던 관원들이 가운데로 모였다. 관장이 출석한 관원들의 머릿수를 세기 시작했다.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스물, 스물 하나? 어? 누가 더 왔지?”

관장은 고개를 휘휘 돌리며 도장을 가득 채운 관원들을 둘러보았다. 관장의 시선은 곧 후성의 얼굴 앞에서 멈췄다. 관원들의 시선도 덩달아 후성을 향했다.

“아! 후성 씨, 언제 왔어요?”

“아...... 저 아까부터 와 있었는데요”

관장이 알겠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때 관원들의 뒤에서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에서 자세를 봐주는 코치였다.

“우리 후성 씨가 존재감이 없어요. 있어도 없는 듯, 없어도 있는 듯”

농담조로 던지는 코치의 말에 관원들이 소리 내어 웃었다. 후성도 따라 웃었다.

‘다들 웃네? 나도 웃어야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후성은 자기의 마음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생각했다. 남들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그들의 의견에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 당연했다. 그건 어릴 적부터 몸에, 그리고 영혼에 밴 습관이었다.

그래서일까, 어른이 된 후 만난 사람들은 후성을 ‘착한 사람’이라 말하곤 했다. 하지만 학창시절 ‘찐따’라는 말만 들어온 후성에게는 그런 칭찬이 늘 어색하기만 했다.

“코치님, 돋보기안경 쓰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벌써 노안 올 나이신가?”

웃음이 잦아들 때쯤 다시 관원들을 웃게 한 낭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설윤이었다. 이 도장에 다니는 많은 남자들이 나이와 기혼 여부를 불문하고 마음속에 몰래 품고 있는 매력적인 여자. 머릿속으로는 ‘이러면 안 돼’ 하면서.

코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글방글 웃는 이설윤을 빤히 쳐다보았다. 코치의 가까이에 있던 몇몇의 관원들은 코치가 방금 입모양으로 한 말이 무엇인지 추측해보고 있었다.

‘감히’

코치의 소리 없는 말을 이해한 관원들은 싸늘한 분위기에 괜히 천장이나 바닥을 노려보았다. 어색해진 공기를 깬 건 관장이었다.

“오늘은 전원 출석이네요. 저녁 반 수업 분위기 아주 좋습니다.

자, 오늘 연습은 ‘깃초크’부터 하겠습니다”

주짓수는 2명이 짝을 이루어 기술을 연습하고, 기술이 몸에 익으면 스파링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관원들은 각각 옆자리에 있는 사람과 짝을 지었다.

스물한 명 중 남은 한 사람은 김후성. 강해지기 위해 주짓수를 배우는 저녁 7시 반 관원들은 실력 차가 많이 나는 풋내기와 짝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결국 후성의 수준에 맞춰 연습 상대가 되어줄 짝은 코치로 정해졌다.

관장이 가장 앞에 있던 관원에게 다가가 먼저 시범을 보였다.

“주짓수에서 제일 기본적인 초크죠. 유도에서는 십자조르기라고 부릅니다. 먼저 오른손으로 상대편의 오른쪽 도복 깃을 잡고, 왼손을 크로스해서 상대편 왼쪽 도복 깃을 잡습니다. 자, 보세요. 이렇게”

누운 자세로 위쪽 포지션의 관원에게 기술을 걸던 관장이 상대방의 목 양쪽을 손으로 짚어보였다.

“상대편 목의 오전 9시, 그리고 오후 3시 방향에 경동맥이 있습니다. 정확히 이 위치에 힘이 들어가야 돼요”

관장은 그 자세에서 갑자기 양 손목을 비틀더니 자기의 가슴 방향으로 상대편의 옷깃을 살짝 잡아당겼다.

“이렇게 잡아당기면 옷깃이 상대방의 경동맥을 조르면서 머리로 통하는 피를 차단하게 됩니다. 정확히 경동맥 위치를 조르면 상대방은 아무 고통도 못 느끼고 편안하게 기절하게 돼요”

편안하게 기절한다는 말에 관원들이 걱정 반 섞인 웃음을 지었다. 성인반에서 가장 어린 중학생 관원이 질문했다.

“관장님, 기절한 줄 모르고 계속 조르면 어떻게 돼요?”

“뭘 어떻게 돼? 그대로 저승 가는 거지”

“관장님도요?”

“무조건!”

관장이 고개를 들고 관원들을 보며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기술이 걸리는 쪽은 경동맥이 압박되는 느낌이 오면 바로 탭을 쳐서 중지시켜야 돼요.

살인사건 나면 우리 도장 문 닫아야 하니까, 다들 조심하고. 시작!”

둘 씩 짝을 이룬 관원들이 연습을 시작했다. 한 명은 누운 자세로 ‘깃초크’기술을 걸고, 다른 한 명은 누운 사람의 무릎 사이에 들어가 위쪽 포지션에 자리를 잡는다.

후성은 저도 모르게 이설윤을 흘끗 쳐다봤다. 이설윤은 기술을 거는 포지션으로, 바닥에 누워 여자아이처럼 곱상하게 생긴 고등학생 남자아이의 옷깃을 잡고 있었다.

‘다행이다’

후성은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도 시커먼 성인 남자는 아니네’

“후성 씨, 뭐해? 얼른 들어와요”

코치가 누운 자세로 후성을 부르고 있었다. 코치가 이리 오라며 흔드는 손가락을 보니 술집에서 자신을 부르던 새파란 놈의 손가락질이 떠올랐다. 안도감은 사라지고 불쾌감이 슬며시 올라왔다.

‘왜지? 코치님은 그놈들과 다른 사람인데’

늘 자기의 감정을 뒷전으로 미루는 습관은 후성 스스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왜 느끼는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감정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누군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떤 일에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도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후성에게 삶이란 건 막막한 안개 속을 걷는 일만 같았다. 뿌연 안개 속에서 오직 희솔이만 명확하게 보였다.

“네네!”

하지만 대답은 늘 자동으로 나온다.

‘내가 깃초크에 걸리는 포지션이네’

후성은 기술을 가까이서 차근차근 볼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코치의 무릎 사이로 들어갔다. 코치가 손목을 크로스해 후성이 입고 있는 도복의 옷깃을 쥐었다. 그리고 기술을 거는 순서대로 손목을 한번 비틀어 손등이 후성의 옷깃에 닿게 한 후, 다음으로 두 팔을 자신을 향해 잡아당겼다. 옷깃의 품이 좁아지며 후성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켁, 목......목 아파요”

후성이 탭을 치며 쉰 목소리로 코치에게 말했다.

“아파요?”

코치가 손목의 위치를 능숙하게 바꾸며 다시 후성의 목을 조였다.

“이건?”

후성의 목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케케켁, 아, 아파요”

“내가 잘 못 했나? 음, 다시 걸어볼게”

코치는 손목의 위치를 또 다시 바꾸며 아직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후성의 옷깃을 꽉 쥐었다. 이번에는 경동맥을 제대로 짚은 걸까. 후성은 마치 코치에게 안기는 듯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스르르 눈이 감기기 직전, 가늘어진 시야 안으로 소리 없이 빙그레 웃는 코치의 얼굴이 들어왔다. 박 씨 아저씨의 웃음과 꽤 닮은.

도장 곳곳에서 관원들이 손바닥으로 바닥을 치는 ‘탭’소리가 들려왔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드니 기술 거는 것을 멈추라는 제스처다. 그런데 후성과 코치가 연습하는 자리에서만 탭 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심코 시선을 돌리다 후성의 새빨개진 얼굴을 본 관장이 코치에게 호통 쳤다.

“야! 그만해!!”

관장의 다급한 목소리에 관원들의 시선이 후성과 코치에게 집중됐다. 그때였다. 코치의 앞에 축 늘어져있던 후성의 몸이 탄성력 좋은 스프링처럼 반대편으로 튕겨나갔다. 강한 반동에 크로스된 코치의 손목이 맥없이 풀리며 후성의 목도 깃초크에서 풀려났다.

동시에 후성의 양손은 도리어 코치의 옷깃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이번에는 코치의 목이 조이기 시작했다. 억지로 후성의 손을 떼 내려하던 코치는 후성이 건 기술을 풀지도, 탭을 치지도 못한 채 양손을 힘없이 떨구었다.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야! 그만하라니까?”

관장이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다. 과연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관장도 헷갈리는 듯 이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죽다 살아난 것처럼 벌떡 일어나 강하게 기술을 걸고 있는 후성과 반대로 기절한 입장이 된 코치 중, 누구에게 멈추라고 해야 할지 관원들도 긴가민가했다.

“그만! 그만!”

관장의 호통에도 후성은 손을 풀지 않았다. 관장이 다가가 후성의 손을 풀려고 했지만 후성의 깃초크는 사슬처럼 단단했고 풀릴 기미도 없었다. 옆에서 보던 관원들이 다가와 관장을 도우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조금 떨어져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설윤이 갑자기 뛰어와 후성의 턱 밑으로 낮고 강하게 ‘회축’을 날렸다. 갑자기 턱을 가격당한 후성의 목이 훅 꺾이며 뒤로 젖혀졌다. 동시에 사슬처럼 꼬여있던 양손이 탁 풀렸다. 후성에게서 풀려난 코치의 몸은 무거운 고깃덩이처럼 툭,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놀란 관장이 쓰러진 코치를 바로 눕히고는 두 손으로 가슴부위를 머리 방향으로 쓸어올리기 시작했다. 수차례 반복한 끝에 코치가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관장은 그제야 숨을 돌리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야, 니들 때문에 도장 문 닫을 뻔 했잖아!”

관원들도 덩달아 숨을 돌리며 깨어난 코치를 부축했다. 이들을 구경하던 관원들 중, 이 도장에 가장 오래 다닌 ‘중수’급 아저씨가 옆에 서서 함께 구경하는 이에게 말을 걸었다.

“둘 중에 누가 더 잘못한 거 같아요? 코치, 아니면 후성 씨?”

“예? 제가 왜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눈으로 중수 아저씨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건 바로 후성이었다.

“깜짝이야! 언제부터 서 있었대?”

중수 아저씨가 후성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존재감이 없긴 하구만. 몸은 괜찮아요?”

“아, 제가 좀 부었죠? 넘어졌거든요”

후성이 이마의 흉터를 문지르며 멋쩍게 대답했다. 중수 아저씨는 어디 모자란 놈 아닌가 하는 눈으로 후성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코치님은 어쩌다가 기절하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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