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사체처리부 -고양이 사료를 먹는 삵-

13화 - 고양이 사료를 먹는 삵 -

by 융갱


요즘 후성은 매일 희솔이가 입원한 병원에서 출근하고 병원으로 퇴근하고 있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가능한 희솔이 곁을 지키려고 노력 중이다.

‘희솔이가 깨어나면 나를 제일 먼저 찾을 테니까’

희솔이는 늘 피곤해하고 자주 코피를 흘리곤 했다. 그렇지만 명문대를 목표로 하는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면 대부분 그럴 테니까. 안쓰러운 마음만 있었을 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희솔이는 그동안 공부하느라 못 잤던 잠을 지금에서야 벼락치기하듯 몰아서 자는 것 같다. ‘벼락치기’는 제 인생에 없는 단어라더니, 시험 공부할 때만 해당되는 얘기였던 걸까?

수학학원에서 원장을 죽을 때까지 패려고 했던 그날, 도중에 멈출 수 있었던 이유는 경찰이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안내 데스크의 상담실장이 신고한 듯했다.

왜냐하면 경찰이 왔을 때, 학원에 있던 남학생들이 미리 짜놓기라도 한 듯 쌍방폭행이라 증언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후성의 편을 들어주었다. 아니, 희솔이의 편을 들었다고 한 게 더 맞는 말일까? 다행히 아이들의 거짓말은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 복도 끝 강의실은 학원에서 유일하게 CCTV가 없는 곳이었으니.

후성은 그 날 희솔이가 쓰러진 원인이 정신적인 쇼크일 거라 생각했다. 원장의 더러운 짓 때문이거나, 혹은 오빠에게 치부를 들켰다고 생각했다거나, 또는 오빠가 사람을 때리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거나,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이 혼합되어 희솔이의 정신을 덮쳤기 때문일 거라고.

그런데 희솔이는 실제로 많이 아팠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만큼. 의사들이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점점 더 아파질 거라고.

희솔이가 걱정돼서 미칠 것 같던 마음은 요 며칠 사이에 차분해졌다. 오히려 지금 후성의 마음은 묘하게 편안했다.

‘그래, 이게 정상이잖아. 이래야 내 인생이지’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왜?

죄 없고 아직 피지도 못한 아이까지 이 구렁텅이로 끌어들이는 걸까. 내가 너무 하찮은 놈이라 고작 나 하나 삼킨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걸까.

마치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암울한 운명이 시커먼 입을 벌리고 어두운 구렁텅이 속으로 후성을 잡아끄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팔다리에 힘을 주고 빛을 향해 나아가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겨우 한 걸음 내딛으면 후성의 뒷목을 잡아채 열 걸음 뒤로 끌어내리는 무정한 뱀의 이빨.

‘혹시 내가 물귀신처럼 희솔이를 끌어들인 건 아닐까?’ 

애초에 글러먹은 인간과 함께 지내는 것보단 친척집이나 고아원에 가는 편이 희솔이에겐 더 나은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어른들이라면 반찬을 골고루 곁들인 따뜻한 밥상을 내줬을 거고, 내가 잘 모르는 여자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더 관심 있게 챙겨줬을 것이다.

희솔이가 오빠와 떨어지지 않겠다며 엉엉 울었다는 이유로 책임지겠다고 한 건 오히려 무책임한 짓이 아니었을까. 당장 내 마음 아픈 게 싫어서 철없는 객기를 부렸던 건 아닐까. 어린애들이란 별일 없이도 울기 마련인데.

후성은 또다시 자책하기 시작했다. 자책은 그의 몸에 새겨진 문신 같은 거니까. 희솔이에 대한 책임감과 자신의 무능함이 경쟁이라도 하듯 울컥울컥 올라왔다.

‘내 힘으로 언제까지 희솔이와 나를 책임질 수 있을까?’

지금에 와서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몸을 갈아 넣어서라도 희솔이를 끝까지 책임지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희귀병을 치료하려면 병원비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나올 것이다. 언제까지 치료해야할지, 과연 치료가 가능할지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희솔이가 죽지만 않는다면! 그래서 아무 일 없는 듯 열심히 일하고 꾸역꾸역 세끼 밥을 먹는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워도 잠드는 건 여전히 어렵고 겨우 잠들었다가도 자꾸만 깨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거나, 자살하거나. 이 삶에서 선택지는 둘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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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딸랑]

도어벨이 울리며 문이 열렸다. 동물병원 안으로 들어온 건 진주목걸이를 한 검은고양이다. 제아무리 똑똑한 고양이라도 혼자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을 리 없다. 녀석은 김후성의 품에 안겨있었다.

“어서오세요......후성씨?”

이설윤이 놀람 반 반가움 반이 섞인 목소리로 후성을 맞았다.

“아, 저, 이 녀석이 길에 돌아다니고 있어서요. 혹시 또 잃어버리셨나 해서......”

김후성은 말끝을 흐렸다. 이설윤 앞에 서면 어쩐지 더 성대에 힘이 안 들어간다.

“일단 얘 이름은 까미예요”

“아, 까미......”

“까미가 엄청 똑똑해요. 어떻게 나갔는지 매일 밖에 놀러 나갔다가 해 지면 돌아와서 문 열어달라고 울거든요”

후성은 까미가 거리를 멋대로 돌아다니다가 로드킬을 당하거나 사이코패스 같은 놈들을 만나서 큰일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시절 서열의 맨 끝에 있었던 후성은 서열 최상위의 일진 무리들을 가까이 볼 수 있었다. 매점 셔틀과 인간 샌드백 노릇을 하느라 그들의 눈을 피해 다니는 중간 서열 아이들보다 오히려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 무리들 중에서도 대개 3군에 포진한 비열한 녀석들은 조그만 동물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다.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를 몇 마리 사서 실컷 괴롭히다가 옥상에서 던지거나, 새끼 길고양이를 어미에게서 훔쳐내 일부러 도로 한복판에 풀어놓기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끽 소리 못하고 얼어붙어있던 스스로를 떠올리면 수치심이 올라왔다.

“아, 위험할까봐 걱정되기는 한데, 이렇게 자유로운 애를 묶어놓을 수도 없으니까요”

이설윤이 마치 후성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을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동물병원이란 데는 처음 와보네요”

후성이 병원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반려동물 안 키우세요?”

“네. 해 뜨면 나가서 해 지면 들어오는데 혼자 외로울 것 같아서요”

아니다.

사실 후성은 동물을 좋아했다. 어릴 적 시골에서 백구를 몰래 키웠을 만큼.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아마 희솔이도 다른 집 아이들처럼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은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을 만큼 돈이 없었다.

후성이 괴물사체처리부에 입사하기 전, 희솔이가 어릴 때는 지금보다 훨씬 궁핍했다. 라면 하나를 끓여 같이 나눠 먹고, 가스가 끊겨 물을 끓이지 못해 수돗물을 그대로 컵에 받아마셨다. 혹시 수돗물을 마셔서 희솔이가 아픈 걸까.

어릴 때 희솔이는 좋아하는 간식인 요플레를 배터질 때까지 실컷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나중에 배터질 만큼 많이 사줘야지 했는데, 정작 어른이 되어 돈을 벌고 나서는 그 다짐을 잊어버렸다. 희솔이도 어릴 때만큼 요플레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니 동물을 키울 수 있을 리가.

동물들은 사람처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서 병원비도 약값도 더 비싸다고 한다. 귀하게 키우는 어떤 동물은 생식으로 메추리나 닭을 먹고 비싼 영양제도 간식에 섞어준다는데 후성의 능력으로는 기껏해야 제일 저렴한 사료나 먹일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를 키운다면 먼지가 풀풀 올라오는 싸구려 모래를 사줄 것이다.

‘그마저도 벌벌 떨면서 지갑을 열겠지’

어쨌거나 이제는 개나 고양이를 안겨줘도 좋아할 사람이 집에 없었다. 희솔이는 병원에 있고, 후성은 희솔이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지금보다 더 오랫동안 집을 비워야 할 테니까.

후성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병원을 둘러보다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고개를 갸웃하며 몽골인처럼 좋아진 시력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이상한 광경이었다.

“저거, 삵 아닌가요?”

“네?”

“저기 까미 옆에서 사료 먹는 점박이 녀석이요. 살쾡이 새끼 같은데”

고양이처럼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저 점박이 녀석은 분명 삵이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후성은 삵의 생김새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틈만 나면 닭장의 닭을 물어가서 어른들이 기겁하는 야생동물이기도 했으니.

성체로 자란 삵은 고라니나 멧돼지 새끼도 사냥한다. 게다가 고양이도 잡아먹는 놈이 바로 삵인데,

저 고양이는 어떻게 천적 옆에서 천연덕스럽게 밥을 먹고 있으며, 저 삵은 맹수라는 놈이 어떻게 고양이 사료나 먹고 있는지.

덩치 큰 치즈색 고양이가 사료 그릇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치즈 고양이는 제 앞에 있는 접시보다 삵이 고개를 파묻고 있는 접시에 사료가 더 수북한 것을 보고는 덩치로 삵을 밀어버렸다. 옆으로 넘어진 삵은 자기를 밀어낸 치즈 고양이를 슬며시 쳐다보더니 다른 사료 그릇 앞으로 가는 대신 고양이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고양이를 잡아먹고 살아야 하는 놈이 고양이가 무서워 숨어버린 것이다. 제가 약한 고양이인줄, 아니면 그보다 못한 쥐새끼인줄 아는 모양이다.

고양이보다 훨씬 멋들어진 외모와 야생성이 살아있는 무늬를 가졌음에도, 순한 품종묘의 눈빛을 한 삵은 저 많은 고양이 새끼들 중 한 마리로 보였다.

“삵, 맞아요. 잘 보셨네요”

“삵이 왜 여기 있어요? 저 놈은 산에 사는 놈인데”

“어미가 죽어서 아주 어릴 때 구조됐거든요. 지금은 야생성을 잃어서 산으로 돌려보내면 며칠 못 가 죽을 거예요”

후성은 tv에서 다친 야생동물을 구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요즘은 야생동물을 구조하면 살던 곳으로 다시 돌려보내기 위해 야생성을 잃지 않도록 보살핀다고 한다. 그런데 저 삵은 왜 야생성을 잃어버린 걸까.

“요즘은 야생성을 잃지 않게 돌보기도 하던데”

“묶인 코끼리 증후군이라고 들어보셨어요?”

“묶인 코끼리요?”

“네. 어린 코끼리를 줄에 묶어놓으면 처음엔 줄을 끊고 멀리 가려고 발버둥을 쳐요”

“그렇겠죠”

“그런데, 어린 코끼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줄 길이 밖으로는 넘어갈 수 없거든요. 그럼 코끼리는 포기하게 되겠죠. 어차피 줄에서 벗어날 수 없나보다, 하고”

이설윤은 잠시 말을 멈추고 고양이집에 숨은 삵에게 츄르를 까주었다. 나름대로 기죽은 삵을 위로해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삵은 좋아라하며 고양이집에서 기어 나와 츄르를 핥았다.

“어린 코끼리는 성체가 돼서 힘이 세져도 밧줄을 끊지 않아요”

“아......”

“밧줄을 묶은 기둥까지 뽑을 수 있을 만큼 힘이 세졌는데도 자기만 모르는 거예요. 어릴 때 가진 믿음이 굳어버려서. 앞으로도 영영 밧줄에 묶여서 살겠죠”

“이 삵도 묶여 있었어요?”

“비슷해요. 산에서 얘를 주워 온 사람이 고양이인줄 알고 예뻐하면서 키웠나 봐요”

후성은 저 삵이 안쓰러웠다. 입에 피를 묻히고 산을 뛰어다니는 삵의 진짜 모습을 알기 때문에. 저 순둥한 눈빛 안에 맹수의 살기가 한 톨이라도 남아있지 않을까?

“아, 너무 오래 있었네요. 방해됐죠? 죄송해요”

“죄송하다뇨. 뭐가 죄송해요? 방해 하나도 안 됐어요.

까미 보러 또 오세요. 까미가 후성 씨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까미가 나를 좋아한다고?

“까미는 원래 사람한테 안기는 거 질색하거든요. 후성 씨가 안고 들어와서 깜짝 놀랐어요”

“아......”

“고양이는 좋은 사람을 알아본다고 하잖아요. 후성 씨가 좋은 사람이라 그런가 봐요”

‘뭐지, 이거? 설마 요즘 말로 ‘플러팅’인가?‘

이설윤의 웃는 얼굴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떠올린 후성은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병신아, 이러니 찐따 소리나 듣지’

자문자답하며, 후성은 동물병원을 나섰다.

다음 행선지는 시외버스 터미널이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엄마를 면회하는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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