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사체처리부 -도련님과 흙투성이-

6화 -도련님과 흙투성이 -

by 융갱


“전무님, 본사로 갈까요?”

“아뇨. 연구실로 가죠”

방승철은 핸들을 돌려 가평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탔다. 그는 거의 30년째 이수호의 집안에서 일해 온 붙박이 가구 같은 남자였다. 고장 난 것들을 고치고 남들이 손대기 싫어하는 잡일을 하던 그가 지금은 글로벌 제약사의 전무인 이수호의 비서라는 명함을 갖게 됐다. 그건 그가 잘나서가 아니라 순전히 이수호의 결정이었다. 아버지는 한 번도 목마를 태워준 적 없었지만, 이수호가 원할 때마다 목마를 태워주고 좀더 커서는 자전거 타기를 가르쳐준 남자가 바로 방승철이었기 때문이다.

이수호는 방승철에 대해 처음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의심이 많은 이수호로서는 그래도 방승철이 어릴 적부터 봐온 덜 미심쩍은 사람이니 옆에서 수발이나 잘 들어주길 바랐다. 그런데 막상 자리에 앉혀놓고 보니 의외로 방승철은 일머리가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다. 좋게 봐줘야 평범한 수준, 못생긴 편에 가까운 땅딸막하고 둔한 외모와 달리 그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전혀 접해보지 못한 분야의 일들을 빠르게 익혀나갔다. 마치 작고 약삭빨라서 육식동물에게 쉽게 잡히지 않는 초식동물처럼.

배우지 않고도 고장 난 잡동사니를 뚝딱뚝딱 고치던 머리를 달고 있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십수 년이 흐른 후 중년의 방승철은 이수호에게 오른팔 같은 존재가 되었다.

사실은 잠재력이 많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좀더 좋은 환경에서, 절름발이가 아닌 몸으로 태어났다면 더 멀리 날 수 있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방승철 자신은 시간이 갈수록 자기 스스로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몰래 드높아진 자부심의 밑바닥에는 더 큰 성공을 향한 야심이 등을 오그린 채 웅크리고 있음을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야심! 그런 달콤하고 비밀스러운 것은 육식동물 앞에서 드러내면 안 되는 것이다. 방승철은 본능적으로 더 몸을 낮추고 더 겸손하게 굴었다.

“다른 건물은 안 가보셔도 될까요?”

“네, 이제 이 정도 작은 부동산은 최 변호사와 의논해서 알아서 관리해주세요.

보고만 해주세요”

“네,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요즘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부동산 가치가 떨어질 일은 거의 없으니 별로 걱정도 안 되고요. 제 옆에서 많이 배우셨잖아요. 이대로만 하면 돼요”

좀처럼 이수호의 말에 토를 달지 않는 방승철이 대꾸했다.

“전무님께 제가 모르는 업무가 또 있습니까?”

이수호는 늘 그렇듯 무표정으로, 무심한 억양으로 대답했다.

“저도 사생활이 있으니까요”

이수호는 공식적인 자리나 업무상 사교적인 태도를 취해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무감각한 로봇처럼 보였다. 서른 셋, 서투른 것이 더 어울리는 제 나이에 맞지 않게 도무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청년이었다. 그럴 때면 특유의 부드러운 얼굴선과 유순해 보이는 갈색 눈이 냉담한 포커페이스 속으로 비적비적 숨어드는 듯했다.

이수호의 냉랭한 표정과 대조적으로 차창 밖의 풍경은 연핑크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아직 쌀쌀한 초봄에도 일찍 피어난 철모르는 벚꽃들이 서늘한 봄바람에 우수수 떨어졌다. 고운 꽃잎들이 검은 세단 위에 호드득 달라붙었다.

“혹시 요즘 누구 만나시는 분이라도 계십니까?”

오늘따라 말이 많은 방승철이었다. 이수호는 차창 밖에 붙은 연약한 벚꽃 잎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비서님, 제가 비서님께 사생활에 대해 물은 적 있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이수호는 더 말이 없었다. 그는 피곤하다는 듯 등받이에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무방비하게 두 눈을 감은 그 표정이 어쩌면 그의 가장 풍부한 표정일지도 몰랐다.

“죄송합니다, 전무님”

방승철은 룸미러로 이수호의 얼굴을 흘끗 보았다. 이수호는 두 눈을 감은 채 대답이 없었다. 방승철은 엑셀을 더 밟아 속력을 냈다. 세단에 붙어있던 벚꽃 잎들이 바람에 오소소 떨어져나가 아스팔트 도로 위를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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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상가에 부동산 여자 아니야?”

“그러게. 못 알아볼 뻔 했네. 저렇게 웃을 줄도 아는 여자였네”

“별일이야. 그 잘생긴 총각이 누군데 저래?”

화단 앞의 청소부들은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돌아가는 중년 여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수다를 이어갔다.

“웃으니까 이쁘기만 하구먼”

머리가 희끗한 경비원이 중년 여자의 뒷모습을 청소부 아주머니들보다 한참 더 오래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줌마들은 건물주 얼굴도 몰라요? 저 총각이 우리 월급 주는 사람이잖아”

“그래요? 우리가 뭐 건물주 얼굴 볼 일이 있어야지”

“금수저 물었는데 인물까지 훤칠하네. 우리 딸이랑 나이도 딱 맞겠는데”

“어딜 넘봐? 내가 30년만 어렸어도. 호호호호”

이수호, 궁전 같은 집에 살던 나와 같은 나이의 도련님.

‘여전히 잘 살고 있었네’

후성은 어쩐지 허탈해졌다. 돈을 벌 수 있어서, 희솔이를 학원에 보내줄 수 있어서 행복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이수호와는 영원히 다른 세상에서 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성은 저도 모르게 손에 든 이수호의 명함을 꽉 쥐었다. 손톱 밑을 찌를 것처럼 빳빳하던 명함이 휴지처럼 구겨졌다.

“총각, 괜찮아? 병원에 안 가봐도 돼?”

“아, 네, 괜찮아요. 출근해야 해서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서 가봐, 우리도 가자”

청소부들과 경비원이 제 몫의 일을 하러 뿔뿔이 흩어졌다. 후성도 여기서 벗어나 집으로든 회사로든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흙과 검댕이 묻은 두 손을 보니 먼저 씻어야겠고. 옷도 갈아입어야겠고. 무작정 버스정류장이 보이는 상가 앞까지 걸었다. 하지만 바지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교통카드를 찍을 수 있는 지갑도, 스마트폰도 없었다. 새까맣게 타서 만질 때마다 바스러지는 정체모를 덩어리만 잡힐 뿐이었다.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을 때,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후성 씨! 후성 씨!!”

흰 가운을 걸치고 검은 단발머리를 날리며 반쯤 뛰어오고 있는 예쁜 여자, 이설윤이다.

‘내 이름을 기억하네’

후성은 새삼 이런 생각이 들었다.

“후성 씨, 고양이 찾았어요”

이설윤이 품에 안고 있던 검은고양이를 후성을 향해 내밀었다.

“아, 어디서 찾으셨어요?”

진주 목걸이를 한 검은 고양이. 분명 어제 오피스텔에서 꺼내 트럭 안에 넣어 둔 고양이다. 이설윤에게 건네주기 위해. 저 녀석이 어떻게 혼자 밖으로 나온 걸까?

“얘가 병원 밖에서 문을 긁고 있더라고요.

혼자서 찾아왔나 봐요. 영리하기도 하지”

후성은 내가 찾았다는 말을 하려다 관두었다. 사실상 박 씨가 찾았고, 트럭 안에 계속 갇혀있었다면 위험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든 고양이가 밖으로 나와 살아있어서 다행이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죠?”

이설윤이 후성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후성은 볼이 훅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다친 데요? 후성 씨 얘기예요?”

고양이가 다친 건 아닌지 물어본 건데. 후성은 그제야 제 꼴이 꽤나 우습다는 것을 깨달았다. 흙과 검댕이 묻은 손을 보면 얼굴에도 비슷한 것이 묻었을 테고, 바지는 듬성듬성 찢어져 있는 데다 웃옷은 청소부 아주머니가 빌려준 유니폼 셔츠를 걸치고 있으니. 잿더미 위에 넘어진 것처럼 보일 수도.

‘이 꼴로 이수호도 만났겠구나’

후성은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번 생은 왜 자꾸 부끄러운 일들이 생기는 걸까. 역시 나는 운 나쁜 놈인가?

때마침 도착한 버스에서 엄마와 어린 아들이 손을 잡고 내렸다. 엄마는 허리를 굽혀 아들의 귀에 대고 말했지만, 그 목소리는 후성과 이설윤에게 들릴 정도로 컸다.

“너,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 커서 청소나 하고 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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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님, 가평 연구소 도착 5분 전입니다”

뒷좌석에 기대 렘수면 상태에 있던 이수호는 방승철의 목소리에 바로 눈을 떴다. 차 안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두 사람은 하나도 닮지 않은 아버지와 아들처럼 보이기도, 도련님과 머슴처럼 보이기도 했다. 확실한 상하관계 속에서 서로 친밀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해서인지 침묵이 자연스러운 둘이었다.

차창을 비껴가는 초봄의 햇살이 새로 돋아나는 연두빛 이파리처럼 신선하게 다가온다. 일교차가 클 때라 그런지 기온이 점점 올라가며 쌀쌀하던 이른 아침보다 훨씬 포근함이 느껴졌다.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방비서가 침묵을 깨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수호는 방비서와 똑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날씨가 좋은지 나쁜지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기분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구애받을 만큼 말랑하지 않았다. 이수호는 늘 차가운 머리를 유지하는 인간이었다.

이수호는 차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가로수들을 바라보며 아까의 우연한 만남을 떠올렸다. 김후성,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너랑 내가 보통 인연은 아닌가보다, 하면서.

‘김후성, 너는 여전하구나. 시골에서처럼 여전히 흙투성이네“

김후성의 얼굴을 떠올리자 문득 목 부근의 피부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수호는 길쭉하게 뻗은 손가락으로 천천히 목을 감싸 쥐었다. 손끝에 얇은 캐시미어 터틀넥의 보드라운 감촉이 통증과 함께 느껴졌다.

‘왜 이러지?’

김후성을 보자마자 느껴진 묘한 답답함. 그리고 은근하게 시작돼 점점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목의 욱신거림.

이 기분 나쁜 감각이 느껴지는 곳이 그가 매만지고 있는 터틀넥 아래의 오래된 흉터라는 걸 깨달았을 때, 이수호의 입술에서 저도 모르게 가벼운 입바람이 새어나왔다.

“하......”

이수호는 다시 제 목을 쓰다듬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운전에 집중하던 방승철이 고개를 돌려 뒤돌아볼 정도로 큰 웃음이었다.

“뭐가 그리 재밌으십니까?”

“그러게요. 왜 이리 기분이 좋을까요.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이수호는 창문을 열고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유쾌한 듯 불쾌한 듯 분간하기 힘든 거침없는 웃음소리가 차창 밖 윙윙거리는 바람 속으로 한참 동안 스며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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