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재회 -
“이봐, 총각. 좀 일어나봐”
경비복을 입은 흰 머리 노인이 뒷짐을 지고 아래를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다. 그의 눈길이 향한 곳은 화단에 엎어져 있는 한 남자였다. 남자는 찢어지고 너덜너덜해져 맨살이 곳곳에 드러난 옷을 입고 있었다. 마치 타다 만 옷처럼 시커멓게 그을린, 한국이 잘 살게 된 요즘엔 서울역에서나 겨우 볼 수 있는 거지가 입을 법한 옷을.
“아이고, 불쌍해라”
“아유, 죽은 거야 자는 거야?”
머릿수건과 하늘색 유니폼을 착용하고 엷은 자주색 립스틱을 바른 노인들이 구경거리를 놓칠세라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옷차림에서 보이다시피 이 오피스텔 건물과 그 옆의 상가건물을 쓸고 닦는 청소부들이다.
“119에 신고부터 해야지?”
청소부 아주머니 중 한 명이 바지춤에서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냈을 때, 화단에 엎어져있던 남자가 천천히 몸을 뒤집었다.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는지 몰라도 밤새 화단에 방치된 사람치고는 아주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을리고 찢어진 옷 사이로 드러난 창백한 피부, 비쩍 마른 뱃가죽 위로 불거진 갈비뼈, 움푹한 볼과 도드라진 광대, 화단의 흙이 묻어 지저분한 머리털, 누가 봐도 김후성이다.
“하암...몇 시지?”
한 손으로 배를 긁으며 천천히 눈을 뜬 후성에게 낯선 풍경과 냄새가 다가왔다. 어릴 적 백구와 놀다가 숨이 차 맨땅에 드러누우면 콧속으로 한껏 들어오던 냄새, 축축한 흙냄새. 어제도 꿈에서 백구가 나왔던 것 같은데, 아직도 꿈속인가?
“깜짝이야, 안 죽었네?”
“어제 술 마셨어?”
“어디 아픈 데는 없고?”
후성의 눈에 호기심과 안쓰러움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자기를 내려다보는 경비 아저씨와 청소부 아주머니들의 얼굴이 들어왔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푹 자고 일어났더니 몸은 아주 개운한데......잠깐! 개운하다고? 요즘 매일 삼교대에 주말 출근까지 해서 아침에 개운한 적이 없었는데?
“어.....죄송한데, 지금 몇 시예요?”
후성은 놀라 급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심한 근시인 후성이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머리맡에 둔 안경을 쓰는 것이다. 후성은 습관적으로 주변을 더듬어 안경을 찾았다. 그러나 한참 더듬어도 안경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몇 시긴, 지금 8시야. 젊은 사람이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지.
밤새 한데서 자면 어떡해?”
“집에서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시겠어?”
노인들 특유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목소리에 잠이 깬 적이 언제였던가? 어릴 적 아빠가 가족을 떠나고 엄마가 요양원에 입원한 후부터 후성은 늘 알람 소리를 듣고 혼자 일어났다. 그런데 오늘은 저 한 무리의 노인들 잔소리에 잠이 깬 것이다.
밤새 떠나있던 이성이 점점 돌아오며 이상함을 감지했을 때, 누군가 그의 등을 부드럽게 밀었다. 그리고 마디가 굵은 주름진 손들이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 후성은 자기도 모르게 노인들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랫동안 물과 바람에 닿아 살이 갈라진 손들이 느릿느릿 다가와 후성의 머리카락과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주었다.
“아, 고맙습니다”
자기의 손을 잡아끌고 아무렇지 않게 흙을 털어주는 노인들의 손길에서 후성은 어색함을 느꼈다. 박 씨의 느끼한 손길이나 조장의 주먹질처럼 거부감이나 경계심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저 몸에 닿은 다른 사람의 손길이 안전하다고 느낀 게 너무 오랜만이라 낯선 건지도 몰랐다.
그나저나 이럴 때가 아니지. 아침 8시라...... 출근 시간에 늦지는 않겠는데, 어제 내가 회사에서 퇴근 코드는 찍었던가? 노인들의 말처럼 왜 이런 데서 자고 있었을까? 아니 그보다, 희솔이는 학교에 안 늦게 갔으려나? 아침잠이 많은 녀석인데.
후성이 여러 가지 생각들로 멍해 있을 때, 멀리서 청소부 아주머니 한 명이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제 몸에 걸친 것과 똑같은 하늘색 유니폼 셔츠가 들려있었다.
“총각, 이거라도 입어. 감기 걸릴라”
후성은 아주머니의 안쓰러운 눈빛을 보고서야 제 옷이 자기의 몸을 거의 가려주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런 얄궂은 옷을 입은 기억이 없는데! 자기의 맨살이 드러난 걸 보고 화들짝 놀란 후성은 급히 아주머니가 건넨 셔츠를 받아 걸쳤다. 옷깃에서 괴물사체처리부에서 사용하는 소독액과 비슷하지만 연한 락스 냄새가 났다.
“내일 세탁해서 돌려드릴게요”
“아이구, 안 빨아도 돼. 아무 때나 갖다 줘.
아님 경비실에 맡겨놔”
“그래 총각, 우리도 일하느라 바빠서 맨날 한 자리에 없어”
끼익!!
후성이 아주머니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검은색 세단 한 대가 화단 앞 길가에 미끄러지듯 나타났다. 덩치 크고 번쩍거리는 고급 세단의 등장에 노인들의 호기심어린 눈길이 쏠렸다. 운전석에서 문을 열고 나온 건 조그만 중년 남자였다. 평균보다 한참 작은 땅딸막한 키에 어디서 한번쯤 봤던가 싶은 평범한 외모를 가진.
자동차 후미로 걸어가는 땅딸보의 머리 높이가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했다. 유심히 보니 그는 다리를 절고 있었다. 그러나 절름발이 치고는 놀라울 만큼 재빠른 걸음으로 길쭉한 세단의 후미를 돌아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문 열린 뒷좌석에서 가장 먼저 나온 건 아침 햇빛에 반사되어 유난히 반짝이는 구두였다. 구두의 주인이자 검은 세단의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땅딸보와 비교되어 더욱 늘씬해 보이는 큰 키에 균형 잡힌 체형을 가진 젊은 남자다. 얇은 터틀넥 니트에 수트를 입었지만 매일 헬스장에 출근 도장을 찍을 것 같은 섬세한 근육질의 몸은 가려지지 않았다. 터틀넥 위로는 테스토스테론이 뿜뿜해 보이는 몸과 대조적으로 지적인 눈빛에 선이 고운 얼굴이 있었다. 지금 당장 후성이 걸치고 있는 너덜너덜한 옷으로 바꿔 입어도 일부러 구멍을 내 멋 부린 명품을 입은 듯 보일 법한 고급스러운 미모다.
‘내가 아는 얼굴이다’
어제 일도 잘 기억나지 않는 후성의 멍한 머리에 번개처럼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 김후성?”
“어, 그래..... 오랜만이다”
후성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그 이름을 불러본 적은 없었다. 후성이 그를 부를 수 있는 공식적인 호칭은 ‘도련님’이었기 때문이다.
‘얘, 도련님이 니 친구니? 도련님이라 불러야지!’
후성의 머릿속에 회장님 댁 고용인이 했던 말이 토씨 하나 빠짐없이 지나갔다. 주말마다 그의 놀이 친구가 되어주는 일을 하며 돈을 벌었을 때, 호칭은 아주 중요한 규칙이었다. 어쩐지 그건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마치 재갈이라도 물린 듯 후성은 여전히 그의 이름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후성아, 이게 얼마만이지? 얼굴은 그대로다? 아니, 좀 말랐나?”
후성을 바라보는 남자의 갈색 눈과 가지런한 입술에 잔잔한 웃음이 떠올랐다. 후성이 꽤 반가운 모양이다.
“김 기사님은 건강하시지?”
후성뿐 아니라 후성의 아버지에게도 저 남자는 ‘도련님’이었다. 후성의 아버지는 도련님의 아버지가 타는 차를 운전하고 항상 차에서 먼저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곤 했다. 마치 저 중년 땅딸보처럼.
그 시절 어린 후성이 보기에도 아버지는 대단히 충직한 노동자였다. 후성의 아버지는 회장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 같았다. 회장님의 애마를 직접 관리한다며 늘 자랑스러워했다. 쉬는 날에도 회장님의 세단을 세차하고 정성스레 광을 냈다. 흰 장갑을 끼고 지문이 묻지 않게 차를 만졌고 운전석에 앉기 전엔 누가 날 좀 보라는 듯 헛기침을 여러 번 하곤 했다.
“김 기사님 참 좋은 분이셨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셔?”
도련님이 재차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지만 후성은 대답할 수 없었다. 후성도 그 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후성의 아버지는 후성이 중학생 때 엄마와 이혼하고 가족을 떠났다. 그 후로 한 번도 만나거나 연락이 닿은 적이 없었다.
“아, 아버지는......”
뭐라고 말을 할까 생각하고 있을 때, 1층 상가 건물에서 한 중년 여자가 늘어난 스프링처럼 튀어나왔다. 치렁치렁한 귀걸이와 목걸이, 큼직한 알이 박힌 반지...... 누런 금붙이를 걸 수 있는 모든 곳에 주렁주렁 매단 여자였다. 손톱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빨강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여자는 곧장 이쪽으로 걸어왔다. 두꺼운 화장에 만면에 짓고 있는 아부 섞인 웃음이 멀리서부터 눈에 띄었다.
“아이고, 전무님, 이리 누추한 곳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누추한 곳이라면 저 도련님에게 한 말일까? 그러나 그 말에 대꾸한 건 도련님 옆의 땅딸보였다.
“건물 보수비용이 얼마나 됩니까? 보험 처리는 된다고 합니까?”
중년 여자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그러나 눈과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바로 어제 괴물이 왔으니까요. 오늘 아침에 괴물 사체 청소가 다 끝났더라고요.
파손이 얼마나 됐는지 제가 먼저 봐야하는데,
사체처리부들이 들어가지도 못하게 막아서 말이죠. 죄송합니다”
땅딸보와 여자를 지켜보던 도련님이 입을 열었다.
“사장님이 죄송할 건 없죠. 괴물 사건은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여자는 황송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혔다.
“아이고, 전무님, 귀한 걸음 해주셨는데, 제가 빨리 알아보고 말씀드릴게요”
“비서님한테 전달해주세요”
도련님은 허리를 연신 굽히는 중년 여자를 뒤로 하고 후성에게 눈길을 돌렸다.
“후성아, 꼭 연락해. 우린 할 얘기가 많잖아”
땅딸보가 자동 기계처럼 자켓의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후성에게 건넸다.
“비서님, 회사로 가요”
땅딸보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이더니 자동차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도련님이 차에 타자 다시 문을 닫고는 절뚝거리며 그의 자리인 운전석으로 향했다. 도련님이 탄 검은 세단은 왔을 때처럼 미끄러지듯 떠났다.
“아이참, 찔릴 뻔 했네?”
화단에서 쓰레기를 줍던 청소부 하나가 빗자루를 가져와 부러진 안경테와 깨진 안경알을 쓸어 담았다. 후성은 땅딸보가 건넨 명함을 보느라 청소부가 자기의 안경을 치우고 있는 걸 보지 못했다. 그리고, 안경 없이 이수호의 얼굴을 알아봤다는 것도 아직 깨닫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