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사체처리부 -더러운 피-

15화 - 더러운 피 -

by 융갱



[ (앵커)

다음 뉴스입니다.

서울 노원구의 한 야산에서 시신이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어? 나온다, 나온다!”

“뭐가 나와요, 반장님?”

기예안 순경이 턱을 치켜들고 건너편 책상의 오창수 경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tv에 내 얼굴 나온다고. 나 mbs에서 제일 예쁜 기자랑 인터뷰했잖아”

“아......”

기예안 순경은 김새는 표정으로 턱을 다시 내리고는 보고서를 이어서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야, 걔 실물 보고나니까 지나가는 여자들은 다 오징어로 보이더라.

아, 기예안은 제외. 넌 남자니까. 크크”

노원경찰서 오창수 경사는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tv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화면을 유심히 쳐다보며 진지한 자세로 팔짱을 꼈다. 몸에 쫙 붙는 스판 티셔츠 소매 아래 우락부락 부푼 팔 근육이 드러났다.

[ (앵커)

지난 9일 오후 4시쯤 서울 노원구 초안산에서 부패가 진행된 시신 2구가 발견됐습니다. 시신은 최근 이상기후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크게 훼손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창수 경사/ 노원경찰서>

“시신의 신원 확인을 위해 최대한 신속하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했으며, 저희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입니다” ]


‘으, 오글거려’

세상의 십자가를 다 지겠다는 표정과 세상에서 제일 진지한 웅변가의 말투. 기예안 순경은 화면 속 오 반장을 보며 감동받은 얼굴로 박수를 쳐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과 동시에 공감성 수치심을 통렬히 느꼈다.

‘저 인간과 내가 한 팀이라니. 아무도 저 뉴스를 못 보면 좋겠다’

기예안 순경의 속마음과는 달리, 오창수 반장은 뉴스가 기상예보로 넘어갈 때까지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와, 나 화면발 장난 아닌데?

한 십오 년만 어렸어도 연예인 오디션에 붙었을 상이야. 안 그래, 기예안?”

“지금도 안 늦었어요. 키즈 모델도 가능하실 걸요”

“그렇지? 100세 시대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오 반장은, 30대 후반 남자에게 키즈 모델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의 속뜻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오 반장과 눈이 마주친 최연준 주임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해사한 얼굴로 빙그레 웃는다.

‘쯧, 음침한 기생오라비 자식’

오 반장도 속으로만 생각했다. 저 허여멀건 자식은 생긴 거랑 달리 경찰대 출신이라 계급은 나보다 더 높으니까.

그래도 창가 앞 제일 큰 책상에서 곁눈질로 뉴스를 보던 문영길 팀장이 시큰둥하게나마 호응해주었다.


“이야, 오 반장, 몸 좋다!”

“감사함다, 팀장님!”

오 반장은 양 팔뚝에 번갈아가며 힘을 주며 대답했다.

“뉴스 보고 <피지컬 100>에서 섭외 오겠어”

기예안 순경과 최연준 주임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화기애애한 사무실 분위기를 위해 웃어드려야 할 타이밍일까, 아닌 거 같기도 하고?

“하. 하. 하.” | “하. 하. 하.”

두 막내의 억지웃음 소리가 확신 없이 울렸다.

“국과수 검사 결과는 아직 안 나왔지?”

문 팀장의 물음에 오 반장은 대답 대신 기예안 순경을 돌아보았다.

“기예안, 결과 나왔어?”

“네”

기예안 순경이 출력한 보고서를 손에 들자 오 반장이 다가와 종이를 확 낚아챘다.

“하? 역시!”

오 반장은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넓은 보폭으로 대여섯 걸음 만에 문 팀장에게 다가갔다.

“팀장님, 역시 제가 맞았습니다!”

“서론 빼고 해”

“옙! 그 죽은 여자 다리뼈에서 말이죠”

“그 여자 다리뼈에서 골수 뽑았대?”

문 팀장이 점심 때 홍보각에서 짬뽕을 배달시켰는지 물었을 때와 똑같은 어조로 물었다.

“예. 시체에 구더기가 바글바글했잖아요. 너무 부패돼서 신원을 식별할 수 있는 지문, 치아, 다 채취 불가능했고요. 게다가 치아와 지문이 있는 손가락뼈는 신원을 못 알아보게 하려고 했는지 부패하기 전부터 죄다 으깨져 있었대요. 그래서 다리뼈의 골수로 유전자 검사를 했는데......”

“결론만!”

“예! 그 여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내가 어떻게 알아?”

“아, 그렇죠. 죄송함다. 제가 추리했던 그대롭니다.

제가 조철수 그 새끼 피가 더러운 놈이라고 했잖아요.”

컴퓨터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며 시큰둥하게 대화하던 문 팀장이 그제야 고개를 들고 오 반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실종된 애 엄마 맞대?”

오 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애도 조철수 아들이 맞고?”

오 반장이 다시 한 번 의미심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경찰 경력 10년간 깨달은 게 있어요”

오 반장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기예안 순경을 쳐다보았다.


“야! 기예안, 너도 잘 들어둬라. 피는 유전된다!”

“피는 원래 유전돼요”

‘멍청한 놈’

기예안 순경이 덤덤히 대답했다.

“뭔 헛소리를 하려고?”

문 팀장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옙, 팀장님. 조철수 그 놈 애비도 전과자, 형도 전과자, 심지어 그 새끼 본인도 소년원까지 갔다 왔더라고요”

“죄목이 뭔데?”

“조상님들 말씀 중에 틀린 말이 없어요. 머리 좋은 놈은 머리 좋은 놈을 낳고, 머리 나쁜 놈은 머리 나쁜 놈을 낳고, 죄인은 죄인을 낳는다”

“서론 빼라고 했지?”

“옙! 애비는 가정폭력에 살인미수, 형은 10대 대부터 스토킹에 부녀자 성폭행,

조철수는, 하......존속상해.

패륜아 새끼, 이 놈은 가족이고 뭐고 없는 놈이에요”

“존속상해? 누굴 상해했는데?” 

“지 애비요. 그것도 식칼로 배를”


“근데 뭘 꾸물거려? 조철수 잡아와”

들어야 할 얘기는 다 들었다는 듯 문 팀장은 다시 시큰둥해진 얼굴로 모니터에 시선을 두었다.

“팀장님, 피가 뜨거워지지 않으십니까?

맨날 괴물 사건만 보다가 오랜만에 강력사건 스멜이 풍기는데요”

“날이 더워서 그런 거 같은데, 잘해봐”

“옙! 그런데, 팀장님. 뭘 그렇게 열심히 보십니까?”

오 반장이 불쑥 허리를 굽혀 문 팀장 컴퓨터의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주식 거래 창 속 파란 기둥이 무거운 추라도 달린 듯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에이, 씨발......뭘 봐? 빨리 안 움직여?”

“옙! 다녀오겠슴다!”

오 반장이 한층 더 커진 보폭으로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문 팀장은 노원경찰서 지반이 무너져라 한숨을 쉬며 모니터를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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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고속버스터미널.

김후성은 엄마를 면회하러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하, 덥고, 멀다’

강남에는 고속버스를 꼭 타야 할 사람도 별로 없을 텐데 고속버스터미널은 왜 강남에 있는 걸까? 버스를 타러 오는 동안 후성은 이미 진이 빠져버렸다. 특히 오늘 같이 불쾌지수가 높은 후덥지근한 날은 어디론가 이동해야 하는 일이 더 힘들게 느껴진다.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항시 있는 터미널은 개표구가 개방되어 있어서 냉방을 해도 바깥의 뜨거운 공기가 계속 밀려들어온다. 매연 냄새와 미세먼지가 버무려진 습한 공기가 폐부까지 침습하는 그런 날씨. 후성은 물이라도 마셔야 살겠다 싶어 가까운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음료수가 꽉꽉 채워진 냉장고 앞. 생수병은 종류도 여러 가지다. 내용물은 똑같은 물인 주제에 제주도나 백두산에서 왔다는 생수들은 더 비싸다. 해외에서 물 건너온 생수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물이 물을 건너온 건가?......

‘큭’

야, 김후성, 무슨 생각이냐? 지금이 웃을 때냐? 그리고, 이게 웃기냐? 평균보다 좀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도 유머감각이 있으면 사회생활을 잘 한다. 유머감각은 타고난다던데, 나 같은 평균이하 찐따에 사회부적응자는 어떻게 살라고 이리 태어났는지. 어쩌면 신이 주소를 착각해 지구에 잘못 태어난 게 아닐까.

제주도 수원지 생수의 가격은 1,100원. 백두산 수원지 생수의 가격은 1,000원. 물병 아래에 붙은 가격표를 보니, 며칠 전 출근길에 적십자사 직원의 손에 이끌려 헌혈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야근한 다음날이라 피곤했지만,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는 건 너무 미안하니까.


피 한 팩을 뽑으면 5,000원짜리 편의점 상품권을 준다. 피 한 팩이 320밀리리터니까 피 1밀리리터의 가격은 대강 15원. 만약 500밀리리터 생수병에 피를 담으면 그 값은 7,800원. 그러니까, 피 1병 가격은 제주도산 생수 7병의 가격과 대강 같다. 내 피 값도 내 몸값만큼 싼 편인가?

그런데 괴물사체처리부 조장이 말하길, 적십자사에서 병원에 파는 피 한 팩의 가격은 10만 원이라고 한다. 요즘 괴물에게 당한 사람들이 늘어서 피 값이 조만간 오를 것 같아 걱정이라며. 조장은 이상할 정도로 아는 것도, 걱정도 많다. 서울시 공무원이 아니라 유명한 바이오기업에서 온 파견 직원이라던데, 조장도 희솔이처럼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나온 걸까?

그나저나 적십자사에서 파는 가격으로 500밀리리터 생수병에 담긴 피 값을 따져보면......

무려 피 1병에 15만 원!

‘도둑놈들. 달랑 5천 원짜리 상품권 주고 20배나 올려서 파네. 자기 피도 아니면서’

공짜인 대동강 물을 비싼 값에 팔았다는 사기꾼 ‘봉이 김선달’보다 더 한 놈들이다. 헌혈을 해서 아픈 사람을 도우려는 착한 사람이나, 5천 원짜리 상품권이 필요해서 찾아온 가난한 사람이나, 나처럼 거절을 못하는 바보들의 피를 뽑아서 돈을 벌고 있으니.

뭐, 지금 같은 세상에 잘 적응한 똑똑한 놈들이라고 칭찬할 수밖에 없겠다. 저축을 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밥 먹고 출근할 수 있을 만큼의 월급을 주고, 대신 죽지 않을 만큼 일을 시켰던 예전 회사와 상당히 비슷하니까. 적십자사도 다음에 또 피를 뽑을 수 있도록 죽지 않을 만큼 피를 뽑고, 가난한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받아갈 돈 만큼의 상품권을 준다.


후성이 고작 생수 가격을 보며 돈에 대한 온갖 생각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후성의 머릿속에서 희솔이의 약값에 대한 걱정이 하루 24시간 떠나지 않고 그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보호자님, 희솔이가 나을 방법이 있어요’

‘진짭니까? 세상에! 선생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00사에서 개발한 유전자 치료제가 있어요. 딱 한 번만 치료하면 희솔이는 완치됩니다’

‘딱 한 번 만으로요?’

‘네, 희귀병을 치료하는 유전자 치료제들이 보통 그렇습니다.

그 질병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바꿔주기만 하면 되니까요’

‘와, 그런 약도 있습니까? 너무 좋은 약이네요.

선생님, 그럼 얼른 우리 희솔이 좀 치료해주세요’

‘그게......약 값이 많이 비쌉니다.

사실 약값을 부담할 수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약값이 얼만데요?’

‘60억이에요’

‘네? 뭐라고요? 6, 60억이요?

세상에 그렇게 비싼 약도 있습니까?’

‘약을 만든 제약사에서 그렇게 책정했으니, 어쩌겠습니까?’

‘그 약을 언제까지 맞아야 됩니까?

제가 돈을 모을 때까지 희솔이가 기다려줄 수 있을까요?’

‘죄송하지만 희솔이는 점점 더 악화될 겁니다. 치료는 빠를수록 좋아요’

‘......’


60억.

천 원짜리 생수 한 병 값에는 0이 3개 붙는다.

그럼 60억 원에 붙는 0은 몇 개일까?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어서인지 바로 생각이 안 나네.

생각하기도 싫고.

희솔이의 대학 등록금과 학비를 내기 위해 넣고 있는 적금을 깨도, 60억 원의 티끌만큼도 안 될 것이다.

‘60억을 어떻게 모으지? 내 장기를 다 팔아도 1억도 안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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