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사체처리부 -찐따의 습성-

7화 - 찐따의 습성 -

by 융갱


‘박 씨 아저씨가 그만뒀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분명 박 씨 아저씨가 괴물에게 죽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그 뿐인가? 괴물의 두 번째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옥상으로 미친 듯 뛰었지. 그리고, 그 다음은? 어떻게 됐더라?

그 전에 문득 이설윤에게 돈을 빌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저, 천 원만 빌릴 수 있을까요? 아니, 2천 원이요......’

하, 2천 원이 뭐냐, 그냥 만 원 빌려달라고 할 걸. 후성은 그녀가 동물병원 계산대에서 꺼내준 2천 원으로 지하철 승차권을 샀다. 그리고 그때서야 늘 그렇듯 한 발 늦게 후회했다.

이설윤은 안 갚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지. 그런데 이설윤의 손에 고작 천 원짜리 지폐 2장을 건네주자니 좀 모양이 빠지는 것 같다. 은행에 들러 신권으로 바꿔서 줄까? 아니, 그게 더 모양 빠지는 거다. 어쨌든 오늘 저녁엔 이설윤에게 빌린 돈을 돌려주러 꼭 주짓수 도장에 가야겠다고, 후성은 생각했다.

출퇴근 시간과 달리 대낮의 지하철은 너무나 한적했다. 문득 눈앞이 환해져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지하철이 터널을 빠져나와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너른 강 너머로 삐죽하게 솟은 롯데월드타워. 그리고 그 아래 펼쳐진 낮에 뜬 별처럼 반짝이는 물비늘.

어이없게도 한강 물비늘의 아름다운 반짝임 속에서 위태롭게 깜빡이는 어둠 속의 불빛이 떠올랐다. 괴물의 꼬리가 바닥을 칠 때 튀어 오르던 스파크. 군데군데 끊어진 피복전선 뭉치들, 녹색 방수페인트가 칠해진 옥상 바닥의 흥건한 물기. 괴물사체처리부 지원팀이 쓸데없이 조명을 켜는 바람에 바닥에 전류가 흐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지.

박 씨 아저씨의 내장을 핥던 괴물의 혓바닥, 사냥감을 추격해오는 괴물을 피해 옥상 끝 난간까지 몰렸던 순간, 찢어진 괴물의 배와 가슴을 비집고 나와 와르르 쏟아지던 기묘한 벌레들, 물웅덩이를 밟자마자 피할 틈도 없이 발끝부터 올라오던 뜨거운 열기와 뼈를 뭉갤 듯한 통증.

숙취처럼 올라오는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여러 장면들이 사진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어쩌면 난 물웅덩이를 밟고 감전됐던 게 아닐까? 그을리고 너덜거리는 옷의 상태를 보면 꼭 감전사고로 화상을 입은 사람의 옷처럼 보인다. 다행히 피부가 평소처럼 허여멀거니 멀쩡한 걸 보면 화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크고 못생긴 벌레가 찢어진 방호복 틈으로 들어와 다리를 문 자국은 여전히 붉은 채 남아있다. 물린 직후보다는 좀 가라앉은 것 같기도 하고, 아직도 좀 근질근질한 것 같기도 한 채로.

어쨌든 거의 기억을 더듬어 온 것 같다. 잘 했어.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아무리 쥐어짜도 더 이상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오피스텔 1층 화단에 엎드려 있었으니 아마도 옥상에서 추락했을 가능성이 높겠지. 그런데, 10층에서 떨어져도 사람이 살 수 있나? 죽기를 바란 건 아니지만, 너무나 살고 싶었지만, 어떻게 내가 살아있지? 정말 영화처럼 조상님이 도와서 화단의 나무가 쿠션이라도 되어 준 건가?

후성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두통을 덜기 위해 머리를 감싸 쥐던 두 손을 눈앞에 활짝 펼쳐보았다. 손가락을 오므렸다 펴보고, 주먹을 쥐었다 펴보고, 중지를 들어 욕도 해보고, 집게손가락을 만들어 손등을 꼬집어도 보았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불거지는 손등의 푸른 핏줄, 내 의지대로 움직여주는 뼈와 관절, 분명 산 사람의 손이 맞다. 다행이야, 희솔아......

‘뭐, 운이 좋았나보지’

간밤부터 겪은 일과 여러 생각으로 피곤해진 후성의 뇌는 이 상황을 빠르고 심플하게 정리했다. 평소 힘겹게 끌고 다니던 이 운 나쁜 몸뚱이가 웬일로 이번만큼은 운이 좋았던 걸로. 인생에 가끔은 이럴 때도 있어야 공평한 거 아닌가?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찝찝함이 남아있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

‘조장은 왜 박 씨 아저씨가 괴물사체처리부를 그만뒀다고 한 걸까?’

오전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었을 때 조장은 오피스텔 청소가 잘 끝났고, 박 씨는 사표를 냈다고 했다. 후성이 기억하는 괴물의 마지막은 히어로의 공격을 받아 HP가 부족하지만 아직 살아있는 야수의 모습이었다. 그 괴물은 어떻게 처리됐을까? 지원팀이 마무리를 잘 한 걸까? 

생각해보면 그동안 괴물사체처리부를 그만둔 동료들은 꽤 많았다. 큰 사고를 치지 않는다면 정년이 보장되는 서울시청 소속의 무기계약직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해선 해고되지 않는다는 큰 장점 때문에 새로 들어오는 신입도 많지만, 그만큼 나가는 동료도 많다.

후성은 괴물사체처리부 동료들과 거의 교류가 없었다. 회사의 지침대로 2인 1조로 다녔지만, 박 씨 아저씨와 함께 일하기 전까지 다른 동료와는 거의 업무에 대한 얘기만 나눴을 뿐이다. 후성은 가능한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으려 했다. 대화를 하다보면 개인적인 얘기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본성이 드러나게 되니까.

후성에게는 울타리가 되어줄 부모도 물려받을 재산도 없었고, 기본적으로 누가 때리면 순순히 맞아주는 패배자의 본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그래서 학창시절 늘 서열 최하위 포지션에 있었던 걸지도. 그게 아니라면 너무 오랫동안 급 낮은 ‘찐따’로 지내서 그에 걸맞은 성격을 갖게 됐을지도 모르겠다고, 후성은 가끔 생각했다.

어른이 되니 오히려 편한 점이 많았다. 체육시간에 혼자 배구를 하지 않아도 되고, 학교식당의 음식쓰레기통 앞 아무도 앉지 않는 그의 지정석에서 식판만 내려다보며 밥을 먹지 않아도 되니까. 굳이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

그래서 동료들이 그만뒀을 때도 그 사정을 자세히 알 수 없었다. 힘들어서 그만두거나, 아파서 혹은 부상을 입어서 쉰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게 다였다. 그런 이야기들을 후성에게 해준 사람조차 조장뿐이었다.

후성은 오늘에야 처음으로 궁금증이 들었다. 괴물사체처리부들은 왜 자주 그만두는 걸까? 한번 들어오면 대부분 정년까지 직행하는 환경미화원들과 달리.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피범벅이 된 사체를 보기 힘들어 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피를 무서워하는 희솔이처럼. 결국 그런 비위 약한 사람들이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걸까?

그렇다면, 피떡이 된 괴물 사체와 사람의 시체를 봐도 아무렇지 않아하던 박 씨 아저씨가 그만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어젯밤 목격한 박 씨 아저씨의 죽음은 그저 착각이었을까?

[다음 역은 노원, 노원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앗, 여기서 1호선으로 환승해야 하는데!

후성은 막 닫히려는 지하철 문틈으로 급하게 몸을 내밀었다. 오늘따라 집으로 가는 길이 유독 멀게 느껴졌다.

--------------------------------------------

지하철 1호선은 영 구리다. 빛바랜 좌석 시트에서 오래된 오줌 냄새가 난다. 게다가 집 근처 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면 훅 다가오는 포장마차의 음식 냄새와 기름 절은 냄새, 유흥가 골목에서 풍기는 비리고 쉰 냄새들.

아무래도 오늘은 이상하다. 꽃가루가 덜 날리는 날인가? 꽃가루 알러지와 비염 증세가 싹 사라진 것처럼 코와 목구멍이 상쾌해졌다. 마치 조향사가 된 것처럼 공기 중에 섞인 온갖 냄새가 하나하나 쪼개져 수십 가지 개별적인 냄새로 느껴진다. 평소 비염 때문에 냄새를 잘 못 맡는 후성으로서는 아주 생소한 느낌이었다.

지름길로 가려면 유흥가 골목을 지나야 한다. 희솔이에게는 유흥가 골목으로 다니지 말고 조금 멀어도 큰 길로 다니라고 얘기해두었다. 하지만 길이란 건 서로 이어지는 거니까, 유흥가를 가로지르지 않더라도 큰 길에서 택시를 타려는 주정뱅이나 문란한 남녀들, 험한 얼굴을 한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후성은 희솔이를 위해서라도 어서 돈을 모아 이 동네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흥가는 밤이 되어야 제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은 밝을 때라 문만 열어두고 개업 준비를 하는 술집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가게 앞에 야외용 테이블을 펼치는 직원과 이미 테이블 하나를 차지한 채 반주를 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수구에 정체모를 구정물을 버리는 가게 주인도. 후성은 훅 끼쳐오는 하수구 냄새와 음식쓰레기 냄새에 저도 모르게 코를 쥐었다.

“헤이, 이리 좀 와봐”

후성이 고개를 돌리자 야외테이블에 둘러앉은 젊은 남녀들 중 그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한 남자가 보였다.

“저요?”

후성은 자기를 향해 검지손가락을 갖다 대며 물었다.

“응, 너”

후성은 저도 모르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꽤나 앳된 얼굴들이었다. 대낮부터 술 마시는 주정뱅이들이라기엔 아직 피부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담배 좀 사와. 난 말보로, 이 새끼는 던힐, 이 년은......넌 뭐 피냐? 아, 에쎄”

남자는 지갑에서 2만 원을 꺼내 후성을 향해 흔들었다. 학교 다닐 때 많이 겪어 본 상황이다. 후성은 습관적으로 두 손을 내밀어 그 돈을 받을 뻔했다. 잠깐잠깐, 난 서른셋이야, 이러면 안 돼!

“저는 직원이 아닙니다”

후성은 손이 습관을 따르지 않도록 힘주어 양옆구리에 붙였다.

“아, 직원이 아니고 청소분가?”

“야이 병신아 그게 아니지, 돈이 모자라서 그러시잖아”

일행 중 예쁘장한 얼굴을 한 여자가 핸드백에서 지폐 1장을 꺼내 주춤하는 후성의 손에 억지로 쥐어주었다. 얼떨결에 후성의 손에는 구겨진 노란 지폐가 들려있었다.

“아저씨, 얼른 갔다 와요”

keyword
이전 06화괴물사체처리부 -도련님과 흙투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