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사체처리부 -보랏빛과 붉은빛-

11화 - 보랏빛과 붉은빛 -

by 융갱


[드르륵!]

“뭐야?”

원장이 낮고 날카로운 어조로 짜증을 냈다. 다른 강의실에서 문제를 풀라고 시킨 남학생들 중 한 명이 문을 열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문이 열리자 강의실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신선한 공기가 훅 들어와 폭력에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숨 막히는 공기를 밖으로 밀어냈다.

이런 등 뒤의 확실한 인기척에도 희솔이는 고개를 뒤로 돌리지 않았다. 손 안의 샤프를 더 힘주어 쥐었을 뿐이다. 누군가 갑자기 강의실에 들어왔다면 그건 아마 학원에 다니는 남자애들 중 하나겠지. 원장님과 강의실에 단둘이 있는 여자애가 누구인지, 자신의 허벅지에 뜨뜻한 손을 올리며 빙긋이 웃는 선생님에게 아무 말 못하는 여자애가 누구인지,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마 나를 알 거야. 나는 이 학원에 다니는 유일한 여자애니까’

희솔이의 샤프 촉이 미적분 심화문제 3번에 구멍을 냈다. 샤프심이 뚝 부러지며 책상 밖으로 다르륵 굴러 떨어졌다. 희솔이는 외롭고 불안했다. 저 애는 언제부터 있었고 어디까지 본 걸까? 내일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난 어떻게 되는 걸까? 심장이 너무나 빠르게 요동치고 있었다. 머릿속까지 흔들려서 어지러워질 만큼.

문을 열어젖힌 남자가 누구인지 확인한 원장도 심장이 요동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희솔이 만큼은 아니었다. 원장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건 누가 보지 않을 때, 누가 듣지 않을 때 저지르는 욕망은 신도 입을 다물어준다는 믿음이다. 그 욕망이 불순하다고 판단하는 건 사회의 시선일 뿐, 자기에게 있어서 그 욕망은 신앙심처럼 순수한 인간 본성의 표현이었다.

순결하고 건강한 이성의 몸에 관심을 갖는 건 지극히 본능적이고 이기적인 유전자의 발현이다. 유전자의 지시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로 태어나 그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오히려 자연에 거스르는 삶이다.

그건 경험에 의해 굳어진 믿음이었다. 30대에 학원 선생이 되어 경력을 쌓고, 40대에 학원을 차려 원장이 되고, 50대에 이르러 안정을 이루기까지 많은 제자들에게 보충수업을 무료로 해주었다. 그 제자들은 유순한 얼굴에 그늘이 있는, 가난하고 무식한 집안의 딸들이었다.

이런 여자들은 입이 무겁다. 그 연약하고 풋내 나는 여자들은 그에게도, 그녀들의 부모나 학교선생에게도,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비밀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그녀들 앞에 펼쳐질 세상으로 떠났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신이 그 수많은 비밀들을 용인해주었듯이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원장은 믿고 있었다.

김희솔의 오빠에게 처맞기 전까지는.

“야 이 개새끼야!”

[퍽!]

후성의 주먹에 왼뺨을 가격당한 원장의 턱이 주먹과 같은 방향으로 160도 돌아갔다. 원장의 턱과 함께 돌아간 7개의 경추 뼈들이 7개의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소리를 냈다.

[우드드드......]

스타카토로 떨어지는 도미노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후성의 손바닥과 원장의 뺨이 찰진 마찰음을 울리며 화음을 이룬다.

[쫙! 드드드득!]

곡에 심취한 미치광이 연주자처럼 찌그러진 원장의 얼굴에 또 한 번 후성의 주먹이 내리꽂혔다. 매일의 고된 육체노동으로 힘줄이 튀어 오를 만큼 거칠게 다져진 주먹이. 손에 힘을 넣는 법을 아는 그 주먹의 위력은, 누군가를 때리기 위해서만 쥐어졌던 주먹에 버금가는 위력이 있었다. 그리고 ‘분노’라는 감정은 그 위력을 배로 증폭시켰다.

[퍽!]

“더러운 새끼”

원장의 눈과 눈 사이, 콧잔등에 주먹이 내리꽂혔다. 인중의 선을 타고 두 줄기 코피가 주르륵 흘렀다. 아파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원장의 턱밑으로 코피와 섞인 끈적한 침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또,

[퍽!]

“나이 값 못하는 새끼”

그리고 또,

[퍽!]

“음침한 개새끼”

그리고 또, 또,

[퍽퍽!]

또, 또, 또,

[퍽! 퍽! 퍽!]

또, 또, 또, 또,

[퍽! 퍽! 퍽! 퍽!]

후성은 계속, 계속, 계속......주먹을 퍼부었다. 후성의 눈에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패고 터트려야 할 목표물이 보일뿐이었다. 초등학교 운동회 날, 수없이 공을 던져 터트려야 했던 커다란 청색 공처럼. 그래서 때린 곳을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렸다. 그 자리에 구멍이 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

후성이 턱까지 차오른 숨을 돌릴 때, 원장의 멱살을 잡고 있던 왼손에도 힘이 풀렸다. 손아귀에서 풀려난 원장의 몸이 의자에서 바닥으로 흘러내리듯 스르르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후성이 자기를 때리는 동안 입 안 가득 모인 피를 왈칵 토했다. 다림질이 잘 된 푸른색 셔츠가 피로 새빨갛게 얼룩졌다.

원장은 붉게 얼룩진 셔츠 깃 옆으로 머리를 숙인 채 울컥, 울컥, 울컥, 계속해서 피를 토해냈다. 몇 개의 금니와 싯누렇게 변색된 치아들이 피와 함께 쏟아졌다. 하찮고 더러운 이빨들이 핏물에 젖어 축축해진 셔츠에서 원장의 사타구니로, 다르륵 다르륵 굴러 떨어졌다.

“자, 자까마!......자까뫄”

인간을 잡아먹은 괴물의 사체처럼 입가가 피범벅 된 원장이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중얼거렸다.

“자까마, 자까마......허, 어, 얼마믕 돼?”

“풉! 뭐?”

후성은 잠깐이나마 원장이 무슨 변명을 하려는지 들어보려던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모든 인간에게 다 관대할 필요는 없는데! 게다가 자신은 희솔이를 추행한 원장에게 관대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관대해지는 후성의 관대함은 마치 습관 같았다. 습관이 된 관대함은 더 이상 ‘관대함’이라 부를 수 없다. 그건 자기를 졸로 보는 인간에게조차 관대할 수밖에 없는 서열 최하위 ‘찐따’의 특성일 뿐이다.

후성은 원장을 쳐다보았다. 원장이 희솔이를 쳐다보았듯, 찬찬히.

평범한 체격, 그에 비해 얄팍한 다리, 면바지 아래 추하고 너덜거리는 것들이 붙어있을 법한 불룩한 사타구니,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아랫배를 덮느라 팽팽하게 당겨진 셔츠......그 셔츠 위에 얹힌 피떡이 된 얼굴이 이 빠진 노인처럼 입을 달싹거렸다.

“도, 도, 돈 줄게. 너 돈 필요하잖아. 어, 얼마믕 돼? ”

“뭐?”

“내, 내가, 니 동생, 임신시킨 것도 아니잖아. 적당히 합의하자. 얼마믕 돼?”

“개새끼야, 니가 원빈인줄 알아?”

후성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퍽!]

[퍽!]

[퍽!]

[퍽!]

후성에게 얼굴을 몇 대 더 맞은 원장의 입에서 놀랍게도 좀더 명확한 발음이 튀어나왔다.

“니 동생, 희솔이”

원장의 시선이 후성의 뒤에서 숨죽이고 있던 희솔이에게로 향했다.

“싫다고 안 했어, 한 번도”

후성은 이 공간에 희솔이가 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눈앞에 당장 터트려야 할 청색 공만 보였던 것이다. 후성의 눈은 빠르게 희솔이를 찾았다. 강의실 모서리에 겁먹은 눈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는 희솔이가 있었다. 무엇을 겁내는 걸까? 원장의 보복이? 아니면, 오늘 밤과 내일 아침이?

“희솔아!”

후성과 눈이 마주친 희솔이가 울먹거리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초등학생 때 이후 처음으로 보인 눈물이었다. 그런 희솔이를 보며 원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희솔아, 너도 좋았잖아?......선생님 좀 살려줘”

희솔이는 기쁨은 잘 표현했지만 힘듦은 표현하지 않았다. 그래서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뒤돌아서서 현관문을 나서는 희솔이의 어깨는 무겁고 그늘져 보였다. 저 밝은 척 하는 껍데기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했지만, 후성은 자기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엄마와 친밀해본 적도, 여자를 사귀어본 적도 없는 후성에게 훌쩍 커버린 사춘기 여동생의 마음을 헤아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오늘은 다르다. 예민해지고 있는 후성의 감각은, 시각과 후각 청각과 같은 물리적인 감각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에너지까지 섬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희솔이의 어깨에 내려앉은 그늘이 칠흑처럼 깜깜하고 무거운 에너지가 되어 후성의 몸을 덮쳤다.

‘무력감’

‘수치심’

‘불안감’

‘두려움’

무력한 자기에 대한 수치심, 보호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 뛰어나지 않으면 무시당할 거라는 두려움. 그동안 이런 것들이 희솔이의 어깨를 누르고 있었구나, 그저 공부밖에 모르는 얌전한 아이인줄 알았는데.

‘희솔이가 나보다 훨씬 더 애쓰고 있었구나’

좋은 오빠가 아니었던 걸까? 희솔이가 안심할 수 있는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던 걸까?

후성은 이런 감정이 드러난 얼굴을 희솔이 앞에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밀려오는 자책과 죄책감에 완전히 잠식되기 전에 원장에게 돌리기로 했다.

“너 때문에 울잖아,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새끼야!”

다시 주먹을 쥐려다가, 후성은 문득 자신의 손에 피가 엉겨있는 걸 확인했다. 이 붉은색이 원장의 것인지, 원장을 때리다 상처 난 손에서 흘러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새끼는 괴물이 아니라......인간이니까!’

손에 묻은 피가 괴물의 것이었다면 그건 짙은 보라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손등과 손가락에 엉겨 붙은 이 핏자국은 오래 전 시골의 느티나무 언덕에서 피어난 철쭉처럼 붉었다.

‘나......사람을 때렸네?’

‘어떻게 된 거지?’

[흐읍!]

갑자기 등 뒤에서 숨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성은 뒤돌아 희솔이를 보았다. 희솔이가 코피를 흘리고 있다. 손을 들어 급히 코를 막았지만 손가락 틈으로 떨어진 붉은 핏방울들이 하얀 교복 블라우스를 물들이고 있었다.

'얼룩지면 안 되는데. 이거 한 벌 뿐인데......'

이 괴상한 상황에서도 희솔이는 내일 학교 갈 때 입을 교복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희솔이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리고 힘없이 풀썩, 희솔이가 강의실 바닥 위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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