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 겁 먹은 개 -
‘뭐야, 5만 원짜리잖아’
근처 편의점에서 담배 좀 사주고 5만 원이라니?
머릿속으로 괴물사체처리부의 시급을 대강 계산해보니 더더욱 혹할만한 조건이다.
그래도, 새파랗게 어려보이는 애들한테 돈을 받고 담배를 사줘도 되는 걸까? 당장 저 여자애만 봐도 희솔이 또래로 보이는데. 설마 미성년자는 아니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5만 원짜리 지폐를 덥석덥석 줄 수 있는 걸까? 희솔이가 한 달에 쓰는 용돈이 5만 원을 넘지 않는데.
후성은 늘 돈이 필요했다. 혼자라면 괴물사체처리부 창고에서라도 지낼 수 있겠지만, 후성에게는 늦둥이 동생 희솔이가 있었다. 아빠는 생사도 모르고, 엄마는 요양원에서 지낸 지 오래다. 그러니 후성이 어린 희솔이를 책임지고 돌봐야했다.
그러려면 둘이서 지낼 수 있는 곰팡이 슬지 않고 벌레가 나오지 않는 집이 필요하고, 희솔이가 또래 아이들처럼 지낼 수 있도록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책과 학용품을 사줘야 한다. 희솔이는 공부를 곧잘 하니 좋은 대학도 갈 테고, 그때를 대비해 학비도 모아야겠지. 이 모든 것에는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후성은 늘 돈에 쪼들렸다.
5만 원이면 월세의 10퍼센트.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담배를 사줄 것이다. 이깟 존심 좀 버리면 어때? 당장 먹고사는 게 급한데. 생계형 인간이라면 누구나 남의 눈치도 좀 보고 자존심도 적당히 포기하며 살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네네, 말보로, 던힐, 에쎄 맞죠?”
“잠깐!”
처음 손가락을 구부려 후성을 부른 남자가 후성의 팔을 확 잡아챘다. 후성의 손에 들려있던 5만 원짜리 지폐가 순식간에 남자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건 담배 사온 다음에”
남자는 다시 지갑에서 꺼낸 2만 원을 흔들었다. 찐따의 습성에 따르지 않기 위해 힘주어 옆구리에 붙여둔 후성의 두 손이 스르르 떨어져 학교 일진들에게 그랬듯 공손히 돈을 받았다. 담배를 사기 위해 편의점으로 걸어가는 후성의 등 뒤로 그들의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가랑비처럼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리고, 30분 후......
‘백구를 닮은 구름이네’
후성은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술 취한 사람들이 담배를 피거나 노상 방뇨할 때나 숨어드는 유흥가 뒷골목 길바닥에 누운 채. 대낮이지만 햇볕도 들지 못할 만큼 좁고 그늘진 뒷골목에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건 통통한 쥐들뿐이다.
“거지새끼야, 꼭 신고해라”
놈들 중 하나가 쓰러진 후성의 얼굴에 침을 뱉고는 이 말을 남기고 마지막으로 떠났다.
‘아니, 그럴 생각도 없었는데’
폭력이 문제가 되는 곳은 밝은 곳이다. 네놈이나 나 같은 피라미드 바닥의 ‘을’들이 모인 세상에서 폭력은 일상이니까. 유흥가와 사창가가 번듯하게 장사하는 서울에서 가장 집값이 저렴한 동네에서 이런 일쯤은 사소한 거니까.
‘오늘은 하늘을 두 번이나 보네’
평소엔 하늘을 볼 겨를이 없었지.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빨래하고 밥 짓고, 잠자고, 다시 출근하고, 그 뿐. 그런데 오늘은 두 번이나 하늘을 올려다보네. 오전에 화단에 드러누워서 한 번, 그리고 지금 또 한 번.
흘러가는 흰 구름을 멍하니 쫓아가는 후성의 눈동자는 빨갛게 핏줄이 터져있었다. 눈꺼풀과 양 볼은 녹색과 보라색으로 퉁퉁 불룩하게 부풀어 올랐다.
‘죽겠다, 아프네, 엄청’
후성의 앞머리를 흔들던 습한 바람이 이마에서 관자놀이로 흐르는 피를 식혀주었다. 화끈거리는 통증이 조금 가라앉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후성은 토할 것 같은 구역감에 몸을 웅크리며 뱃가죽을 쥐었다. 조금 전 두꺼운 워커를 신은 놈이 내 배를 걷어찼었지. 어딘가 내장이 터진 건 아닐까. 병원비는 어떡하지? 난 보험도 안 들었는데.
[삐용삐용 삐용삐용......]
골목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더니 점점 멀어져갔다. 실컷 두들겨 맞고 나니 이제야 경찰이 순찰을 돌기 시작하나보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요즘 경찰들에겐 치안보다 괴물 사건이 더 중요할 테니.
그놈들에게 뒷골목으로 끌려와 맞은 이유는 담배를 사다준 수고비 5만 원을 달라고 한 탓이다. 그러니까 내 탓이다. 애초에 고작 담배 세 갑을 사다주고 5만 원을 받는 건 시급 1만 원짜리 인생의 노동법에 어긋나니까. 내가 욕심을 부려서 그런 거다. 다 내 탓이다.
나를 때린 놈들을 나쁜 놈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겪은 인간들은 다 그랬다. 필요하다면 서슴없이 서로의 등을 치는 세계, 이 곳은 약육강식의 세계니까. 힘이든 기세든 재력이든 나보다 더 센 놈의 말과 주먹이 옳다.
다만 신경 쓰이는 건 찝찝하게 남아버린 일말의 죄책감. 그 자식들이 미성년자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담배를 사다준 것이 영 마음에 걸린다. 정말 희솔이 또래 애들이라면 아직 어른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이인데. 부모의 보호를 못 받는 애들이겠지. 정말로 나는 두들겨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놈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나를 때릴 때마다 입버릇처럼 되풀이하던 아빠의 말처럼.
후성은 통증을 잊으려 노력하며 곰팡이 핀 시멘트벽을 붙잡고 겨우 일어섰다. 병원에 가볼까, 약국에서 약을 살까? 아니, 지금은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 너무 피곤해. 너무너무. 정신을 놓으면 이대로 기절할지도 몰라.
후성은 비척비척 골목을 빠져나왔다. 좁은 골목에서 큰 골목으로 나오니 아직도 햇빛은 환하고 봄날은 화창했다. 유흥가는 한적했고 가게 주인들은 여전히 영업 준비를 하기 바빴다. 등을 잔뜩 오그린 채 비치적거리는 후성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이 골목에 없었다. 야외테이블을 닦던 종업원과 폐지를 줍던 노인이 잠깐 눈길을 주고 제 할 일을 하러갔을 뿐. 빨리 집으로 돌아가 쉴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후성은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내딛었다.
--------------------------------------------------------
“오빠!! 왜 안 깨웠어?!!”
잠결에 희솔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욕실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희솔이가 급하게 머리를 감는 모양이다. 벌써 아침인가?
알람을 못 들을 만큼 푹 잔걸까, 아니면 어제 기절할 듯 아프더니 정말 침대에서 기절한 걸까. 어제 집에 왔을 때 해가 쨍쨍했는데 대체 몇 시간을 잔거야?
‘희솔이 아침 줘야 하는데’
후성은 이불을 걷어차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곧장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계란 두 개를 꺼냈다. 거실 겸 주방에는 금세 계란프라이와 토스트 냄새가 풍기며 온기가 흘렀다. 교복을 입고 나온 희솔이도 식탁에 앉았다.
“늦겠다. 어서 먹어, 우유도 원샷하고”
“응”
희솔이는 웬일로 양이 많다, 먹기 싫다 투정 없이 식빵을 손에 들고 깨물었다.
“오빠”
“왜?”
“연애해?”
“무슨 소리야?”
희솔이의 뜬금없는 말에 후성은 계란프라이를 먹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희솔이가 후성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 나 어제 엄청 맞았지. 얼굴이 많이 부은 건가? 후성은 어제 찢어진 이마의 상처를 뒤늦게나마 가리기 위해 앞머리를 흩뜨렸다. 미리 좀 가리고 나올 걸. 희솔이가 걱정할 텐데.
“아, 어제 일하다가 넘어졌거든. 좀 부었지?”
“부어서 그런 거야? 흠...... 오늘따라 잘생겨 보여. 기분 나쁘게”
“반어법 쓰냐?”
“진짜야. 살이 좀 쪘나? 나 몰래 고기 먹어?”
“참나, 고기 먹고 싶어? 삼겹살?”
희솔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급식에 맨날 고기 나와. 질렸어”
“요새 급식이 그렇게 잘 나와?”
희솔이는 대답 없이 남은 빵과 계란프라이를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오빠”
“응”
“나 학원 그만 다녀도 돼?”
희솔이는 학원이나 과외수업 없이도 늘 반에서 1등을 하는 아이다. 다만 수학은 혼자 공부하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후성은 월급을 쪼개 희솔이를 수학학원에 보내주고 있었다.
“왜?”
“여자애들이 없어. 남자애들뿐이야”
“친구가 없어서 심심해서 그래?”
희솔이는 말없이 우유를 홀짝거렸다.
“상담할 때 보니 원장님이 되게 좋으시던데”
“그래?”
“우리 형편 생각해서 원비도 20프로나 깎아줬어”
“그렇구나”
희솔이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혹시 희솔이가 학원비를 걱정해서 안 다니겠다고 하는 건 아닐까? 후성은 희솔이에게 미안해졌다. 내가 좀더 능력이 있었다면, 국어도 영어도 과학도 학원에 보내줄 수 있었을 텐데. 워낙 똑똑한 녀석이니까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수업은 잘 하지?”
“못하지는 않아”
“그럼 열심히 다녀”
“......응”
희솔이는 먹던 우유컵을 내려놓고는 가방을 멨다.
“학교 다녀올게”
“그래, 재밌게 보내”
후성은 너무 열심히 공부하는 희솔이가 안쓰러웠다. 또래 아이들처럼 예쁜 옷을 사달라거나, 친구들과 놀러간다며 용돈을 달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애어른이 되는 건 나 혼자면 족한데. 너는 그냥 어리고 밝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후성은 집을 나서는 희솔이에게 늘 ‘재밌게 보내라’고 말하곤 했다.
[왈왈왈왈!! 왈왈!! 크르르릉....]
‘또 시작이네’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나마나 옆집 개새끼 소리다. 후성은 급히 식탁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계단을 막고 있는 옆집 개 때문에 희솔이가 내려가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오빠, 무서워”
희솔이가 개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개 옆에는 목줄을 쥐고 있는 옆집 남자가 서 있었지만, 저 개새끼가 짖는 걸 멀뚱히 보고만 있다.
사실 새끼라기엔 덩치가 엄청난 놈이다. 괴물사체를 많이 들어본 후성이 짐작하기엔 30kg 정도는 나갈 것 같다. 희솔이가 인터넷을 찾아보더니 저 견종이 ‘핏불’이라 말해줬다. 투견으로 키워져서 공격성이 큰 데다 흉기나 다름없는 맹견이라며.
이 좁은 집에서 저런 개를 왜 키우는 건지. 주인이 아침저녁으로 개를 산책시키는데, 희솔이의 등하굣길이나 후성의 출퇴근시간과 자주 겹친다. 목줄은 걸었지만 입마개 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탓에 개를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피해 다니기 바빴다. 옆집 남자는 양 팔뚝의 문신을 보란 듯이 소매를 걷어붙이고는 개를 앞세워 돌아다녔다.
‘과연 저 놈이 개를 제지할 수 있을까?’
후성은 옆집 남자의 물렁하고 통통한 체형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운동을 전혀 안 하는 사람 같은데. 만약 개가 누군가를 공격하려고 달려 나가면, 힘이 달려 개의 목줄을 놓아버리지나 않을까. 그래서 더 걱정이었다. 저 맹견이 희솔이를 공격할 수도 있으니.
“저기요! 개 좀 막아주세요”
옆집 남자는 후성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겁 먹은 희솔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후성은 희솔이 앞으로 달려 나가 개를 노려보았다. 주인이 말을 안 들으니 너라도 말 좀 들어라, 하면서.
[으르르르릉......끄응......끅]
어찌 된 일일까? 후성을 보면 잇몸까지 드러내며 더 크게 짖어대던 핏불이 뒷걸음치며 커다란 덩치를 움츠리기 시작했다. 잡아먹을 듯 활짝 열어젖힌 입이 서서히 닫히며 이빨을 숨겼다. 어느새 눈빛은 강아지처럼 순해졌다.
“희솔아, 얼른 내려가, 지각할라”
희솔이가 후성의 등 뒤에서 나와 핏불을 피해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개 주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얌전해진 핏불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