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사체처리부 -각성-

10화 - 각성 -

by 융갱


저녁 8시 반. 환한 조명과 고기 굽는 연기, 취기로 들뜬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한 유흥가 골목은 낮보다 훨씬 생기 있는 모습이다. 술 마시러 온 손님들과 그들에게 술과 음식을 내주는 직원들로 북적이는 이 골목 위를 한 남자가 달리고 있다.

‘내일 주짓수 와?’

‘아니. 나 엘리트 수학에 레벨테스트 보러 가’

‘야, 너 미쳤냐? 그 학원 소문났잖아!’

남자는 흰 주짓수 도복 위에 빛바랜 남색 후드집업을 걸치고 있었다. 남자의 코에서는 거친 콧김이 새어나왔고, 오랫동안 자르지 않은 듯한 더벅머리는 남자의 움직임에 맞춰 출렁거렸다. 그리고 남자의 머릿속에서는 주짓수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던 고등학생들의 말이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무슨 소문?’

‘원장이 변태라고. 너 친구 없냐? 아직도 못 들었어?’

길 위의 사람들은 장애물이 있든 말든 달려오는 남자를 피해 급히 가장자리로 물러났다. 그리고 곧 짜증어린 말들을 내뱉었다. 사람 많은 골목에서 왜 달리기를 하는 건지, 개념 없는 놈이네, 미친놈, 쯧쯧......

‘거기 다니던 여자애들 다 그만뒀대’

‘난 남자니까 상관없어. 성적만 올려준다면 뭐’

‘이 미친놈아 크크크. 모르지, 남자도 건드릴지도’

유흥가를 벗어나면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누구의 집인지 구별하기 힘든 다세대주택들이 나타난다. 벽면에는 죄다 붉은 벽돌이, 옥상에는 월세를 주기 위해 불법으로 건축한 허술한 옥탑이 올려져 있다.

‘아! 여자애 딱 한 명 아직 안 그만뒀다던데?’

‘누구?’

‘그, 이름이 뭐더라? 중간고사 때 전교 1등한 애 있잖아’

다세대주택 골목은 반지하방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형광등 불빛들로 바닥이 훤히 보였다. 덕분에 남자는 하수구 구멍이 부비트랩처럼 많은 이 골목에서 넘어지지 않고 속도를 유지하며 달릴 수 있었다.

‘좀 예쁘장하게 생긴 애?’

‘맞아, 걔’

다세대주택 골목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 남자가 마침내 다다른 곳은 한 고층건물 앞이었다. 수많은 병원과 약국, 학원 간판들이 층마다 다닥다닥 붙어있다.

5층, [엘리트 수학학원]

남자는 목적지를 확인한 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 않고 곧장 계단을 뛰어올랐다. 남자에게는 4층에 서있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최대한 빨리 확인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원장이 걔만 따로 보충수업 해준다더라’

‘변태랑 둘이서 보충? 와, 독하네. 괜히 전교 1등이 아니다 크크크’

‘인정, 크크크크크’

계단을 두세 개씩 성큼성큼 올라가는 남자의 마음은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성큼성큼 무너지고 있었다. 아니길, 제발 아니길......며칠 전 희솔이가 뜬금없이 수학학원을 그만두고 싶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늘 수학을 어려워해서 처음으로 수학학원에 등록했을 때 어린애처럼 좋아하던 녀석이었는데.

희솔이가 왜 그만두고 싶은지 관심을 갖고 물어보지 않고 혼자만의 판단으로 계속 다니라고 한 건 바로 자신이었다. 미안해 희솔아. 아니, 아니, 아니야, 아직 확실하지도 않잖아?

‘그러니까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어!’

한쪽 끈이 풀린 남자의 낡은 운동화가 통유리문 앞에 멈추었다. 투명한 문 너머로 엘리트 수학학원의 안내데스크가 보였다. 넉 달 전 희솔이를 데리고 이 학원에 등록할 때 저곳에 앉아있던 상담 실장은 보이지 않는다. 진주 장식 키링이 달린 휴대폰이 데스크 위에 있는 걸 보니 잠깐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땀에 전 더벅머리 남자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바로 강의실 쪽으로 향했다. 복도 양쪽으로 여러 개의 강의실이 늘어서 있다. 강의실 문에는 정사각형의 손바닥만 한 유리창문이 끼워져 있어서 강의실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남자는 조그만 유리창을 통해 자기의 여동생이 안에 있는지 확인하며 복도 끝까지 걸었다. 이윽고 코너를 돌자 마지막 남은 강의실이 보였다.

‘후우’

가장 안쪽에 있는 강의실. 그 앞에는 조그만 유리창 앞에 얼굴을 비집어 넣고 강의실 안을 훔쳐보는 남학생들이 있었다. 남자의 여동생과 같은 학교의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다. 남자는 후드모자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아이들을 향해 다가갔다. 인기척에 흠칫 놀란 아이들이 후다닥 제 강의실로 돌아갔다.

남자는 남학생들의 지문과 얼굴 눌린 자국이 찍혀있는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았다.

‘희솔아!’

강의실 안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희솔이의 조그만 등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희솔이의 옆에는 짝꿍처럼 나란히 앉아 스프링노트에 뭔가를 쓰는 중년 남자가 있었다. 남자가 희솔이에게 뭔가를 이야기했고, 희솔이는 스프링노트를 보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역시. 아무 문제없잖아’

남자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의 숨결이 묻어 흐릿해진 유리창을 조금은 느슨해진 눈길로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다림질이 잘된 푸른색 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깔끔하게 머리를 정리한 50대 남자. 어쩌면 전업주부인 그의 아내가 출근 전 셔츠를 다림질해줬을지도 모르겠다. 얼굴은 아직 탄탄해보이지만 노화가 다소 진행됐는지 귀 뒤의 피부가 쭈글거리는 그 남자가 희솔이를 보며 빙긋이 웃는다.

엘리트 수학학원 원장은 나이답지 않게 반짝반짝한 호기심어린 눈으로 눈앞에 있는 여학생의 턱을, 목을, 가슴을, 허리를, 교복 치마 밑의 다리를 찬찬히 보고 있다. 깔끔하게 정리된 중년 남자의 뒤통수가 그의 시선을 따라 찬찬히 아래로 움직인다.

여학생은 문밖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오빠와 마찬가지로 낡고 때 묻은 흰 운동화와 빛바랜 양말을 신고 있었다. 드러내놓고 쳐다보는 원장의 시선이 느껴질 법도 한데 애써 무시하려는 듯 샤프를 꼭 쥐고 책상 앞의 문제집만 뚫어져라 보고 있다.

‘하!’

유리창으로 이 꼴을 지켜보는 오빠의 입에서는 헛웃음이 나왔다.

이 거지 같은 학원 당장 그만두게 해야지. 저렇게 빤히 남의 몸을 쳐다보는 것도 추행으로 신고할 수 있을까? 신고할 수 있더라도 그게 과연 희솔이에게 좋은 일일까?

오빠 후성의 머릿속은 언제나처럼 혼란스러웠다. 이런 순간에도 바로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제 자리에서 머뭇거린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걱정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기처럼 뻗어나갔다.

이 또한 내 탓은 아닐까? 내가 희솔이의 보호자다, 희솔이와 단둘이 살고 있다고 성급하게 말한 탓일지도 모른다. 원장이 희솔이가 안쓰럽다며 원비를 깎아줄 때 고맙다며 웃은 탓일지도 모른다. 저 원장에게는 희솔이가 만만했겠지. 희솔이에게는 가난하고 멍청한 오빠뿐이니까.

왜 이리도 사람을 쉽게 믿었을까. 동정심 있고 겉모습도 멀끔해 보이는 선생이라서?

아직도 나는 멀었다. 사실 내 진짜 모습은 누구 앞에서도 당당해질 수 없는 ‘찐따’잖아? 나 같은 게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을까?그게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라해도.

‘알고 있었잖아.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후성은 자기를 질책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유리창을 들여다보았다. 두 발을 모으고 잔뜩 긴장한 듯 보이는 희솔이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교복치마 아래 드러난 희솔이의 허벅지 위에는 원장의 두툼한 손이 올라와 있었다.

약지에 반지를 끼고 다니는, 누군가에겐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일 원장의 손이.

후성은 숨이 턱 막혔다. 당장 문을 박차고 들어가 주먹으로 원장을 죽을 때까지 패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러나 원장에게 주먹질을 하기 위해 강의실로 들어가려던 그의 몸은 불같은 마음과 반대로 얼음처럼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왜 이러지?'

애써 마음을 다잡고 문을 열려고 하자 이번에는 손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뭐해? 바로 앞에 희솔이가 있는데!'

사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남을 때리지 못한다는 걸. 어릴 적 시골에서 키우던 백구가 죽은 후로 후성의 주먹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자기를 괴롭히는 놈에게 맞서기 위해 주먹을 내미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위협적인 폭언이나 주먹이 자기를 향해 날아오면, 후성은 아주 잘 맞는 과녁이 된 것처럼 굳어버렸다. 아무런 저항 없이, 묵사발이 될 때까지 그 폭력에 몸을 맡겼다.

백구가 죽은 이유는 이수호 때문이다. 궁전 같은 집에 살던 나와 같은 나이의 도련님.

‘아니, 그것도 내 탓이야. 내가 주제도 모르고 도련님을 때렸으니까’

오빠가 문밖에서 어쩔 바를 모르고 손을 떠는 동안, 이제 원장의 손은 희솔이의 교복자락을 만지고 있었다. 몸을 만졌다고 신고하기엔 애매한, 교묘한 손짓이었다. 교복 소매를 만지고, 치맛자락을 만지고, 희솔이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다.

이 문을 열고 한 걸음만 내딛으면 되는데!

몸이 굳어버린 오빠는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내 인생에 밝은 건 희솔이 뿐인데! 그렇게도 소중한 희솔이를 위해 아무 것도 못하고 덜덜 떠는 무력한 자신이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붉어진 눈에 천천히 차오르던 눈물이 잠시 고였다가 후성의 두 뺨을 타고 흘렀다.

‘희솔이한테 뭐라는 거야? 개자식아’

서러운 눈물이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 옷깃을 적실 때, 후성은 문득 자신의 감각이 매우 예민해지고 있음을 떠올렸다.

비염 때문에 냄새를 잘 맡지 못하던 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온갖 것들의 냄새가 뒤섞인 냄새의 덩어리를 세밀하게 분류하고 있었다. 고기 냄새, 김치 냄새, 꽃다발을 든 남자의 향수 냄새, 포장마차의 핫도그 냄새, 식당 직원이 하수구에 붓던 구정물 냄새. 멀리서도 모든 냄새의 근원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뿐인가? 며칠 전 오피스텔에서 정신을 잃고 안경을 잃어버린 후 지금까지 새 안경을 맞추지 않고 있다. 심한 근시라 안경을 몸의 일부처럼 여기던 자신이었는데!

오빠는 후각과 시각이 날마다 더 좋아지고 있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매일 아침 더 먼 곳의 냄새를 맡았고, 더 먼 곳의 풍경을 선명하게 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방음처리 된 이 강의실 문 너머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유리창으로 누가 선을 넘으면 그대로 굳어버리는 자신처럼, 똑같이 굳은 자세로 원장에게 뭔가 말하는 희솔이가 보였다. 자신과 꼭 닮은 ‘약자’의 행동을 하는 여동생을 바라보며 오빠의 마음은 바닥까지 무너졌다. 희솔이가 어릴 적부터 보고 배운 게 바로 이런 모습이었겠지.

후성은 귀의 위치를 정확히 느끼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며 자기의 감각에 집중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의 호흡과 현재의 감각, 바로 지금 공기를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듣고 있다’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들린다!'

“교복이 왜 이렇게 축축해?”

“......”

“빨랫줄에 널린 걸 그대로 입고 왔니?”

“......”

“왜? 옷이 없어?”

“아니요......”

힘없이 대답하는 희솔이의 목소리는 오늘 아침 오빠에게 밥투정을 하던 때와는 영 딴판이다. 왜? 원장이 무서운 거야? 너처럼 영리하고 착하고 예쁜 아이가! 저딴 게 왜?

'무력감!'

희솔이의 목소리와 표정에는 무력감이 담겨있었다. 아직 어린 여자아이에겐 너무나 무거워서 마음껏 웃지도, 울지도, 큰 소리도 내지 못하게 하는 무력감의 무게!

예민해진 후성의 감각은 보이지 않는 그 무게를 고스란히 느꼈다. 늘 당하는 것에 익숙한 약자의 무게. 저항하면 더 맞는 걸 알기에 그저 폭력에 몸을 내주는 약자의 무게!

그 무게가 후성의 몸을 짓누르고 억압했다. 후성의 몸안에 가득차 있던 무력감이 그 무게에 반응해 저도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후성의 마르고 약한 몸은 거대한 무력감의 무게에 짓눌려 작은 조각들로 쪼개질 것만 같았다. 조각조각 입자로 분쇄되어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 무게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서야 했다. 두 팔에 힘을 주고 떨쳐내야 했다. 후성의 몸이 아닌, 무력감이 쪼개져야만 했다.

‘허억!’

깊고 깊은 우물에서 아주 오랫동안 묻어둔 숨이 폭포수처럼 밖으로 쏟아졌다. 오래 묵혀둔 숨과 함께 무력감의 조각들을 토해내며, 후성은 강의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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