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인간 서열 최하위군 -
“젠장!!”
느긋한 욕지거리와 함께 치켜뜬 눈꺼풀 위로 따가운 햇살이 쏟아졌다. 기어코 눈을 찌르려 하는 햇살을 피해 후성은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휴대폰 알람이 들리는 걸 보아 아마도 지금은 낮 12시. 다행이 출근시간에 늦지 않게 일어났다.
그래도 그렇지, 이 똑같은 개꿈은 왜 이리도 자주 꾸는 것일까. 요즘 같이 바쁠 땐 숙면을 취해도 피로가 안 풀릴 판에.
후성은 등허리에 손을 댄 채 ‘에고고고’ 추임새를 뱉으며 침대에서 겨우 일어났다. 며칠 전 괴물 사체들을 무리해서 옮긴 탓이다.
지긋지긋한 괴물들. 사람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지만 후성에겐 돈을 벌기 위해 하루 대부분의 시간과 체력을 들여 꼼꼼히 치워야 할 쓰레기다.
아직 덜 깬 잠을 깨우기 위해 후성은 비척비척 화장실로 걸어 들어갔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후성의 모습은 약골에 어딘가 볼품없어 보이는 33살 남자였다.
도수 높은 뿔테 안경, 창백한 흰 피부, 좁은 어깨, 생선뼈처럼 같잖게 도드라진 갈비뼈, 작은 흉통, 그나마 길쭉하지만 비썩 마른 팔과 다리. 여자들 사이에서 ‘멸치’라 불리는 그런 남자.
이건 또 뭐야? 오른쪽 팔뚝에 온통 누런 멍이 들었다. 아, 어제 주짓수 도장에서 제대로 암바에 걸렸었지. 그것도 여자에게. 쳐다만 봐도 심장이 쿵 떨어질 만큼 예쁜 여자에게.
주짓수에 다닌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나라에서 가난한 계층에게 주는 문화사랑카드가 있어서 그걸 쓰려고 집 앞 주짓수 도장에 다니는 중이다.
그 카드로는 먹을 것과 생필품을 살 수 없고 오직 ‘문화생활’을 할 때만 결제할 수 있다. 꽤 그럴듯해 보이는 복지정책 아닌가? 배고픈 빈민층의 문화생활까지 신경써주다니.
후성과 희솔 남매에게 지급된 카드지만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생 희솔이는 공부만 하기에도 바쁘니까, 후성이 이 카드를 몽땅 쓰고 있다.
원래 주짓수 따위를 배우고 싶어서는 아니고, 집 근처에서 유일하게 문화사랑카드로 원비가 결제되는 곳이기 때문에.
삼교대로 일하고 저녁에 주짓수를 가면 솔직히 좀 힘들긴 하다.
주짓수 도장 저녁 8시 타임의 최약체는 바로 후성이다. 중학생을 포함한 남자들은 물론이고, 반년 더 일찍 들어왔다는 여자에게도 매번 지고 있다.
어제도 바로 그 예쁜 여자 ‘이설윤’ 때문에 오른팔에 얼룩덜룩 멍이 든 것이다.
여자와 짝을 이뤄 주짓수를 하는 건 좀 묘하다.
신체를 밀착해서 기술을 거는 싸움이라 뇌 용량의 40프로는 민감한 터치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데 써야 한다. 그러면서 나머지 뇌 용량의 40프로는 주짓수 기술의 동작 순서를 생각하며 실제로 적용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 느껴지는 부드럽고 말캉한 피부와 작은 뼈대의 감촉은 약 19프로......
아아아!
후성은 이설윤 씨의 기술에 걸렸을 때를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팔뚝을 꾹 누르다 별안간 느껴진 통증에 소리를 질렀다. 내가 봐도 참 내가 병신 같다...라고 생각하며 후성은 수도꼭지를 틀고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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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후성이 일하는 괴물사체처리부는 양재동에 있다. 이곳은 원래 양재천 앞의 적십자 건물이었으나 1년 전 서울에 괴물들이 나타난 이후 괴물사체처리부가 사용하게 되었다.
서울 땅을 세로로 나누어 동쪽 구역에서 발생한 괴물 사체는 이곳 괴물사체처리부 동부지사로 옮겨진다.
괴물은 인간처럼 이족보행을 했지만 생김새는 짐승에 가까웠다. 그것들은 강력한 힘과 날카로운 이빨로 사람을 사냥했다. 주식은 인간의 내장이었다.
수많은 블랙박스와 cctv가 그놈들을 찍었지만 최초 발견 장소가 모두 달랐기에 언제 어디서 나타났고 앞으로 어디에 나타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인간 사냥에 대비해야 했다. 경찰차는 수시로 순찰을 돌았고, 특수부대가 국회의원을 경호했다.
부자들은 더 많은 돈을 들여 더 뛰어난 스펙의 경호원을 고용했다. 암거래 시장에서 불법 총기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괴물이 나타난 후, 괴물 사체를 치우는 직업이 생겨났다. 국립과학연구원들의 조언에 따라 사체를 냉동백에 넣고 괴물이 남긴 흔적을 완벽히 소독해야하므로 기존의 환경미화원들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서울시 차원에서 괴물사체처리부를 만들고 현장에서 괴물 쓰레기를 치울 인력을 뽑게 된 것이다.
괴물 사체가 발생하면 밤낮 가리지 않고 처리해야 하기에 괴물사체처리부들은 3교대에 야근이 많다. 대신 똑같이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에 비해 더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
이들은 위험수당이라는 이름으로 환경미화원보다 60만 원 더 많은 월급을 받는다. 아무래도 사체, 그 중에서도 인간을 먹는 괴물의 사체란 것은 쓰레기들 중에서도 좀 더 역겨운 편이니까.
이 직업은 환경미화원들과 마찬가지로 서울시청에 소속된 무기 계약직이라 해고당할 걱정도 거의 없다.
무거운 쓰레기 자루를 양손에 들고 초등학교 운동장을 시간 내에 주파하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지만, 이력서에 몇 줄 쓸 것 없는 맷집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경쟁률이 치열하다.
후성은 자기의 직업을 좋아했다. 매달 꼬박꼬박 월급이 꽂히는 것도 좋았고, 그 월급으로 월세를 내고 희솔이의 학원비를 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식권으로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버거킹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것도.
소심한 성격상 사람을 상대하거나 또래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는 것보다 괴물을 마주하는 것이 좀 더 편하기도 했다. 이미 죽어버린 놈이니까 위험하지도, 쓸데없는 말을 시키지도 않으니!
환승을 2번하고 1시간쯤 지하철에 몸을 맡기면 회사와 가장 가까운 3호선 양재역에 도착한다. 후성은 늦은 점심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버거킹 매장으로 가려면 지하철역을 나와 양재역 사거리를 건너야 한다. 높은 건물이 빼곡한 이 넓은 사거리를 건너기 위해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득그득하다.
후성도 그들 틈에 섞여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릴 때였다. 후성의 옆에 서 있던 여자가 유모차에서 칭얼거리는 아기를 안아 올렸다. 엄마의 품에 안긴 아기는 아기답게 귀여웠다.
요즘 비염이 심해져서 맡지는 못하지만 몸에서 파우더 냄새가 날 것 같은 뽀얗고 예쁜 아기다. 후성은 자기를 빤히 쳐다보며 우는 아기에게 좀 웃어줄까 하다가 아기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관두었다.
그러나 엄마가 등을 토닥거려도 아기가 점점 더 크게 울자, 후성은 아기를 향해 최대한 친절한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바로 그때 후성의 얼굴에 아기의 힘찬 주먹이 날아왔다. 고양이가 냥냥펀치를 날리듯이. 조약돌처럼 조그만 주먹이라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후성은 당황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어머, 죄송해요. 우리 아기가......”
아기 엄마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신호등이 바뀐다. 후성은
“예에, 예에”
고개를 굽신굽신하며 아기와 엄마를 뒤로한 채 재빠르게 신호등을 건넜다.
어떤 인간은 자기보다 서열이 낮다고 판단되는 인간에게 본능적인 지배욕이 발동한다.
후성은 남성호르몬이 폭발하는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낮은 서열의 아이로 학창시절을 보내며 그 사실을 온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아기도 후성이 만만한 인간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본 걸까?
후성이 왠지 모를 수치심을 느끼며 사람들에 섞여 횡단보도를 막 건넜을 때였다.
사람들의 휴대폰에서 긴급재난 문자 사이렌이 동시에 울리며 웅성웅성 불안한 소음이 퍼지기 시작했다.
| (긴급 안전 안내)
서울 중랑구 신내동에서 괴물 2구 출현.
가까운 건물 내로 대피하시고
안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서울특별시청] |
긴급재난 문자를 확인한 사람들은 가장 먼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괴물이 나타난 곳이 여기가 아니구나!
중랑구는 여기서 먼 곳이니까 다행이다!
나는 운 좋은 사람이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후성의 머릿속에도 이런 생각들이 번개처럼 꽂혔다. 양재역 사거리의 사방에는 자기가 믿는 신에게 감사 기도를 올리는 목소리, 누군가를 걱정하며 전화를 거는 목소리들이 부채꼴로 번져갔다.
그때였다. 사거리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대형 전광판 화면이 밝게 바뀌었다.
푸드트럭에서 떡볶이를 팔던 사람도, 어딘가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걷던 사람도 다 같이 멈춰 서서 그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자기에게 익숙한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가 동시에 보고 있는 건 히어로의 모습이 담긴 실시간 생중계 영상이었다. 화면의 하단에는 속보 자막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속보>>
중랑구 신내동 오피스텔에 히어로 출연
전시 상황보다 더 시민의 생명이 위험한 때에 그래도 이 도시가 그럭저럭 치안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남자, 히어로 때문이다.
괴물이 나타나면 가장 먼저 경찰이 출동했고, 운 나쁘게 걸린 사람의 배가 괴물의 발톱에 찢기기 직전 어디선가 히어로가 나타나 괴물의 숨통을 시원하게 끊고 시민을 구한다.
히어로가 괴물에게 맞을 때 사람들도 함께 신음을 흘렸고, 괴물에게 한 방 먹일 때 사람들도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모두가 히어로와 한 편이 되어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히어로가 나타나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그를 촬영하기 위해 공중파부터 종편, 온갖 말단 채널의 언론사 기자들이 빠르게 달려왔다.
인플루언서와 스트리머들은 그보다 더 빨리 쫓아와 그들의 sns와 유튜브에 히어로의 움직임을 앞다투어 생중계했다. 가장 먼저 영상을 올리는 사람에게는 단박에 떼돈을 벌 수 있는, 로또보다 좀 더 확률이 높은 기회가 주어지니까.
어느 샌가부터 사람들은 괴물의 출연보다 히어로의 출연에 더 감흥을 느끼고 있었다.
괴물의 출연이 압도적인 공포감을 준다면, 그것들을 시원하게 때려죽이는 히어로의 모습은 괴물에 대한 공포감을 가볍게 무시해버릴 정도로 엄청난 양의 도파민을 분출시켰다.
온몸의 핏줄을 따라 도파민이 빠르게 도는 동안 사람들은 신나고 행복해졌다.
히어로가 나타나려면 먼저 괴물이 나타나야 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괴물의 출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이 아니라면 어디서든 괴물이 나타나주길 바랐다.
‘그러든지 말든지’
이처럼 히어로에게 열광하는 분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빌딩 전광판도, 스마트폰 액정도 쳐다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바로 후성이다.
사람들이 히어로가 다칠까봐 걱정하거나
때로는 히어로가 괴물의 발톱에 찢기기를 바라는 동안, 후성은 점심을 먹기 위해 태연히 버거킹 매장으로 들어갔다.
이럴 때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면 히어로 중계 영상에 골몰한 직원이 한참 늦게 햄버거를 만들어준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에 후성은 곧장 카운터로 직진했다.
“안녕하세요. 와퍼 세트 하나 주세요”
히어로 영상에 몰입하던 중 갑자기 주문을 받게 된 직원은 후성을 미친놈 보듯 어이없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히어로에게 무관심한 인간이라니, 얼핏 보기에 티 나지 않는 정도의 지적 장애를 가진 건 아닐까 의심하면서.
직원의 따가운 눈총을 등 뒤로 느끼며 후성은 빈 테이블에 앉아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사실 후성은 히어로를 걱정하지 않았다. 히어로는 어차피 이길 테니까.
비록 운 나쁜 누군가가 괴물에 희생당해야 하는 이 세상은 불공평하지만, 히어로가 가진 초월적인 힘은 공평하게 이 세상의 괴물들을 물리칠 거니까.
히어로의 힘은 절대적이니까. 그 과정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으니까.
후성은 히어로에게 무관심한 게 아니라, 누구보다 더 히어로를 믿었다.
왜냐하면 그의 직업이 괴물사체처리부기 때문이다.
후성은 매일 괴물의 사체를 치우며 히어로가 죄 지은 괴물에게 내린 벌을 생생하게 보았다.
히어로가 괴물의 숨통을 끊고 떠나면 본부에서 출동하라는 미션이 내려온다. 처음 본 현장은 끔찍했다. 길이 3미터 가량의 괴물이 마구 베이고 뭉개져있었다.
천장에 튄 괴물의 검은 피가 벽을 타고 바닥으로 흘러내렸고, 그 핏줄기는 내장을 먹히다 만 사람의 시체에서 흘러나온 핏줄기와 만나 작은 연못 같은 피 웅덩이를 이루었다.
현장에 출동한 첫날은 그대로 토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는 피가 토마토주스나 블루베리즙처럼 보인다. 뭐든 자주 보면 적응되는 법이니까.
후성은 매일 히어로에게 당해 곤죽이 된 괴물들을 보았다. 그러니까, 히어로처럼 강한 존재를 조마조마하며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그가 남긴 처벌의 흔적이 사람들에게 민폐나 혐오감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깨끗이 치우고 소독해주면 그만이다.
‘오늘도 맛있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와퍼버거를 씹는 동안 전광판의 화면이 바뀌었다.
히어로를 모델로 세운 남성용 화장품 광고가 나오고 있다. 히어로의 활약이 끝난 모양이다. 히어로의 영상에 집중하던 사람들도 하나 둘 일상으로 돌아간다.
후성은 와퍼버거를 다 먹고 마지막 남은 사이다 한 모금까지 호로록 들이켰다.
전광판에 평소처럼 명품 앰배서더 아이돌들이 알록달록 등장하고 정지 화면처럼 거리에 멈춰있던 사람들이 제 갈 길로 뿔뿔이 흩어지면, 이제 출근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