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핏빛 철쭉 -
괴물의 몸을 닦던 박 씨가 갑자기 후성에게 말을 걸었다.
“후성이”
“예”
“내가 좀 취했나? 이 새끼가 날 째려본 거 같아”
후성은 손가락 다섯 개를 활짝 펴 보였다.
“몇 개로 보여요?”
“다섯 개”
“확실해요?”
“네 개?”
“다섯 개예요”
“쳇, 별로 안 마셨는데”
그래서 뭐 어쩔 건데 하는 눈빛으로 후성을 쳐다보는 박 씨에게서 쪄든 술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지난번 조장에게 박 씨가 취한 채로 일한다고 귀띔한 정직한 동료가 누군지 몰라도, 후성은 이번엔 자기가 얘기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혹시라도 박 씨가 알게 되면 어떻게든 보복할 것 같아 두려워 바로 생각을 접었다.
한참 후성과 함께 괴물을 닦던 박 씨가 손을 멈추고 천천히 일어나더니 허리를 한껏 뒤로 젖히며 말했다.
“난 이제 늙었나봐. 오래 앉는 것도 힘들어”
박 씨는 정말 허리가 아픈 건지 아니면 좀이 쑤시는지 소독액이 담긴 통을 등에 메고 테스트라도 하듯 허공에 뿌려댔다. 연결된 호스를 통해 소독액이 분사되며 생긴 하얀 연무로 후성의 눈앞이 흐려졌다.
“아저씨, 앞이 안 보여요”
박 씨는 후성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복도 반대쪽으로 걸어가며 소독액을 뿌려댔다.
“닦는 건 우리 후성이가 잘 하지? 난 소독 먼저 하고 있을게”
괴물사체처리부의 작업 순서 지침 중 소독은 가장 편한 과정이며 마지막 단계다.
“아저씨, 이거부터 해야죠”
후성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볼멘소리가 나왔다. 게다가 소독액과 소독탄에서 뿜어져 나온 연무 탓에 작업을 계속할 수가 없다. 후성은 연무를 쫓아내려 휘휘 팔을 저어봤지만 결국 포기하고 잠자코 기다리기로 했다. 서서히 연무가 걷혀갈 때쯤 복도 멀리서 박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리필 하나 던져줘”
“던질게요, 받아요”
박 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살균액 리필을 던지자마자 복도의 조명이 도미노처럼 타다닥 켜졌다. 아마도 지원팀이 도착해 조명을 켠 모양이다. 어둑하던 복도가 불시에 환해졌다.
“오, 나이스샷!”
“.......어.......”
“왜? 뭐?”
연무가 천천히 걷히며 복도 끝에서 살균액 리필을 손에 든 박 씨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의 등 뒤에 보이는 길이 2.5미터 가량의 검은 형체도 함께.
“아...아저씨....뒤, 뒤, 뒤, 뒤에......”
연무가 완전히 사라지자 복도의 밝은 조명 아래 근육질의 고동색 표피가 선명하게 번쩍였다.
환공포증을 불러일으킬 만큼 작은 돌기들로 빼곡히 채워진 미끄럽고 반들거리는 표피. 후성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괴물의 그것.
어떻게 된 거지? 괴물사체처리부 앱에서는 분명 ‘사체 2구’만 처리하면 된다고 했는데.
후성은 재빨리 사체 더미를 향해 눈을 돌렸다. 조금 전까지 후성이 열심히 괴물의 피를 닦아내던 그 자리엔 목이 반쯤 잘려나간 사체 1구만 남아있었다.
후성이 놀랄 틈도 없이 복도 끝에서 살아있는 괴물이 움직였다. 박 씨가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길고 날카로운 괴물의 손톱이 박 씨의 등을 꿰뚫고 가슴 앞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괴물의 손톱은 그대로 지퍼를 내리듯 아래로 쭉 내려갔다. 그와 동시에 와르륵 쏟아지는 사람 뱃속의 것들. 박 씨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놀란 표정 그대로 고개를 푹 떨구었다.
괴물이 긴 혓바닥을 내밀어 바닥에 떨어진 뱃속의 붉은 것들을 탐욕스럽게 입에 넣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너무나 가까이서 지켜본 후성은 공포감에 압도되어 그대로 굳어버렸다. 늘 꼼짝없이 죽어있는 모습만 보다가 살아 움직이며 사람의 몸을 탐하는 괴물을 처음으로 보았다. TV 뉴스와 SNS 영상에서 보던 것처럼, 아니 훨씬 더 생생하고 끔찍하게.
도망쳐야 하는 걸 알고 있지만 발바닥에서 뻗친 뿌리가 바닥에 단단히 박힌 것처럼 후성은 꼼짝할 수 없었다. 이대로 라면 후성의 앞길에 놓인 건 죽음뿐이다. 그것도 괴물의 먹이로 마지막 쓰임을 당한 아무 의미 없는 개죽음.
문득 후성의 마음에 희솔이가 떠올랐다. 하나뿐인 내 동생. 한없이 착하고 바르고 야무진 아이. 내가 꼭 아빠처럼 너를 지켜줄 거라고 약속했던 희솔이.
희솔이를 떠올리자 후성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심장이 펌핑한 피가 발끝까지 급속히 뻗어나가며 온몸에 평소보다 훨씬 더 강력한 혈액순환이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후성은 몸이 뜨거워지는 감각과 함께 바닥에 박힌 뿌리의 족쇄에서 풀려났다. 두려움이 사라지자 어디든 갈 수 있을 듯이 몸이 가벼워졌다. 다시는 희솔이의 웃는 얼굴을 못 보는 것보다 더 큰 두려움은 없었다. 후성은 여기서 반드시 살아나가야 한다는 처절한 생존본능을 깊숙이 느꼈다.
후성은 괴물의 눈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더 신중히 허리를 굽혀 바닥에 흩어진 깨진 유리조각들 중 손에 잡히는 것을 단단히 쥐었다. 여기는 오피스텔 9층. 문이 열린 가장 가까운 호실로 뛰어가 문을 잠가봐야 괴물이 쫓아와 문짝을 뜯을 것이다. 설사 조금 더 시간을 벌 수 있다고 해도 오피스텔 창문은 설계상 죄다 막혀있어 밖으로 도망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계단을 통해 출구로 뛰어 내려가면 1층 로비까지 근접하지도 못하고 잡힐 것이다.
어떻게 하지? 다시 생각해보자. 오피스텔 옆에는 상가 건물이, 바로 아래엔 조그만 화단이 있었다. 차라리 조금 더 가까운 옥상으로 올라가 그나마 덜 다칠만한 곳으로 뛰어내리는 게 낫지 않을까? 비록 10층 건물의 옥상이지만, 운 좋게 나무에 걸리거나 자동차 보닛 위나 뚜껑 열린 쓰레기통 위에 떨어질 수도 있으니.
후성은 결심이 서자마자 어디로 뛸지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눈알을 굴렸다. 사냥감의 달라진 기운 혹은 달라진 몸짓은 즉각 배고픈 야수를 자극했다. 괴물과 눈이 마주친 순간,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할 도리가 없었다. 후성은 온 힘을 다해 머릿속의 동선을 따라 옥상으로 뛰었다. 넘어져서 다리가 아픈 것도 잊을 정도로.
괴물은 나는 듯 한 속도로 쫓아왔다. 괴물의 위치가 멀리 복도 끝이었다는 점이 유효했는지, 후성은 아슬아슬하게 옥상 문을 닫고 구조 요청을 위해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러나 앱을 열어 구조요청 버튼을 누를 새도 없이 옥상 문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인터넷이 느린 저렴한 요금제를 쓴 것이 이토록 원통할 수가 없다.
마침내 괴물이 철문을 뚫고 머리통을 내밀었다. 후성은 옥상 끝까지 뛰었지만 옆의 상가 건물은 점프하기에 너무 멀었고, 아래쪽 화단의 허술한 나무들은 비록 비쩍 마르긴 했지만 서른셋 먹은 성인 남자의 몸을 받쳐주기에 한없이 빈약했다. 이제 어쩌나. 절망감이 느껴질 새도 없이 괴물이 후성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괴물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몸 곳곳이 찢어져 검보랏빛 핏줄기가 상처 밖으로 흐르다 굳었고, 비틀린 팔 한쪽은 한번 툭 치면 뎅강 끊어질 듯 했다. 히어로에게 당한 후 운 좋게도 겨우 목숨만 붙어있는 상태였다. 후성은 또다시 덮쳐오는 두려움에 눈을 꼭 감은 채 유일하게 손에 쥔 무기인 유리조각을 마구 휘둘렀다. 비록 괴물에겐 아무 타격도 없는 듯 했으나 유리에 의해 찢어진 괴물의 표피 틈에서 무언가 구더기처럼 비집고 나왔다. 그것은 벌레였다. 검은 고양이가 물고 온 것과 똑같은 생김새를 한 벌레.
이윽고 빠르게 날아오는 괴물의 손톱을 피하기 위해 후성은 옥상 난간을 뒤로 한 채 허리를 최대한 건물 밖으로 젖혔다. 괴물의 꼬리가 바닥을 치자 여기서도 스파크가 튀는 것이 보였다. 어디론가 연결된 검은 피복전선들이 옥상 한 켠에 제 멋대로 뻗어있다. 그리고 녹색으로 칠한 바닥의 흥건한 물기. 옥상에 전류가 흐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지원팀이 조명을 끄면 좋겠는데.
후성이 바닥에 전류가 흐른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발목에서부터 저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생소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와 뼛속까지 찌르는 듯 한 통증 속에서 후성은 발작하듯 온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대로 옥상 밖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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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야, 백구야 어디 있어?”
후성은 백구를 찾아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동구 밖 길, 복숭아밭 어디에도 백구가 보이지 않았다. 백구는 들개 어미에게서 태어난 눈처럼 흰 진돗개였다.
3년 전 후성이 죽은 어미 품에서 꼼지락거리던 새끼 백구를 구조한 후로 백구는 후성을 어미처럼 따랐다. 백구는 쓰러진 어미의 빈 젖을 물고 엎드려있던 가엾은 새끼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녀석이었다.
후성은 학교에서 급식으로 받은 우유에 쌀밥을 뭉개 먹이며 가느다란 숨만 겨우 붙어있던 백구를 살려냈다. 후성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백구도 어느새 늠름한 성견이 됐다.
후성이 만들어준 허름한 집을 나와 뒷산의 들개 무리 속으로 들어간 백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뒷산의 터주신처럼 들개들을 몰고 다녔다. 저보다 이빨이 날카롭고 덩치 큰 개들도 백구 앞에 드러누워 말랑한 배를 내보였다.
개들의 우두머리가 된 후에도 후성이 뿔피리를 불면 백구는 어디서든 몇 분 안에 나타나 후성의 손바닥에 커다란 머리를 비벼댔다. 산을 훨훨 날아서 오기라도 한 듯 뜨거운 숨을 뱉으며. 겨울바람에 곱은 후성의 손은 따뜻한 백구의 숨결과 체온에 금세 녹곤 했다.
백구가 왜 나타나지 않을까. 벌써 뿔피리를 스무 번도 넘게 불었는데.
불현 듯 후성의 관자놀이 옆으로 마을회관 뒤의 언덕이 스쳐갔다. 언덕 꼭대기에 십자가처럼 가지를 뻗고 선 늙은 느티나무도 함께. 후성은 그 느티나무가 싫어서 학교에 갈 때도 언덕을 피해 빙 돌아 걷곤 했다. 그 나무는 복날이나 마을 잔치 때 개를 매다는 곳이었다.
마을 어른들은 몽둥이를 들고 돌아가며 나뭇가지에 묶인 자루를 때렸다. 자루 속의 개는 꿈틀거리다가, 찢어져라 짖다가, 깨갱거리다가, 마침내 아무 소리도 아무 움직임도 내지 않았다.
자루가 조용해질 때까지 때리느라 힘 빠진 마을 아저씨들은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한참 웃고 떠들다가 할 말이 떨어질 때쯤 자루를 메고 마을회관으로 돌아갔다.
어른들이 떠나고 나면 자루가 묶여있던 나뭇가지 밑에는 늘 붉은 핏물이 고여 있었다.
늦봄 느티나무 주변에 철쭉꽃들이 경쟁하듯 붉게 핀 것을 볼 때면 후성의 팔뚝엔 오소소 소름이 돋곤 했다. 마치 개가 죽으며 흘린 피를 양분으로 흡수해 꽃이 피처럼 붉게 피어난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
기분 나쁜 예감과 함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후성은 불안하게 팔딱이는 심장의 펌프질을 잊기 위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언덕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눈앞에 손가락만 하게 보이던 느티나무가 점점 커질수록 후성의 다리는 굳은 듯 느려졌다.
가장 낮은 가지에 매달린 더러운 자루가 선명하게 보이자, 후성은 문득 이대로 뒤돌아 언덕을 뛰어 내려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럼에도, 후성의 떨리는 두 손은 이성이 시키는 대로 어쩔 수 없이 자루가 묶인 줄의 매듭을 풀어냈다.
툭, 자루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싹 마른 낙엽 위로 떨어졌다. 떨어지며 반쯤 벌어진 자루의 틈으로 축 늘어진 백구의 귀가 드러났다.
하얀 털이 송송 박혀있던 백구의 귀는 붉게 물들어있었다. 후성은 백구의 머리털 사이에 떨리는 손가락을 집어넣고 가만히 쓰다듬으며 사랑하는 개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백구의 털은 뻣뻣하고 차가웠다. 시퍼런 차가움에 놀라 얼어붙은 후성의 손에 죽은 개가 흘린 끈적한 피가 귀신처럼 엉겨 붙었다.
그 피는 강력본드처럼 후성의 열손가락을 서로 달라붙게 했다. 흐물흐물 껍질이 벗겨진 열손가락의 피부가 멋대로 엉겨 붙어 마치 문둥병 환자의 손처럼 기묘한 형태의 살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후성은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에 백구가 죽었다는 슬픔도 잊어버렸다. 북쪽에서 불어온 거센 바람이 느티나무를 희미하게 흔들었다. 백구가 누워있는 자루 위로 검붉은 얼룩이 점점 더 크게 번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