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벌레에 물리다 -
검고 반드르르한 털, 샛노란 눈. 눈앞의 조그만 생물은 이설윤이 찾던 고양이일 가능성이 높다. 한참 걸려 찾을 줄 알았더니 제 발로 나타나줘서 고맙긴 한데, 한번 덤벼보라는 듯 꼬리를 바짝 올리고 있는 저 녀석을 어떻게 붙잡을까? 슬쩍 조명을 비추니 잔뜩 올라간 꼬리를 더 추켜세우곤 노랗게 빛나는 두 눈으로 후성을 노려본다. 확실히 사람 좋아하는 개냥이는 아닌 듯 하다.
고양이는 입에 쥐를 물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쥐가 아니라 쥐만 한 크기의 큼직한 벌레다. 벌레는 아직 살아있는 듯 고양이에게서 벗어나려고 이리저리 몸부림을 쳐댔다.
“깜둥아, 너 때문에 넘어졌잖아”
후성은 고양이가 자기를 경계해 갑자기 도망가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어린 희솔이를 대하듯 최대한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냐아앙”
후성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고양이가 입을 열었다. 순간 녀석이 물고 있던 벌레가 버둥대며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후성은 재빨리 몸을 일으켜 고양이를 붙잡으려 했으나 다리에 묵직한 통증을 느끼며 그대로 픽 주저앉고 말았다. 계단에서 제대로 넘어진 것 같았다.
녀석은 이때다 싶었는지 날렵한 고양잇과 동물답게 순간이동이라도 하듯 후성의 옆을 스쳐 계단 반대편으로 달아났다. 지금 놓치면 다시 찾기 쉽지 않을 텐데, 빈손으로 가면 이설윤이 실망할 텐데...... 후성은 허탈한 눈빛으로 멀어지는 고양이의 뒤꽁무니를 쫓았다. 녀석이 뛸 때마다 발밑에 번쩍이는 스파크가 튀었다. 바닥에 전류가 흐르는 곳이 있는 모양이다. 다행히 고양이는 감전되거나 다치지 않고 어두운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후성은 문득 따끔한 아픔을 느꼈다. 아픈 곳을 살펴보니 방호복의 발목 부위가 찢어져 있었다. 특수소재라더니 이렇게 쉽게 찢어질 재질이었나? 아마 넘어질 때 바닥과 계단에 흩어진 깨진 유리창 조각에 찢긴 듯하다. 게다가 찢어진 방호복 틈으로 언제 들어왔는지 고양이가 떨어뜨린 벌레가 꾸물거리며 방호복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려 하고 있다.
손바닥만 한 길이에 얼핏 초파리를 닮은 생김새. 하지만 초파리와 달리 큼직큼직한 탓에 선명하게 보이는 머리가슴배가 절지류가 주는 특유의 혐오감을 더하는 외양. 서른셋 살며 처음 보는 벌레인데, 혹시 외래종일까? 후성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발목이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젠장!”
따끔하다 했더니 이 놈의 이빨이 살에 박힌 모양이다.
물린 부위가 벌레 아닌 짐승에게 물린 것처럼 따갑고 아프고 뜨거웠다.
‘하, 여름 산모기보다 더 독한 놈이네...’
후성은 손가락 끝으로 최대한 닿지 않게 벌레를 잡아 올려 허공으로 거칠게 내팽개쳤다.
“앗!”
후성의 눈앞이 갑자기 하얘졌다. 손가락을 모아 눈썹을 가리고 가늘게 눈을 떠보니 박 씨 아저씨가 3층 난간에 기댄 채 조명을 후성의 눈에 대고 장난감 흔들듯 흔들고 있었다. 박 씨 특유의 소리 없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크크, 왜 그러고 자빠져있어?”
후성은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말하려다 박 씨가 자기의 부주의함에 대해 꼽을 주거나 훈수랍시고 궤변을 늘어놓을 것 같아 관두었다.
“왜 내려오셨어요?”
“왜긴, 괴물 놈들을 찾았으니까”
“벌써요?”
“운이 좋았지. 복도에 겁나 흉측한 놈 두 마리가 같이 죽어있더라고”
“몇 층이에요?”
“9층. 장비 들고 올라와. 아참, 트럭에서 내 폰도 좀 가져와”
박 씨는 가장 늦게 괴물사체처리부에 들어왔지만 항상 후성을 후배 대하듯 했다. 박 씨의 나이가 많으니까 그럴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후성은 가끔 뭔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답답함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네, 폰도 갖다드릴게요”
후성은 아픈 다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일어났다. 조금씩 다리를 움직여보니 그럭저럭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퇴근하고 약국에서 파스나 듬뿍 사가야겠다 싶었다.
“어, 이건 뭐야?”
박 씨가 갑자기 허리를 굽혀 발밑을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시발, 존나 징그럽게도 생겼네”
그는 한 쪽 발을 높이 들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쮜이이이익!
“벌레 새끼가 쥐새끼만 해서 그런가 한방에 죽지도 않네?”
박 씨는 몇 번이나 쿵쿵쿵 발을 구르며 바닥을 힘껏 짓이겨댔다. 곤충의 단단한 외골격이 작업용 장화 굽에 조각조각 부서지고 내부의 장기가 물풍선처럼 터지는 소리가 났다. 마치 바퀴벌레들의 왕이 천천히 억울하게 죽어가는 소리처럼.
쮜익!
팡!
쮜이이이익!
쮜익!
찍!
팝!
푸훗......
마지막 소리가 잠잠해지자 박 씨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담뱃불 비벼 끄듯 바닥을 비벼댔다. 벌레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마지막 흔적까지 박멸해버리겠다는 듯이. 바닥에는 납작하고 거뭇한 얼룩만이 남았다.
후성은 자기의 발목을 문 벌레가 죽어가는 모양을 말없이 지켜봤다. 후성은 벌레든 무엇이든 살아있는 것을 죽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죽이기는커녕 괴롭히지도 못했다. 때리거나 죽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맞는 것을 택했다. 어릴 적부터 늘 이유 없이 맞았고, 그래서 그게 훨씬 쉬웠으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자기의 공간에 벌레가 들어오면 그게 무엇이든 먼저 죽이고본다는 걸 알기에 남들에게 굳이 죽이지 말라고 부탁하지는 않았다.
약간의 씁쓸함을 느끼며 장비를 챙기러 로비로 걸어가던 때였다. 다시 머리 위에서 박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후성이, 가는 김에 이것도 좀 버려”
뭘 버리라는 건지 후성이 고개를 들어 3층 난간을 올려다본 동시에 검고 둥근 물체가 그를 향해 추락했다. 후성은 본능적으로 팔을 뻗었지만 그것이 2층 난간에 부딪혀 각도를 틀어 퉁 튕겨나며 떨어진 탓에 자칫하면 놓칠 뻔했다.
뭔지도 모르고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받은 것은 고양이였다. 후성이 놓친 이설윤의 검은 고양이. 이걸 고마워해야 하나?
후성은 고양이가 그의 손에 들어온 것이 기쁜 동시에 박 씨에 대한 당황스러운 감정을 더 크게 느꼈다. 3층에서 살아있는 고양이를 던지다니, 미친 인간인가? 내가 못 받았으면 어쩔 뻔했나?
고양이가 아무리 유연하다지만 다치거나 죽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난간에 부딪혀 튕겨졌는데 어딘가 연약한 데가 부러지지는 않았을까. 품에 안긴 고양이의 따뜻한 몸에서 요동치는 심장의 떨림이 느껴졌다.
그래, 무서웠구나.
녀석은 도망가지 않고 후성의 품을 파고들었다. 후성은 방호복의 지퍼를 열어 고양이를 품 안에 넣고 편히 숨을 쉴 수 있도록 녀석의 머리를 옷깃 밖으로 꺼내주었다.
박 씨가 있던 곳을 올려다보니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고양이를 쓰레기봉투 버리듯 후성에게 던지고 제 할 일을 하러 간 모양이다.
후성은 울컥하는 기분을 누르고 괴물 사체를 넣을 냉동백과 소독액, 소독탄, 그리고 청소 장비들을 챙겼다. 트럭 보조석에서 박 씨의 폰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품 안의 고양이를 꺼내 잠시 쓰다듬어주고는 트럭 운전석에 올려주었다.
"깜둥아, 여기서 좀 기다려. 금방 올 거야"
후성은 무거운 장비 가방을 양쪽 어깨에 메고 한손에는 청소기, 한손에는 밀걸레를 든 채 헉헉거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위로 올라갈수록 아까 계단에서 넘어지며 삐끗한 오른쪽 다리가 점점 더 욱신거려왔다. 숨을 쉴 때마다 안경에 습기가 차 눈앞이 뿌얘졌다. 이놈의 멸치 체력, 저질 체력, 후성은 스스로를 생각하며 혀를 끌끌 찼다. 부족한 나, 뭐 하나 제대로 못하는 나, 병신 같은 놈.
9층까지 겨우 올라왔을 때 후성은 다리가 풀려 무릎을 꿇고 엎어졌다.
“후성이, 왜 이렇게 늦었어?”
박 씨가 어슬렁거리며 후성에게 다가왔다. 박 씨는 네 발 짐승처럼 엎어진 후성의 앞에 쪼그려 앉더니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후성은 자기를 일으켜주려는 박 씨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의 손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 폰 줘”
아! 후성은 당황해서 얼른 손을 회수하고 주머니에서 박 씨의 폰을 꺼내 건네주었다. 박 씨가 자기에게 일어나라고 당겨주려고 손을 내민 줄 알았던 것이 부끄러웠다. 넘어진 사람 일으켜주는 게 의무는 아니잖아? 나는 왜 습관처럼 남에게 기대하는 걸까, 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살펴보니 9층 복도 한복판에 너덜너덜해진 괴물 두 마리가 포개져 있다. 목이 반쯤 잘려나가 뒤로 젖혀져있고 팔다리 관절이 기묘하게 꺾인 채 그들이 흘린 짙은 검보라색 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다행히 가장 눈뜨고 보기 힘든 사람의 시체는 없다.
때맞춰 히어로가 도착해 희생자를 만들지 않고 괴물을 처리한 모양이다. 오늘은 히어로의 의협심이 과했는지 괴물 사체의 꼴이 좀 비위가 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가 있어 안심이고, 동생 희솔이와 사람들이 좀 더 안전하고, 그가 매일 생산한 괴물 사체를 치우며 돈도 벌 수 있으니 후성에게 히어로는 그저 빛이다.
“후성이, 지원팀 부른 거 맞어? 왜 이렇게 안 오지?”
박 씨가 괴물 사체를 넣을 냉동백을 펼치며 물었다. 후성은 괴물사체처리부 앱을 켜 지원팀의 이동 상황을 확인했다. 괴물사체처리부가 사용하는 트럭은 택시처럼 GPS가 내장돼 있어 실시간으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거의 도착했어요. 금방 오겠네요”
“이놈들 딱 봐도 엄청 무겁게 생겼네. 어깨 아파 죽겠는데. 지원팀한테 같이 들게 9층으로 올라오라고 해”
“예”
박 씨와 후성은 먼저 괴물의 주변에 고인 피웅덩이를 닦아낸 다음, 사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거즈에 소독액을 묻혀 사체의 잘리고 찢어진 부위에서 흘러나온 검보라색 피를 닦기 시작했다.
괴물사체처리부 규정에 따르면 괴물 사체는 막 다루거나 함부로 버릴 수 없다. 연구원들이 조사할 수 있도록 가능한 원래의 형태를 잘 보존하고 소독한 상태로 냉동백에 넣어 옮겨야 한다.
괴물의 몸을 닦던 박 씨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후성이”
“예”
“내가 좀 취했나? 이 새끼가 날 째려본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