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사체처리부 -실종된 모자-

14화 - 실종된 모자 -

by 융갱


[따르릉]

서울 노원구의 치안을 책임지는 노원경찰서. 하루에도 수차례 전화가 오지만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치워달라는 신고가 대부분이다. 이런 포근한 봄날에 얼어 죽을 리는 없고, 막상 사이렌을 울리며 급히 달려 가보면 술이 떡이 된 새ㄲ......아니, 시민이 곯아떨어져있다. 요즘처럼 괴물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는 세상에서 나 잡아먹으라는 듯 드러누워 있는 걸 보면 어떤 점에서는 불꽃 심장을 가진 대단한 시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뭐, 개중에는 119 구조대에 실려 가기 전에 잠에서 깨어나 욕하고 침 뱉고 지랄 발광 난동을 부리는 주폭 개새......아니, 시민도 있다. 주폭에게서 욕 좀 듣는 거야 예사지만 술 냄새 나는 끈적한 침이 얼굴에라도 묻는 날은, 휴, 일진이 아주 더럽......아니, 민중의 지팡이로서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경찰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을 때 예상한 그림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어릴 적 사월초파일, 엄마를 따라 절에 가서 촛불을 밝힐 때 기예안 순경이 소원종이에 쓴 글은

‘내가 아는 사람 모두 다 행복하게 해주세요’

였다. 그러면 주변의 어른들이 어린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

“어머나. 다른 사람들은 합격하게 해주세요, 돈 잘 벌게 해주세요,

이런 소원 비는데 예안이는 너무 착하다”

기예안 순경은 타고나길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경찰이라는 꿈을 꾸게 된 것도 사람들에게 도움과 믿음을 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훌쩍 자란 그녀는 바람대로 경찰이 되었지만,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남을 돕고 싶다는 꿈을 꿀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그녀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정작 경찰이 주로 접하는 사람들은 그녀의 생각처럼 도움이 절실한 착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비실비실해서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시민과 자기가 벤자민 버튼인줄 아는지 나이를 거꾸로 드신 노인들까지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며 시비를 걸기도 했다. 기예안 순경이 여경이라 만만해보여서일까. 그녀와 같이 출동하는 최연준 경위에게는 입만 나불대면서.

사실 기예안 순경의 날씬한 체형 안에는 체대 출신들이 갖고 있는 단단한 잔근육이 자리 잡고 있었다. 소위 ‘헬창’들이 덩치만 크게 키운 것과는 용도가 다른 실전형 근육이. 학창시절에도 남학생들을 제치고 오래달리기 1등을 놓치지 않은 그녀였다. 가장 빠른 남학생보다 단거리 경주에서 느릴지는 몰라도, 그녀는 강한 지구력을 갖고 있었다. 빠르고, 강하고, 끈질긴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경찰이 된 그녀로서는 처음 겪어보는 캐릭터들이 많았고 그때마다 ‘호모 사피엔스 (생각하는 사람)’라 주장하면서 ‘생각’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인간’이라는 종에 대해 실망했다. 그리고 1년여가 지난 지금은 자신의 직업에 점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따르릉]

기예안 순경은 지긋지긋하다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전화를 받았다.

“네......네네......네? 실종이요?”

[......]

“6세 남아, 그리고 39세 여성. 아들과 부인이 같이 실종됐다는 거죠?”

갈매기 날개를 닮은 그녀의 눈썹이 이마 위로 더 높이 올라갔다.

“지금 어디신가요? 만나서 자세한 얘기 들어볼 수 있을까요?”

30분 후.

기예안 순경과 최연준 경위가 도착한 곳은 최근에 재건축된 신축 아파트 단지 앞이었다. 신축 아파트답게 희게 칠한 곳은 희고 어둡게 칠한 곳은 어두운, 깔끔하고 쾌적한 곳이었다.

“최 주임님, 입구 어딘지 찾으셨어요?”

경찰대를 갓 졸업하고 부임한 최연준 경위는 9급 공무원 격인 기예안 순경보다 직급이 3급이나 높았지만 경력으로 치면 신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기예안 순경은 핏덩이 같은 최연준 ‘경위’를 자기가 교육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요. 분명 이 단지가 맞는데......”

두 경찰은 결국 단지 입구의 경비실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아저씨, 여기 108동 입구가 어디예요?”

“108동? 임대동 찾아오셨어?”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보았다.

“......네!” | “......네!”

“으이구, 귀찮아 죽겠어. 개나 소나 말이나 택배나 하루에도 몇 번씩 물어보네”

경비복 차림의 큰아버지뻘 되는 남자가 투덜거리며 경비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경비복 단추를 풀어헤치고 있어 런닝 속옷이 보였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놀이터 너머에 보이는 조그만 쪽문을 가리켰다.

“108동 입구는 저쪽이요”

쪽문으로 가려면 단지를 빙 돌아 놀이터 옆의 좁은 통로까지 한참 걸어가야 했다. 최연준 경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같은 단지인데 왜 입구가 달라요?”

“거기는 임대동이잖수”

경비는 혀를 끌끌 차며 다시 경비실 안으로 들어가 탁상용 선풍기를 켰다.

쪽문으로 가려면 5~600미터쯤 걸어야 할 것 같았다. 쪽문 안으로 보이는 108동 외벽의 색은 분홍색이었다. 파란색으로 외벽을 칠한 다른 동과 한눈에 보기에도 쉽게 구별이 되었다.

“저거였구나. 색깔이 달라서 다른 단지인줄 알았어요”

“눈에 확 띄어서 다음에는 찾아오기 쉽겠네요”

두 경찰은 다시 쪽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가다 말고 기예안 순경이 찜찜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저렇게 임대동 분양동 구별해도 되나? 불법 아닌가?”

최연준 경위가 드디어 아는 게 나왔다는 듯 얼굴에 화색을 띄웠다.

“요즘은 분양하고 임대를 다 섞어서 추첨하고 임대동을 따로 못 짓게 하긴 해요. 강제성이 없어서 그렇지”

“그럼 불법은 아니네요?”

“네, 사람들이 구별되길 원하니까 구별하는 거겠죠”

“와, 대박, 도레미쳤네”

기예안 순경은 자기도 모르게 학생 때 말투가 나와 당황했다. 최 경위와 동갑이긴 하지만 편한 사이는 아닌데. 지금까지 겪어본 최 경위는 세상에서 흔치 않게 무해한 사람이라 사적으로 만났다면 친구가 되었을 거라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봄이 깊어지며 기온도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오늘은 덥다 싶을 정도로 온도계가 치솟았다. 이상기후 탓에 봄가을이 짧아지고 있다더니 벌써 초여름인가 싶을 만큼.

쨍쨍한 햇볕 아래 쪽문으로 가는 길을 한참 걷다 보니 기예안 순경의 동그란 이마에 땀이 맺혔다. 더워서인지 짜증이 나서인지 그녀의 마음에 또다시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회의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금 만나러 가는 실종 신고자는 또 어떤 사람일까.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차별받는 사람이라면 사회에 적대감을 갖기 더 쉽지 않을까?

어느새 108동 502호 앞.

[딩동 딩동]

현관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경찰이시죠?”

문을 연 남자의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머리는 떡져 있었다. 아내와 아이가 실종된 사람답게. 잠도 못 자고 씻지도 못하고 걱정하는 중일까, 혹은 그런 척을 하는 걸까?

“네, 실례하겠습니다”

두 경찰은 남자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은 소박해보이지만 삶에 필요한 물건들로 오밀조밀 꾸며져 있었다.

‘‘대우’회사가 아직도 있나보네?‘

사라진 줄 알았던 저가 브랜드의 전자제품, 귀여운 꽃무늬 식탁보, ‘이케아’의 하위 호환 브랜드 제품들. 남자의 집에는 적은 비용으로 나름대로 꾸미고 가꾼 흔적이 보였다. 벽에는 부부의 아기가 커 가는 모습이 담긴 사진들과 아마도 그 아기가 자라서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들이 가득 붙어있었다. 부부 중 적어도 한 사람은 삶을 충실히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다.

거실에는 한쪽 벽을 다 차지한 아이의 장난감들, tv, 그리고 길쭉한 3인용 소파가 하나 놓여있었다. 경찰들은 남자에게 묻지 않고 식탁 앞에 앉았다. 소파에 셋이 나란히 앉아 대화할 수는 없으니.

“자녀는 실종된 아이 한 명뿐이죠?”

“예”

“아이가 히어로를 좋아하나 봐요?”

크레파스를 꾹꾹 눌러 그린 삐뚤빼뚤한 그림들은 대부분 히어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못에 걸린 어린이용 히어로 수트과 식탁 옆 수납장에 진열된 크고 작은 히어로 피규어들......

“예. 아빠보다 더 좋아하죠. 여섯 살짜리 남자애니까요”

기예안 순경은 자기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파란색 티셔츠에는 기동전사 건담이 그려져 있었다. 맞아, 나도 그 때는 나쁜 놈들 물리치는 히어로를 제일 좋아했었지.

“이름하고 주민번호 먼저 알려주세요”

“예......”

남자의 이름은 두 개였다. 명함에 적힌 이름은 ‘차은우’, 주민등록증에 적힌 이름은 조철수. 나이 38세, 직업은 나이트 호객꾼, 일명 ‘삐끼’다. 큰 키에 호인 같은 인상을 풍기는 남자였다.

해질녘부터 새벽까지 일하는 그의 귀가 시간은 주로 오전 7시. 남들이 출근할 때 조철수는 집에 돌아온다.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방문을 열어보면 그의 아내와 아이는 이불을 둘둘 말거나 걷어찬 채 곤히 자고 있다. 그러나 사흘 전 아침 귀가 후 방문을 열었을 때, 침대는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 후로 아내와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고, 휴대폰도 사흘째 꺼져있다.

“처음엔 가출한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조철수의 말을 듣고 기예안 순경은 조금 놀랐다. 이런 경우 보통 가출이 아닐까 의심하는 건 경찰 쪽이기 때문에.

“왜 그렇게 생각하셨죠?”

조철수가 눈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자주 집을 나갔거든요.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장롱 안에 엄마의 짐 가방이 있는지부터 확인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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